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것은 국민의 기본권이 훼손되어도 우려를 표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 ▲ 지난 4일 강원도 원주시 원주역사에서 열린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 KTX-이음 개통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마스크를 거꾸로 써서 네티즌들의 빈축을 샀다. ⓒ연합뉴스
    ▲ 지난 4일 강원도 원주시 원주역사에서 열린 저탄소·친환경 고속열차 KTX-이음 개통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마스크를 거꾸로 써서 네티즌들의 빈축을 샀다. ⓒ연합뉴스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막을 내린 한 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1년간 지속된 ‘코로나 사태’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할 기회도 되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지난 1년간의 코로나 사태가 남긴 정치·사회적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먼저 코로나 방역을 내세운 기본권 침해에 관한 문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하며 누려왔던 일상의 소소한 자유가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집회, 결사, 종교의 자유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기본권이 위협받았다. 이는 헌법과 법률 이전 인간의 고유권리인 생존권과 천부인권적인 권리 침해와 연결된다.

    필자는 전염병 방지를 위한 일상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을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모든 기본권이 행정명령에 의해 원천적이며 무제한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필자가 지난 1년간 코로나 정국에서 놀란 것은 국민의 기본권이 방역을 앞세운 국가의 ‘행정명령’이라는 이름으로 훼손되어도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염병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시위와 집회를 장기간 원천봉쇄한 조처에 대해 이른바 식자층 전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법원도 행정명령을 어긴 사람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징벌적인 행정조치를 남발하는 정부를 제어하려는 최소한의 시도를 하지 않았다(최근에 와서야 전광훈 목사 석방같은 예외적 모습을 모임).

    대부분의 교회는 정부의 ‘대면예배 금지명령’을 아무런 비판 없이 순한 양처럼 따랐다. 일부 교단은 “교회가 코로나 방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 코로나 확산을 야기했다”며 사과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협조했던 한국 교단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정부의 명령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던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는 ‘괘씸죄’에 걸려 두 번이나 구속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우리의 ‘어린 민주주의’를 자각


    작년 가을 우리는 민족 최대의 명절까지 제대로 쇠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추석 고향방문 자제’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이는 단순히 ‘권고사항’이라고 했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국무총리와 전 행정력이 동원되어 펼친 고향방문 자제 운동에 공무원들과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직장인 대부분이 부모님이나 친척방문, 제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 나라나 민족 구성원의 정체성은 명절을 통해 전승되는 문화의 집단적 공유 과정에서 공고해지는 경향이 있다. 민족의 가장 큰 명절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은 전체주의 체제가 아니라면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이 정부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중국의 모택동이나 북한의 김일성이 권력을 잡은 후 가장 먼저 취한 조치들이 바로 전통사상과 문화를 봉건의 잔재로 몰아 말살 한 것이었다. 공산주의의 해악 중의 으뜸은 전통가족 사상을 말살하고, 공산주의 사상을 인륜이나 천륜보다 더 강조한다는 것이다. 만약 오는 2월의 설날까지 한 번 더 이런 행정적인 통제가 들어간다면 우리 고유 명절의 전통적 권위는 크게 손상을 입을 것이다.

    이처럼 지난 1년간 행정명령과 통제에 의한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노골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지만, 이에 대한 저항이 사실상 없거나 미미했다는 것은 방역문제를 떠나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민주주의의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전근대와 근대의 경계지점 어딘가에 머물러 있으며, 여전히 ‘어린 민주주의’ 단계에 속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권에 ‘행운’이 된 코로나 사태


    다음으로 코로나 사태의 역설적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발 코로나 사태는 국민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었지만, 문재인 정권 입장에서는 엄청난 ‘행운’으로 작용했다. 코로나 사태로 문재인 정권은 집권 4년차를 맞아 역대 정권이 예외 없이 겪었던 이른바 ‘집권 4년차 증후군(위기)’을 운 좋게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 4년차에 ‘소통령’으로 불리던 차남 현철씨가 ‘한보 사태’ 몸통으로 불거지면서 대통령이 사과하는 등 사실상 식물 정권으로 전락했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4년차에 들면서 ‘게이트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각종 비리 게이트에 휩싸였고, 결국 대통령의 장남과 차남이 다 구속되며 몰락했다.

