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 상정에 언론단체들 일제 반발… 민주당, 이달 내 강행 처리 방침언론노조 "무차별 소송 부추기는 독소조항"… 편집인협회 "국정현안 비판기능 제한"기자협회 "언론 신뢰 추락", 인신협 "권력 감 위축", 입법기자협회 "신군부 재등장"
  •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문체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를 위해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청취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문체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를 위해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청취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된 언론중재법 개정을 놓고 언론단체들은 입을 모아 반발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법안으로, 언론개혁을 빙자한 '언론사 재갈 물리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를 단독으로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대안을 상정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기사 삭제 청구권 △정정보도 1면 게재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오보·가짜뉴스에 대해 손해액의 3~5배 범위 내에서 언론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

    언론 유관 단체들은 대선 국면이 다가오자 집권여당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비판적 논조를 쏟아내는 언론을 감시·견제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자유를 제압하는 '언론개혁 빙자한 언론재갈'이자 '언론악법'이라는 것이 언론 단체들의 입장이다.

    4개 단체 "징벌적 손해배상? 이게 무슨 언론개혁인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상정된 6일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조·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 등 4개 단체는 즉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 단체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따른 형사처벌 제도와 민사상 손해전보제도가 병립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를 고려할 때 헌법상 과잉금지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며 "언론 자유에 과도한 제한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다수"라고 주장했다.

    기자간담회에서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현 정부가 끝나가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맺었던 언론노조 등과의 정책협약서를 전혀 이행하고 있지 않다"면서 "모든 기자를 적으로 모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현업 언론인들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질타했다.

    전성관 한국PD연합회장은 "시사물을 제작하는 PD들은 민감한 방송을 만들면 가처분 신청이 들어온다. 가처분이 기각돼도 언론중재위원회, 민사상 손해배상, 명예훼손 형사고소가 들어온다"면서 "우리나라 법 체계가 징벌적 손배제를 시급히 적용해야 할 정도로 규제가 미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현대사에서 언론개혁의 핵심 과제는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강화하고 보장하는 것"이라며 "지금 민주당은 언론개혁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했다"고 꼬집었다.

    언론노조 "정치권 위한 손해배상제 도입한 기만행위 될 것"

    다음날인 7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도 성명을 내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강행처리를 중지하라"고 민주당에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어제와 오늘 현업 단체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되었다"며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민주당이 시민 피해 구제라는 명분으로 현업단체,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허점을 지적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속전속결로 상임위에서 처리 중이라는 사실"이라고 질타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고의·중과실의 추정'이라는 조항을 신설해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있다"고 지적한 언론노조는 "면책규정은 아예 피고가 될 언론에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이는 민법 750조와 충돌하는 모순적 조항으로 무차별적 소송 남발을 부추기는 독소조항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이어 "국가기관, 공공기관 및 비정무직 공무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 대상에서 누락되었고 형법상 명예훼손죄까지 그대로 존치해 이중처벌 논란도 피할 수 없다"고 우려하며, 민주당을 향해 "이대로 개정안을 처리한다면 시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정치권을 위한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기만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편집인협회 "언론자유·국민의 알 권리 침해하는 악법"

    8일에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성명을 내고 "언론규제법안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협회는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중대한 국정 현안에 대한 비판 기능이 제한받으면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강자에 의해 다수의 약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시정하는 데 적합한 징벌적 손배제를 권력에 대한 감시가 본연의 역할인 언론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손배액을 손해액의 5배까지 부담시키는 개정안은 우리나라 법률 체계와도 맞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이어 협회는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대한민국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으로, 개정 작업을 즉각 중지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달 안으로 문체위에서 언론중재법 처리를 매듭짓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
    ▲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달 안으로 문체위에서 언론중재법 처리를 매듭짓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
    한국기자협회 "언론 신뢰도 추락에 큰 영향 줄 것"

    한국기자협회는 14일 성명을 통해 "민주당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법안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법은 한마디로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악법이다"라고 비판했다.

