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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료 올려야 되는데… '편파논란' KBS, BBC '사기 인터뷰'에 화들짝

BBC '다이애나 함정 인터뷰' 파문… 연간 5조원대 수신료 존폐 위기방송가 "신뢰 추락, 경영압박 BBC… 편파보도, 경영압박 KBS 반면교사"

입력 2021-05-25 14:45 수정 2021-05-25 17:04

▲ 영국 공영방송 BBC가 '다이애나 함정 인터뷰'로 연간 5조원대 수신료를 삭감당할 위기에 처했다. ⓒBBC 홈페이지 캡처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영방송사로 손꼽히는 BBC에서 초유의 사기 인터뷰 스캔들이 터져 파문이 일고 있다.

여전히 영국 국민의 '아픈 손가락'으로 여겨지는 고(故) 다이애나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 전 왕세자빈이 BBC 기자에게 속아, 남편인 찰스 윈저(Charles Windsor) 왕세자와 카밀라 파커 볼스(Camilla Parker Bowles)의 '불륜'을 폭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

영국 현지에선 이번 사건으로 BBC 보도의 신뢰성이 무너졌다며 가구당 연간 159파운드(약 25만원)에 달하는 수신료를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타임스(The Times)에 따르면 다수의 보수당 하원의원들이 "연간 32억파운드(약 5조원)에 달하는 BBC의 수신료 수입이 과하다"며 수신료 동결 내지 인하안으로 BBC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BBC 정관의 효력이 종료되는 2027년 수신료 폐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수신료 인상의 '롤모델'로 BBC를 거론해온 KBS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그동안 KBS는 "영국의 수신료는 BBC 설립 후 27차례 인상된 반면 한국의 수신료는 41년째 동결된 상태"라며 "수신료 비중을 BBC에 준하는 70% 선으로 끌어올려 공영방송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초유의 인터뷰 스캔들로 영국 현지에서도 수신료를 인상하거나 유지하는 제도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높아지면서, 지금껏 해외 사례와의 비교 등을 통해 인상안을 추진해온 KBS 입장에선 수신료 인상의 '명분'이 더 약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바시르 "英 왕실이 자동차 미행"… 거짓말로 다이애나 인터뷰 성사

영국 국민이 이번 사건에 대해 크게 분노하는 이유는 문제의 인터뷰 이후 다이애나의 삶이 추락했고, 결국엔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세기의 인터뷰'로 널리 알려진 다이애나와 BBC '파노라마'의 인터뷰는 1995년 11월 성사됐다. 당시 4년 차에 불과했던 BBC 기자 마틴 바시르(58·Martin Bashir)는 무려 2280만명이 시청한 이 인터뷰 영상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다이애나는 "이 결혼에는 우리 셋이 있었다. 그래서 약간 복잡했다(there were three of us in this marriage, so it was a bit crowded)"며 남편인 찰스 왕세자와 커밀라 파커 볼스가 오랫 동안 불륜을 맺어왔음을 폭로했다.

결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남편이 체면 때문에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다며 대놓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다이애나는 1996년 8월 28일 찰스 왕세자와 이혼했다. 다이애나는 이듬해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를 피해 연인 도디 알파예드(Dodi Al-Fayed)와 함께 도로를 질주하다, 차가 터널 안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로 사망했다.

이 인터뷰는 다이애나의 남동생인 찰스 스펜서(Charles Spencer)가 당시만 해도 무명 기자였던 바시르를 누나에게 소개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스펜서는 "바시르가 조작된 서류를 보여주면서 인터뷰를 청탁했다"며 BBC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1996년 내부 조사를 벌인 BBC는 "바시르는 정직하고 명예로운 기자"라며 보도 전후 과정에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이로부터 25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스펜서는 "해당 인터뷰는 바시르의 거짓말로 성사됐다"고 재차 주장하며 대법관 출신인 존 다이슨(John Dyson)에게 독립적인 조사를 의뢰했다.

이에 다이슨은 지난 20일(현지시각) 127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통해 "당시 바시르가 다이애나의 남동생 스펜서 백작에게 위조된 은행 입출금 서류를 보여준 뒤 '궁정 비서와 찰스 왕세자 비서가 황색 언론으로부터 돈을 받고 다이애나비의 정보를 유출했다'는 거짓말을 했다"며 "그는 BBC의 편집 지침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밝혔다.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당시 동생을 통해 왕실과 영국 정보기관(M15)이 자신의 사생활을 캐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다이애나는 이 같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의 불륜을 폭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시르, 2003년 마이클 잭슨 인터뷰 때도 '거짓말' 의혹

그러나 당시 다이애나 남매가 바시르에게 건네받은 서류는 조작된 문건이었다. 왕실 직원들이 다이애나의 자동차를 미행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근거 없는 루머에 불과했다.

