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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왔다 격리됐던 홍콩 기자들 “잊을 수 없는 경험”

홍콩 ‘애플데일리’ 기자들의 대구 취재기와 홍콩 격리생활

입력 2020-03-24 19:01 | 수정 2020-03-24 19:01

▲ 애플데일리 (蘋果日報) 3월 15일 한국 우한폐렴 특집기사 지면 ⓒ애플데일리

홍콩 ‘애플데일리(蘋果日報)’ 소속 기자 3명은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6일까지 12일간 서울과 대구의 우한폐렴 실태를 취재했다. 귀국 후 한국 대구를 다녀온 사람은 14일간 격리한다는 홍콩 당국의 방침에 따라 이들은 공항에 도착한 직후 홍콩 중부 포탄(火炭)의 격리시설 준융츈(駿洋邨)으로 가서 9일 동안 지냈다. 대구를 떠난 3월 1일부터 계산해 14일 후인 3월 15일 자정이 돼서야 이들은 귀가할 수 있었다.

이들은 서울과 대구, 경북 청도 대남병원을 방문했다. ‘애플데일리’는 지난 11일 이들의 기사를 실었다. “한국에서 우한폐렴이 창궐한 이유는 한국정부가 중국 방문객의 입국봉쇄를 초기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에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신문은 “중국 유학생이 한국에 들어오면 또 다른 전염이 우려된다. 중국 정부는 미안한 줄 알아야 한다”는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의 주장도 소개했고, 대구 시내 가게에 붙은 ‘중국인 출입금지’ 안내문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판 등을 전했다.

신문은 이어 “한국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유지를 고심하고 있지만 이미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혐중정서가 일기 시작했다. “우한폐렴 전파세력이 된 신천지가 한국 보수 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보도도 했다.

애플데일리, 한국 우한폐렴 특집기사에서 “한국에 혐중정서 일고 있다”

대구에서 자원봉사 중인 의사와의 인터뷰도 신문은 보도했다. “친중 정부가 국경 봉쇄를 거부했다”고 비난한 이 의사는 “중국과의 왕래를 막지 않으면 서울에도 우한폐렴이 창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 내에는 의료용품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구지역 의사들을 배려해 이곳에서는 방호복을 쓰지 않고 있다. 때문에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나는 영양주사를 맞으면서 진료하고 있다”는 서울지역 한 종합병원 여의사의 말도 신문에 실렸다.

다음은 한국에서 취재를 한 뒤 홍콩 격리시설에서 생활했던 애플데일리의 도즈(Dorz) 기자와 티파니(Tiffany) 기자의 이야기다.

▲ 홍콩 우한폐렴 격리시설 수용자들에게 제공된 식사ⓒ애플데일리

대구에서 문 연 식당 찾아 2시간 헤맨 적도

도즈: ‘애플데일리’에서 한국과 일본의 우한폐렴 취재를 기획했다. 우리는 2월 말 한국취재팀으로 선정됐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 취재 경험이 거의 없었다. 나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었다.

2월 24일 서울에 도착한 직후 홍콩 정부가 한국에 대해 적색 여행경보를 내린 사실을 알았다. 때문에 취재기간 내내 긴장했다.

25일부터 인터뷰를 할 의사를 찾아 다녔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쉽지 않았다. 홍콩과 한국이 다른 점은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분무기로 소독약을 방문객 손에 뿌리는 것이었다. 그런 옆으로 담배를 피며 침을 뱉는 사람들도 보였다.

26일 대구로 갔다. 예상은 했지만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문을 연 식당을 찾는 일이었다. 2시간 동안 식당을 찾아 헤맨 일도 있었다.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택시 승차거부 당할 뻔

대구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간혹 만날 수 있었다. 택시를 탈 때 한 번은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승차거부를 당할 뻔 했는데 홍콩인이라고 설명하고 나서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서울 건국대 인근 양꼬치 거리에서 한 중국 음식점에 취재하러 들어가려다 거꾸로 홍콩인이라며 입장 거절당한 일도 있었다. 한국 정치인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선거를 이유로 거절했다.