    노무현 정부는 4년차에 와서는 내부층부터 갈갈이 찢어져 결국 ‘폐족’을 자처하기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권은 저축은행 사건과 친형 이상득 의원 비리 사건 등이 얽히면서 급격한 권력 누수 현상을 겪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4년차에 이른바 ‘최순실 사건’으로 아예 정권 자체가 붕괴했다.  

    이처럼 1987년 이후 역대 대통령은 경제정책 실패와 권력 누수, 측근 비리에 따른 집권 4년차부터 레임덕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집권 후반기에 민심 이반이 심해지면서 역대 대통령들은 당으로부터 탈당을 요구받았고, 예외없이 탈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출범 후 3년 동안 벌어진 총체적 국정난맥상에 비하면 권력 누수 현상을 불러온 역대 정권의 측근 비리는 ‘애교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국기를 뒤흔든 문 정권의 총체적 국정 난맥상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해외 순방을 많이 다닌 대통령으로 알려졌다(코로나 사태 이전 기준). 하지만 우리 국민은 문 대통령이 북한 대변인 역할을 했다는 외신의 조롱을 받은 것 외에 무슨 경제적 성과를 얻었는지 알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내세워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세계 경제원론 교과서 어디에도 없는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마차가 말을 끄는 식’의 이 억지 경제이론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무원을 더 많이 채용하는 것과 노년층의 단순 일자리를 늘리는 것뿐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한 탈원전 정책은 워낙 비이성적인 정책이라 특정 집단의 사적 이익 추구 목적용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이미 원전의 경제성 조작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런 엄청난 국익 침해적인 결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혹시 배후에 불순한 세력이 개입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수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사건은 지금은 수면 아래에 감춰진 형국이지만, 이 정권이 가장 노심초사하는 부분일 것이다. 4·15 부정선거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권력형 선거부정 의혹으로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정권이 공수처를 만들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앞세워 윤석열 검찰총장을 집요하게 내치려고 한 것도 결국 이 울산시장 선거부정 사건 수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는 분석이 적지 않다.

    문 정부의 실책 중 아직 표면화되지 않고 진행형이 있다면 대북정책일 것이다. 문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적극적인 퍼주기 정책(북한 도로·철도 현대화 사업)을 계획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정책에 막혀 있는 상태다.

    정권의 ‘도깨비방망이’가 된 코로나


    집권 4년차인 작년에 문재인 정권은 경제파탄과 정책실패에 대한 결산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2019년 10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광화문에 모여 정권 퇴진을 요구했고, 거듭된 부동산 실책으로 3040층도 완전히 돌아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작년 초 불거진 중국발 코로나 사태는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쓰나미가 되었다. 소주성, 탈원전, 조국 사태, 울산시장선거부정, 부동산 실책은 물론이고, 심지어 4·15 총선의 이슈조차도 이 코로나의 거대한 후폭풍을 비껴가지 못했다.

    문 정부는 코로나가 정치적 반대의견을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재빨리 깨달았다. 코로나는 눈엣가시 같던 보수집회를 원천적으로 봉쇄시킬 수 있는 정권의 ‘도깨비방망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코로나라는 도깨비방망이를 선물해준 중국을 향해 날마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남은 1년도 과연 민심의 심판 피할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로 집권 4년차 증후군을 피한 것은 물론, 4·15 총선까지 압승을 한 정권과 여당은 이후 무엇에 쫒기듯이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각종 반민주 악법과 공수처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겉으로는 무제한적인 돈풀기 정책으로 민심을 잠시 누른 상태에서 뒤로는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전체주의적인 장치를 제도적으로 완성한 것이다. 이들이 일회용 선거법을 만들어가면서까지 기필코 지난 4·15총선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해야만 했던 이유를 이제야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작년 초 코로나 사태 초반에만 해도 그저 ‘권고사항’에 그쳤던 일상의 모든 행위가 1년이 지나는 사이에 어느덧 정권의 촘촘한 통제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일상의 자유가 통제될수록 그에 비례해서 코로나의 공포로부터는 좀 더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코로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는 애당초 단계별 거리두기는 전염병 차단이라는 실제적 효과를 위해 과학적 바탕에서 설계된 방역대책이 아니라, 홍보효과와 국민의 통제를 손쉽게 하기 위한 행정편의적인 시각에서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2021년도 지난 한 해처럼 야당이 여당의 2중대 역할을 하고, 언론이 방역 당국의 홍보지 역할을 하고, 지식인과 전문가들이 침묵하고, 국민은 재난 지원금을 바라며 넋을 놓고 있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전체주의 그림자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는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