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까지 공산독재국가 루마니아…북한식 도청법 답습해 주민통제외채상환하는라 루마니아인들 배고픔에 시달려…어둡고 암울한 시기차우셰스코 정권에 한맺힌 청년…서울대 유학후 북인권전문가로 성장
  • ▲ 그레그 스칼라튜ⓒ본인 제공
    ▲ 그레그 스칼라튜ⓒ본인 제공
    오늘은 인물분석 시간으로 북한인권운동가 그레그 스칼라튜 씨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스칼라튜 씨는 현재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자 자유아시아방송 칼럼니스트로 활동하시고, 또 미 국무부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연도 하고 계십니다.

    그가 속한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조사해 보고서로 발간하는 인권단체로 2001년 출범했습니다. HRNK는 ▲인공위성사진 ▲유럽·북미·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과 인터뷰 ▲다른 대북인권단체와의 협조 등을 통해 북한 상황을 조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보고서를 발간하는데 보고서는 미국 의회에서 대북 문제를 다룰 때 긴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스칼라튜 씨는 어떻게 하다가 북한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게 됐을까요?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루마니아 태생입니다.루마니아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로 1989년 공산체제가 붕괴되기 전까지 동구권 국가 중 북한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독재자인 니콜라이 차우셰스코는 북한처럼 주민들을 감시, 통제, 억압했습니다. 특히 루마니아 비밀경찰인 '세쿠리타떼'는 악명 높았고, 요원 숫자도 1만4000명일 정도로 많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당시 루마니아 인구가 2300만 명이었는데 50만 명정도가 밀고자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어둡고 미래가 안보이는 암흑의 시기였습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도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남을 절대 믿지 말아라. 밀고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 특히 학교에 있는 가장 친한 친구 믿지 말아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에다 독재자 차우셰스코는 1971년 북한을 방문했는데 그때 북한식 정적숙청법, 특히 도청수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300만 대의 도청기로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북한의 도청수법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 ▲ 김일성 만난 차우셰스코ⓒ위키피디아
    ▲ 김일성 만난 차우셰스코ⓒ위키피디아
    더불어 차우셰스코는 북한 방문 당시 북한식 주체사상과 독재자 신격화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에 차우셰스코는 엄청난 금액의 외채를 빌려 웅장한 도로와 건물을 지어 수도 부쿠레슈티를 '평양'처럼 만들려고 했습니다.

    외채를 상환하느라 루마니아인들은 북한주민들처럼 하루종일 일하고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차우셰스코는 빠른 시일 내에 주체사상을 설교하기 위해서 루마니아에 있는 모든 식료품을 수출하는 대신 수입은 차단했습니다. 

    먹을 식량이 없는 루마니아 주민들은 '양권'제도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식량을 사거나 생활필수품을 사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기도 하루에 2~3시간 밖에 나오지 않아서 절전해야 했습니다.

    1980년대 말까지 루마니아와 북한 상황은 매우 비슷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니콜라이 차우셰스코 정권이 유지되거나 제2의 권력이 세습되었다면 루마니아가 북한과 가장 비슷한 나라일 것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그러나 1989년 루마니아에서 반정부시위가 터지면서 차우셰스코는 그해 12월 23일 체포됐고 크리스마스에 부인과 함께 처형당했습니다. 이로써 차우셰스코의 24년 공산독재체제는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 반정부시위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20대였다고 합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시위에 동원됐지만 어린 나이고, 겁이 나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소극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차우셰스코 정권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한 것이 한이 맺혀서 그는 더욱 더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고, 북한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1999년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며 10년 가량의 한국 생활하며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따라서 모국어인 루마니아어뿐만 아니라 영어, 불어, 한국어에도 능숙합니다. 

    이후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HRNK에 합류해 북한인권조사를 해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국에서 인권 탄압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인권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북한주민들 뿐이라며 북한주민들에게 ▲인권 ▲외부세계 정보 ▲김씨 일가의 부패에 대해 정보전달을 계속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북한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고 보고서로 발간해 ▲미국 의회 ▲세계 여러 정부기관 ▲국제기구에 알려 북한인권을 개선하는데 힘쓰겠다는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