    기자협회는 "애초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주된 적용 대상으로 삼았던 유튜브와 SNS, 1인 미디어는 제외되고 기존 언론을 겨냥하고 있다. 가짜뉴스 방지라는 기존의 목표에서 완전히 벗어난 법안으로 재탄생했다"며 "일부 언론에 대한 국민 악감정에 기대서 모든 기자를 적으로 돌리며 추락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3배, 5배 금전적인 부담을 지우면 언론사가 보도에 더 신중할 것이라는 1차원적인 생각을 거대 집권여당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법안 자체로만 봐도 징벌적 손배제의 핵심 요건인 '악의적', '고의중과실'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다"며 "징벌적 손배제는 정부 정책의 비판이나 의혹 보도 등을 봉쇄하는 '입막음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언론사와 언론인의 흠집내기 수단으로 남용돼 언론의 신뢰도 하락에 큰 영향을 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현업 기자들은 언론개혁에 절대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향과 목적이 옳아야 한다"고 전제한 기자협회는 민주당을 향해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 장기간 계속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인 지역언론 활성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포털 개혁 등 진짜 언론개혁의 여러 사안들은 뒷전에 팽개쳐 놓고 있다"고 질타했다.

    인신협 "권력에 유리한 '입막음' 법안"

    16일에는 한국인터넷신문협회(인신협)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법안의 전면 철회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인신협은 "개정안은 정당한 언론 활동과 민주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키거나 침해할 우려가 매우 크다"며 "보도의 고의 중과실 여부를 입증할 책임을 원고가 아닌 언론사에 부과함으로써 언론의 권력 감시와 견제 기능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 자명한 만큼 즉각 철회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신협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권력에 유리한 법 △언론 개혁이 아닌 언론 '입막음' 법안 △필요한 것은 언론 길들이기가 아닌 언론의 자정기능 강화 등이라고도 강조했다. 형법에 존재하는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등 법률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 상황에서 새로운 법을 추가하는 것은 언론 활동에 대한 과도한 제약이자 과잉 규제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인신협은 "이번 개정안은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를 사전 봉쇄하는 부작용은 매우 큰 데 비해 시민들의 알권리 보장 문제는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면서 "언론의 무분별한 의혹 보도가 일부 공인에 대한 피해를 낳고 있다는 것이 이번 개정 법안 발의의 주된 인식이지만 오히려 이를 교정하기 위한 과도한 법률적 개입이 낳는 폐해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한국입법기자협회 "비판을 피하는 칼날로 오용될 것"

    한국입법기자협회도 19일 성명서를 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협회는 "언론의 정당한 활동을 위축시키고, 민주 시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해칠 우려가 크다"며 "전체적인 개정 방향이 언론의 본질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오·남용될 소지가 많은 반면 그에 대한 대비나 안전장치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 "입법부의 대다수를 차지한 거대 여당이 대통령 선거라는 국가의 중대사를 앞두고, 언론사 재갈 물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공공연한 가담(街談)이 되어 나돌고 있는 지경"이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은 선의의 언론 피해자보다 언론이 더 많은 무고한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잘못 적용됐을 시 언론사로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고 우려했다.

    협회는 이어 "권력과 자본을 비판하는 언론의 본질적 특성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이들이 비판을 피하는 칼날로 오용될 확률이 더 높은 상황이다. 언론계의 일부 원로 인사들은 '신군부의 언론 말살정책이 연상된다'라며 탄식하고 있다"면서 "개정안에서 정정보도 게재 기준까지 정하고 있는 것은 언론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 권리인 편집권을 크게 제한하고 또한 조종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법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개탄했다.

    민주당, 상임위원장 野 넘기기 전 언론중재법 처리 방침

    한편 여당은 이달 안으로 문체위에서 언론중재법 처리를 매듭짓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다음 달 7개 상임위원장을 국민의힘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개혁입법 처리를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문체위에서 언론중재법을 심사 중인 민주당은 문체위원장이 교체되기 전 언론중재법을 단독으로라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6일 최고위원회의 후 취재진에게 "언론중재법은 상임위에서 속도를 내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다"며 "여야 간 협의를 조금 더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호중 원내대표도 "야당이 뒤집어씌운 독주의 족쇄를 벗어던진 만큼 더욱 과감히 수술실 CCTV 법, 공정한 언론생태계 조성 입법, 사법개혁과 2단계 검찰개혁 입법, 한국판 뉴딜, 부동산투기 근절 입법 등에 속도를 내겠다"며 개혁과제를 밀어붙이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 ▲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시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처리 시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