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 조직…"피폭 증언으로 '핵 금기' 확립에 기여"300만 서명 운동으로 핵무기금지조약 채택에 이바지…꾸준한 반핵 운동도노벨위, 내년 원폭 투하 80주년 앞두고 "'핵 금기' 지켜야…강대국 책임 있어"
  • ▲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 원폭 피해자단체협의회의 미마키 토치유키 회장이 발표 후 히로시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41011 AP/뉴시스. ⓒ뉴시스
    ▲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 원폭 피해자단체협의회의 미마키 토치유키 회장이 발표 후 히로시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41011 AP/뉴시스. ⓒ뉴시스
    올해 노벨평화상이 일본의 원폭 생존자 단체이자 핵무기 근절 운동을 펼쳐온 일본 원폭 피해자단체협의회(日本被團協, 니혼 히단쿄)'에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11일(현지시각)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들의 풀뿌리 운동단체인 니혼 히단쿄를 202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평화상 선정에는 원폭 투하 80주년을 1년 앞두고 핵무기 사용은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행위라는 점이 강조됐다는 분석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 수단 등에서 파괴적인 전쟁이 지속하고 전쟁에서 핵무기가 또다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대두되면서 핵 군축과 군비 통제의 필요성을 환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노벨위원회는 "니혼 히단쿄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끔찍한 경험의) 증언을 통해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돼선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한 공로가 있다"며 "니혼 히단쿄와 다른 히바쿠샤(피폭자, 원폭 피폭자를 뜻하는 표현)의 대표자들의 특별한 노력은 '핵 금기(the nuclear taboo)'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역사적 증인들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교육캠페인을 만들고, 핵무기 확산과 사용에 대해 긴급히 경고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핵무기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를 형성하고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니혼 히단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5년 8월 일본에 원폭이 투하된 이후 핵무기 사용의 재앙적인 결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결성된 단체다.

    1956년에 일본 내 피폭자 협회와 태평양 지역 핵무기 실험 피해자들이 결성했으며 30만명이 넘는 피폭 생존자를 대변하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단체다. 특히 냉전 중 유엔 군축 특별총회에 세 번이나 대표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300만명 분의 서명을 모아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2021년 발효)이 채택되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이후 계속해서 모든 나라가 조약에 참가할 것을 요구하는 '피폭자 국제 서명운동'으로 약 1370만명 분의 서명을 유엔에 추가 제출했다.

    니혼 히단쿄의 미마키 도시유키 대표는 "전세계에 핵무기 폐기를 호소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시바 기게루 총리 역시 성명을 내고 "오랫동안 핵무기 폐기를 위해 노력해온 일본 피단협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축하의 뜻을 전했다.

    노벨위원회는 내년은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오늘날의 핵무기는 훨씬 더 파괴적인 힘을 갖고 있어 문명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원폭이 터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주민 약 12만명이 바로 사망했고, 이후 몇년간 비슷한 인원이 추가로 사망했다.
  • ▲ 일본 히로시마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투하 79주년을 맞아 '원폭 전몰자 위령식·평화기원식'이 열렸다. 240806 AP/뉴시스. ⓒ뉴시스
    ▲ 일본 히로시마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투하 79주년을 맞아 '원폭 전몰자 위령식·평화기원식'이 열렸다. 240806 AP/뉴시스. ⓒ뉴시스
    일본 히로시마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원폭 투하 79주년을 맞아 '원폭 전몰자 위령식·평화기원식'이 열렸다. 240806 AP/뉴시스. ⓒ뉴시스

    올해 평화상 선정에는 2년 넘게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는 등 잇따른 전쟁으로 핵무기 사용 위험이 커지고 핵무기 개발 욕구가 높아진 지구촌 상황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외르겐 바트네 프뤼드네스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올해 상은 핵 금지를 지켜야 할 필요성에 초점을 맞춘 상이다. 우리 모두, 특히 핵 강대국들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반핵 단체의 수상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망령이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는 핵전쟁 공포에서 다음 세대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 폐기 운동단체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에는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NA)이, 이에 앞서 2005년에는 핵에너지의 군사 목적 사용 방지에 앞장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평화상을 받았다.

    일본에서 평화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1974년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이후 50년 만이다.

    인류 평화에 이바지한 인물이나 단체에 주는 노벨평화상은 1901년 시작돼 올해 105번째 수상자가 결정됐다. 수상단체에는 상금 1100만크로나(약 14억3000만원)가 지급된다.

    스웨덴 과학자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이 제정한 노벨상의 수상자는 스웨덴 왕립과학원 등 스웨덴 학술단체가 선정하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의회가 지명한 노벨위원회 5인 전체회의에서 결정한다.

    올해 노벨상 선정은 14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마무리된다.

    앞서 7일에는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마이크로 RNA 발견에 이바지한 미국 생물학자 빅터 앰브로스와 게리 리브컨이, 8일에는 물리학상 수상자로 AI 머신러닝의 기초를 확립한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턴이 선정됐다.

    9일 화학상은 미국 생화학자 데이비드 베이커와 구글의 AI 기업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 존 점퍼 연구원이 받았고, 10일 문학상은 한국의 소설가 한강이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