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복 위주' 패션계 뒤바꿔‥ '기성복 보급화' 앞장
  •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이 29일(현지시각) 파리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8세.

    일간 르몽드,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피에르 가르뎅의 유가족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오늘은 가족 모두에게 매우 슬픈 날"이라며 "고인이 일평생 보여준 지속적인 열망과 도전 정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시대를 초월해 프랑스와 전 세계에 훌륭한 예술적 자산을 남겼다"고 추모했다.

    피에르 가르뎅에게 발탁돼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한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는 "내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준 피에르 가르뎅에게 감사드린다"는 글로 고인을 애도했다.

    고인의 타계 소식을 전한 BBC는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사람이었다"며 "관습을 깨고 시대적 변화를 주도한 최고의 혁신가"라고 추어올렸다.

    생전 '우주시대 룩' 같은 미래지향적 디자인과 '칼라없는 정장' 등으로 명성을 떨친 피에르 가르뎅은 1979년 서양인 중 최초로 중국 자금성에서 패션쇼를 열고, 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패션쇼를 여는 등 항상 시대를 앞선 행보로 각광을 받았다. 2012년 90세의 나이에 작품 발표회를 여는 등 노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 14세 때 패션계 입문‥ 크리스티앙 디오르에게 발탁

    192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2년 뒤 부모와 함께 프랑스 생테티엔으로 이주한 피에르 가르뎅은 14살 때부터 파리의 의상실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80여년간 패션 디자인 외길을 걸어왔다.

    1944년 '패션의 도시' 파리로 이사한 피에르 가르뎅은 영화 '미녀와 야수' 의상을 디자인하는 등 영화 의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1947년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의 '재단사'로 고용되면서 주류 패션계에 합류했다.

    1952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기성복 부티크 '가르뎅 하우스'를 오픈한 피에르 가르뎅은 엉덩이를 동그랗게 부풀린 '버블 드레스'를 히트시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59년 패션 디자이너 중 최초로 파리 프랭탕백화점에서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인 그는 이듬해부터 전 세계 140개국에 유통되는 수많은 상품에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라이선스 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 자기 이름 내건 브랜드로 세계적 명성 얻어

    이후 '피에르 가르뎅'이 새겨진 향수와 선글라스, 구두, 가방 등 수천가지 제품이 세계 도처에 깔리면서 피에르 가르뎅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 중 한 사람이 됐다.

    이 같은 라이선스 브랜드 사업으로 막대한 로열티를 챙긴 피에르 가르뎅은 한때 프랑스 개인 소득세 납부자 1위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부작용도 발생했다. 초기 럭셔리 하이엔드 브랜드로 각광받던 '피에르 가르뎅'이 양말이나 우산, 생수, 속옷 등까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높았던 브랜드 가치가 점점 하락하기 시작한 것.

    2009년 피에르 가르뎅이 "회사를 1조원에 전량 매각할 용의가 있다"고 밝힐 정도로 위기를 겪었던 피에르 가르뎅은 일부 라이선스를 매각하는 사업구조 재편과 브랜드 리뉴얼로 여전히 패션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군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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