당시 은행 입출금 서류를 위조한 그래픽 디자이너 매트 위슬러(Matt Wisler)는 현지 언론을 통해 "영문도 모른 채 바시르의 요청으로 서류 작업을 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1995년 해당 인터뷰를 접한 뒤 자신이 작업한 서류가 '가짜'라는 사실을 BBC에 알렸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이애나를 속여 인터뷰를 따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시르도 지난 23일 선데이타임스(The Sunday Times)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거짓말한 사실을 후회한다"며 다이애나 남매에게 조작된 서류를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바시르는 "다이애나의 삶에서 벌어진 복잡한 문제들이 나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해당 인터뷰가 어머니의 두려움과 편집증, 고독을 부추겼고 부모님의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다이애나의 아들 윌리엄 왕세손(William Arthur Philip Louis)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인터뷰 후 다이애나가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는 자필 편지를 써 보냈고, 자신이 셋째 아이를 낳았을 때 다이애나가 병원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다는 일화를 공개하며 "인터뷰를 강행해 다이애나를 위험에 빠뜨릴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파키스탄 이민 2세인 바시르는 다이애나와의 단독 인터뷰로 스타덤에 오른 뒤 영국 ITV와 미국 ABC, MSNBC 등을 옮겨다니며 앵커로 활약했다.

영국 타블로이드 데일리메일(Daily Mail)에 따르면, 바시르는 ITV에서 일할 당시에도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아프리카 아이들을 만나는 일정을 잡아놨다'는 거짓말을 흘려 2003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의 단독 인터뷰를 따냈다는 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

한동안 미국 방송국에서 일하다 2016년 토니 홀(Tony Hall) 전 BBC 사장의 부름을 받고 BBC에 재입사한 바시르는 다이슨의 보고서가 발표되기 며칠 전 "건강이 안 좋아졌다"며 사직서를 냈다.

다이애나 인터뷰 방영 당시 뉴스부문 대표였고, 내부 조사에서도 "인터뷰 추진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며 바시르를 적극 감쌌던 토니 홀 전 사장은 조사 결과가 나온 직후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칙허장' 갱신 앞두고 빨간불… 수신료 인하·폐지 반발 '직면'

다이슨의 조사 보고서와 당사자의 실토로 BBC가 다이애나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BBC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 총리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BBC가 가능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촉구했다. 로버트 버클랜드(Robert Buckland) 법무장관은 "BBC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경찰은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바시르 등 사건 관련자들에게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는 "영국 하원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위원회가 BBC에 대한 특별 증언 청문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청문회가 열릴 경우 바시르는 물론, BBC의 전·현 경영진 다수가 증인으로 출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정부는 중립적인 미디어 전문가들과 전직 기자들이 참여하는 별도의 BBC 편집위원회를 만들어, 보도 관련 민원을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의 감시 역할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뜻도 내비쳤다.

보수당 의원들은 BBC의 수신료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며 향후 5년간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BBC의 지난해 수신료 수입은 총 매출액의 60%를 초과하는 32억파운드(약 5조938억원)에 달한다.

영국의 수신료(license fee)는 TV수상기를 포함해 TV 수신 기능이 내장된 기기를 소유한 가정은 무조건 내야 하는 세금이다. 수신료를 내지 않고 BBC 방송을 보다 적발되면 벌금 1000파운드(159만원)를 내야 한다. 가구당 연간 159파운드(약 25만원)를 내고 있는 영국의 수신료는 2015년부터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매년 올랐다. 설립 이후부터 따지면 총 27차례 인상됐다.

더타임스는 영국의 보수당 정부가 이번 사기 인터뷰 사건을 계기로 친(親)노동당 성향이 강한 BBC를 제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일부 강성 의원들은 "수신료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왕실로부터 10년 주기로 방송 재허가를 받는 BBC는 오는 2027년 방송 운영 및 수신료 징수 등이 명문화된 왕실칙허장(The Royal Charter)을 갱신해야 한다. 특히 내년부터 칙허장 중간평가가 진행되기 때문에 BBC에 대한 영국 정부의 쇄신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공통된 전망이다.

"KBS가 정치판 기웃거릴 때… BBC, 'OTT와 경쟁' 선언"


국내 방송가에선 '사기 인터뷰'로 한 순간에 이미지를 구긴 BBC의 사례를 국내 언론, 특히 KBS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KBS가 BBC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국민적 반감이 큰 수신료 인상이나 정치권 반응 등에 신경쓰기 보다, 먼저 검언유착 오보 등으로 훼손된 '신뢰도'를 회복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2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BBC는 매년 정부로부터 수신료가 제대로 사용됐는지를 점검받고, 10년마다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방송 허가를 받는다"며 "우리처럼 국회 결산심의 정도만 받고, 어디에 얼마만큼 쓰이는지도 모르게 허술히 운영되는 수신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이처럼 징수하는 방식부터 사용하거나 감시·규제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데도 KBS는 BBC의 경우를 예로 들며 수신료 인상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우리는 항상 외국에서 유리한 것만 따다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황 교수는 "BBC는 이번 사건에 앞서 2018년 화이트 페이퍼(백서)를 통해 자사의 경쟁 대상이 '넷플릭스'나 '유튜브', '아마존' 같은 OTT 업체라고 선언하고 청소년 채널 무선 주파수를 반납할 정도로 전폭적인 체질 개선에 들어간 상태"라며 "KBS가 지금처럼 정치판이나 기웃거리고, 수신료 인상 등에만 신경쓰는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적 신뢰 회복이 요원해지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쟁에서 영영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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