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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소련제 무기가 필요하다며 국제사회에 공급을 요청한 가운데 동유럽 국가들이 이를 지원하려고 나서는 분위기다. 표면적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단순히 무기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에는 각국의 이해관계와 노림수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3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위터에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수호하고 러시아를 격퇴하기 위해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며 NATO 회원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특히 그는 지원받고 싶은 중장비 무기들을 나열했다. 무기 리스트에는 △그라드 △스메르치 △토네이도 △T-72 △S-300 △BUK 등이 포함됐다. 이 무기들은 과거 소련이나 러시아에서 개발한 로켓 차량, 전차,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이다. 그만큼 우크라이나가 소련제 무기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거절당해서 소련제 무기를 사용해왔다. 문제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NATO의 군사표준에 차이가 있어서, 전투기 훈련법부터 탄약 규격까지 다 다르다. 때문에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지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해준다고 해도 사용할 수 없는 게 현 실정이다. 여기에 러시아와 교전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새롭게 NATO 식으로 무기를 훈련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은 동유럽 국가에게 호재다. 과거 바르샤바 조약기구였다가 지금은 NATO에 가입한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 같은 동유럽 국가들은 소련제 무기를 처분해야 하고, NATO 식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따라서 동유럽은 소련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넘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지금을 최대로 활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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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체코는 NATO 회원국 최초로 우크라이나에 탱크를 지원해줬다.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은 지난 6일 체코가 △소련에서 만든 전차 T-72 △ 보병 전투차량 BMP-1 △곡사포 등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슬로바키아도 지난 8일 우크라이나에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S-300을 공급했다. 여기에 폴란드도 우크라이나에 PT-91을 제공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폴란드 정부가 미국 정부로부터 M1A2 에이브람스 탱크 250대를 구매하면서 기존 물량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에 탱크를 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폴란드 정부는 탱크를 계약한 당해연도인 올해 연말에 M1A2를 인도받을 예정이다. 대만도 똑같은 M1A2를 2019년도에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3년이 지난 2022년 연말이 돼서야 전차를 공급받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폴란드는 비교적 이른 시일 내 탱크를 받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인균 국방전문가는 지난 8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폴란드가 계약한 M1A2를 신속히 받을 경우, PT-91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미국이 계약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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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동유럽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상원은 지난 6일 우크라이나에 군수물자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지원할 수 있는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동유럽 국가들이 이 법안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주고 미국에 반대급부를 요청했다.
일례로 슬로바키아는 S-300 방공 시스템을 우크라이나에 기부한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패트리엇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받게 된다. 앞서 폴란드도 우크라이나에 소련제 전투기 MIG-29을 기부할 테니 미국에 신형 전투기 F-16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동유럽의 무기 공급 계획에 각국의 이해관계와 노림수가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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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미 국방매체 브레이킹 디펜스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는 대체 자원 없이 MIG-29을 외국에 인도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폴란드 안보 공백을 메울 대체 자원을 미국이 제공해주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에 MIG-29를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신인균 국방전문가는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