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주의가 득세한, 실패한 역사”라는데...진실(眞失)·공정(空正)한 현대사를 만들겠단다작작 좀 웃겨라! 이 시절을 꼭 기록하마!
  • 李 竹 / 時事論評家

      “신(神)이 만든 기적에는 이유를 붙일 까닭이 없지만, 인간이 이룩한 기적에 대해서는 이를 정당하게 분석하고 평가할 당연한 의무가 있다.”

      지난 1968년 2월부터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 공사 중 최악의 난코스였던 ‘당재 터널’[충북 옥천군] 구간에서 공사 감독관을 했었던 당시 육군 공병 대위가 훗날 어디에선가 인용했다는 말씀이란다.
      이 나라 고속도로가 왜·어찌 생겨났는가와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필설이 소용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강의 기적’을 열어젖힌 장거(壯擧)였다고나 할까.

      “있는 도로나 포장하지, 웬 쓸데없는 고속도로로 허세를 부려? 차도 몇 대 안 되는 나라에 무슨 고속도로야! 부자들이 기생들과 놀러 다니라는 길이냐!”

      당시에 이런 비웃음·비난과 함께 고속도로 건설을 극렬하게 반대했던 무리에 대해서도 물론 장황한 해설이 필요 없다. 예나 지금이나 ‘민주’를 늘 상 입에 달고 다니던 작자들이란 건, 알만한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史實)이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났다.

      “그간 잘못된 현대사의 왜곡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아 가는 과중한 책무가 여러분에게 있다... [지난] 5년간을 보면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잘못된 관행을 끊고 새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했다는 ‘그 당’의 대표가 엊그제 21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 그 ‘압승’의 여세를 몰아서 이 나라 역사, 즉 과거사를 입맛에 맞게 요리해보겠다는 포부를 밝힌 거라고 여러 언론매체가 지적한다. 그 ‘의원총회’ 이후의 기자 간담회에서는 이런 말도 덧붙였단다.

      “제가 학생운동을 한 게 1972년 10월 유신 때부터인데 그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유신 후에도 우리 정치사가 얼마나 많이 왜곡돼 있느냐... 그 과정에서 바로 잡을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곡된 현대사 바로잡기’라...
      역사학에 대한 학문적 고찰을 할 만한 지식도 실력도 크게 없다. 단지 저간의 여러 일들을 기억하며 그 정체를 더듬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 그 언제 적 ‘변호인’께서 줄곧 읊으셨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 실패한 역사”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이 나라, 대한민국이 걸어온 발자취를 주저 없이 평가·분석했다고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 온다. 아마 추측컨대, 아니 확실하지 싶은데 ‘역사 바로잡기’는 이 나라 역사가 그렇게 씌어졌어야 마땅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하니 이참에 학문·사실적이 아닌 정치적으로, 특히 ‘다수결’로 이 나라 역사를 하나씩 바로잡아 가겠다고 한다.
      글쎄, 아직은 ‘다수’인지가 불확실하다는 여론도 상당히 높던데... ‘조직적 선거 부정’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는 비판이야 그저 무시할 작정인가 싶다. 어찌됐던...

      바로잡을 역사의 커다란 줄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다소 투박하고 섣부르지만 요약하자면, 그간의 건국(建國)과 호국(護國)과 중흥(中興)에 관한 논쟁을 승리로 끝장내려는 듯하다.
      경험에 바탕을 두고, 앞으로 펼쳐질 다수결에 의해 ‘관행을 끊어낸 새 역사’를 정리해 봤다.

      우선 ‘건국’이란 자체가 비위에 거슬릴 것이다. 그저 ‘정부 출범[잘하면 수립]’ 쯤으로 자리매김하지 않겠나. 예전 방식인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라고 우기기에는 한계가 너무 뚜렷하고, 북녘의 눈치(?)도 살펴야 할 테니...
      그리하면 지긋지긋하게 붙어 다니던 ‘건국 대통령’도 묻어버리게 된다. 일석이조(一石二鳥) 격이다. ‘나라의 근본’ 같은 ‘보수꼴통’의 가치는 따질 바가 못 된다. ‘진보’가 대세라지 않는가. 이어서...

      아마 반문(反問)부터 할 것이다. 전쟁에서 나라를 지켰다고? ‘호국’(護國)이라고?
      70년 전(前) ‘6·25전쟁’...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다질 않나. ‘남침’(南侵)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정의로운 ‘민족해방전쟁’이 되어야 한다. 그러하니 ‘호국’(護國)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급한 추측이지만, 혈맹과 우방의 개념도 달리할지 알 수 없다. 뛔국이나 로스께가 그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

      위에서 언급했듯,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비웃음·비판·반대’ 등과 같이 ‘민주’ 팔아 잘 살아온 무리들이 다수가 되어 정당성을 확보했음으로, ‘중흥의 역정’은 이 나라에서 사라져야 할 시절이다. ‘한강의 기적’은 그저 독재를 연결·연장시키고 ‘민주’를 압살한, ‘한강의 기절’ 정도로 추락시켜야 당연하다. 이렇듯 논쟁들을 마감한 연후에...

      이른바 ‘기회주의가 득세한, 실패한 역사’의 와중에서 영웅 대접을 받던 ‘토착왜구’와 ‘꼴통보수’들을 국립현충원 묘역에서 파낸다. 이어서 아직 연명(延命) 중인 부류(部類)들이 범접하지 못하게 단속하면, ‘역사 바로잡기’는 거의 완성된다.
      물론 국립현충원을 ‘민중민주현충원’ 쯤으로 간판을 바꾸는 일도 고려할만 하다. 여기에 더하여 저 멀리 ‘봉하마을’에 누워계신 ‘변호인’의 화려한 이장(移葬)까지 마치면 금상첨화(錦上添花)에 이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어떻게? 그렇다! ‘다수결’로...

      이쯤 되면, 이명박근혜 시절의 소소한(?) 사안들은 ‘식은 죽 먹기’에 불과하다. 이미 적폐(積弊)로 몰아본 경험도 생생하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당시를 살았던 ‘국민’들이 아직도 시퍼렇게 남아있고, 전문가나 학자들도 뻔히 아는 사실(史實)인데 너무 마구잡이 아니냐!”

      일부 ‘보수꼴통’들의 항변이 분명 있지 싶다. 특히 찌질이 ‘백성’(百姓)들 중에는 하소연·통사정을 하는 경우도 꽤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신 있게 목청껏 외치면 그만이다.

      “억울하면 다수가 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마침내 이 나라는 ‘공정’(空正)하고 ‘진실’(眞失)한 역사를 갖게 될 거다.
      더군다나 ‘조국스런’ 민주인사와 ‘미향다운’ 애족주의자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며 활갯짓 하는 마당이니, 그 ‘바로잡은 역사’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 될 법도 하지 않은가.
      그래서 글을 마치며 주절대 보기라도 해야겠다. 허허로운 쓴 웃음과 함께.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 역시 지배한다.”는 진부한 타령은 집어치우고...

      이 나라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꼭 적어둬야겠다.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대한민국’이 어찌어찌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