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투병중 21일 별세, 빈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24일 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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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김민기 빈소.ⓒ학전
"나는 뒷것이고 너희들은 앞것이야, 나를 자꾸 앞으로 불러내지 말라. 내가 만든 노래가 아직도 울려 퍼지는 현실이 부끄럽다. 나는 내 노래가 필요 없는 시대에 살고 싶다."(지난 5월 방송된 SBS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대학로 문화의 산실, 소극장 학전을 30여 년간 이끈 김민기 대표가 위암 투병 끝에 지난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고인은 지난해 가을 위암 진단을 받았다. 건강 악화와 경영난으로 공연장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올해 3월 15일 학전블루 소극장의 문을 닫았으나 학전의 레퍼토리를 다시 무대에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로 투병해 왔다.2009년부터 학전의 살림을 맡아왔던 김민기의 조카인 김성민 총무팀장은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댁에서 요양 중이던 (김민기) 선생님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경기도 일산의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 갔을 때부터 좋지 않았고 다음날인 오후 8시 26분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이어 유언에 대해 "미리 작별 인사를 많이 나눴다.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했다. 남은 이들이 걱정이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김성민 팀장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등 김민기의 대표작을 향후 다시 볼 수 없냐는 질문에 "선생님이 연출하지 않은 작품은 할 수 없다. 김민기가 하지 않는 '지하철 1호선'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다만 40~50주년이나 100주년 학전 그 어느날 한 번쯤은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
- ▲ 故 김민기 학전 대표.ⓒ학전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민기는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뒤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1970년 고등학교 동창 김영세와 포크송 듀오 '도비두'로 활동을 시작했고, 1970년 독재에 맞서 부른 저항의 상징 '아침이슬'을 작사·작곡했다.1971년 발표한 데뷔 음반 '김민기'는 한국적 포크의 시원으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앨범이기도 하다. 이듬해 경찰에 연행된 뒤 전량 압수됐기 때문이다. 이후 생계를 위해 봉제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고 대표곡 '상록수'를 발표했다.'상록수'는 사무직으로 일하던 가죽공장 노동자 부부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지어준 노래다. 금지곡에서 풀린 시절,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공익광고 주제곡으로 쓰이며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한국 가요계의 지상에는 조용필이, 지하에는 김민기가 있다는 말이 있다. 고인은 서른 넘어서는 직접 노래를 만들지도 부르지 않았지만 1991년 '배움의 밭'이란 뜻의 소극장 '학전'을 열고 33년간 총 359개 작품을 기획·제작하며 대학로 문화를 개척했다. -
-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학전
고 김광석을 비롯해 안치환·유재하·노영심·이소라·윤도현·유리상자 등 가수들이 학전에서 노래했고, 배우 황정민·설경구·김윤석·장현성·조승우 등 유명 배우들을 배출했다. 1994년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공연하며 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2004년부터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에 집중해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복서와 소년', '아빠 얼굴 예쁘네요' 등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척박한 어린이 공연문화의 수준을 높이고자 노력해 왔다. 김민기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학로를 지킨 공로로 2018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고인의 장례 절차는 모두 비공개로 진행된다. 학전 측은 "조의금과 조화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정중히 사양한다"며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고인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마음으로 애도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문화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빈소를 찾은 배우 장현성은 "조금 더 오래 저희 곁에 계셔주셨으면 감사했을 텐데 마음이 많이 황망하다. 저희가 건강히 좋은 시간들, 선생님 덕분에 보냈던 것 같다. 부디 편안하게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 2남이 있다. 발인은 오는 24일 오전 8시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발인 날 옛 학전이 자리한 아르코꿈밭극장과 마당을 돌고 장지인 천안공원묘지로 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