우리는 3월 6일 오전 대한항공 편으로 일본 후쿠오카를 경유해서 홍콩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으로 가니 항공편이 이미 취소돼 있었다. 항공사에 다른 비행기를 문의했지만 환불 빼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다른 항공사에 물어봐도 홍콩행 비행기가 아예 없었다. 결국 홍콩 본사의 도움으로 오후 4시 30분 일본 간사이 공항으로 출발하는 아시아나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홍콩에는 이날 자정 무렵 도착했다. 검역원이 한국 대구를 다녀왔냐고 물었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대구를 다녀 온 신분이라 달리 말할 수 없었다. 검역원에게 강제격리를 통보받고 공항에서 버스를 2시간이나 기다린 뒤 이튿날 오전 3시 격리시설에 도착했다.

▲ 홍콩 우한폐렴 격리시설 수용자들에게 배포된 식단ⓒ애플데일리

어차피 격리생활을 각오하고 간 출장이었다. 방 밖으로 일체 나갈 수가 없어 방 안에서 매일 운동을 하며 한국어 공부를 했다. 옆방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마치 이 아파트 안에 나 혼자만 사는 느낌이었다. 간간히 창문을 열어 옆방에 누가 있나 보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 창문 밖으로 시위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격리 시설이 이웃 아파트와 너무 가깝다며 반대시위를 하는가 하면, 푸른 옷을 입은 친중 시민들이 와서 “수용자 힘내라, 우한 힘내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런데 창문 밖의 저 사람들은 자유지만, 창문 안의 우리들은 자유가 없었다.

‘창밖에 시위하는 사람들은 자유가 있지만, 창안의 우리는 자유가 없었다’

격리시설은 새 아파트였고 드라이어, 전기포트 등도 있었다. 식사는 배달됐지만 데워서 주지는 않았다. 컵라면이 지급돼 배가 고플 때 허기를 때울 수 있었다.

홍콩인은 격리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격리시설에 두 번 이상 수용된 사람은 200여 명이나 됐다. 이들 중 일부는 일부러 중국을 다녀온 사실이 밝혀졌다. 한 명은 3번째 수용됐다. 퇴소 시 실내 비품과 컵라면을 박스 째로 가져 간 사람도 있었다.

이들의 국적이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홍콩 당국은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수용자에게 하루 200홍콩달러(약 3만3000원)를 부과하고 있다.

방에는 인터폰이 있었다. 이 인터폰이 울릴 때가 가장 긴장됐다.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말을 들을까봐 였다. 매일매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안했다.

3월 15일, 드디어 퇴소일이 왔다. 대구를 떠난 지 14일, 격리시설에 입소한 지 9일째 되는 날이었다. 드디어 집에 간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보고 싶던 가족들과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그러나 시설을 완전히 빠져 나올 때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만약 양성 판정이 나오면 다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 홍콩 우한폐렴 격리시설 수용자들에게 제공된 생활수칙. "퇴소시까지 방문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고 명시돼 있다.ⓒ애플데일리

퇴소 예정시간은 오후 11시 59분이었는데, 11시 30분 우리를 태울 승합차가 시설에 도착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나갈 때의 기쁨은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청도 대남병원 환자들 영양상태 안 좋아 보여

티파니: 나는 예전에 스튜어디스로 일할 때 근무 차 한국에 몇 번 간 적은 있었다. 하지만 한국 방문이 익숙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홍콩과 다른 점은 거리 곳곳에서 소독약을 쉽게 볼 수 있는 점이었다. 취재 차 어느 가정을 방문했을 때 그 집주인이 우리 손에 분무기로 소독약을 뿌린 적도 있었다.

청도 대남병원을 갔을 때는 공포를 느꼈다. 몇몇 사람이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유령병원이었다. 병원 바깥에서 보니 적막 속에 건물 2층에서 살균제를 분수처럼 뿌리는 소리만 들렸다. 주변 환경은 더러웠다. 병원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볼 수 있었는데, 환자들의 영양 상태가 극히 안 좋아 보였다. 적막과 공포가 뒤섞인 그 특유의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편 한국 의사들은 아주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었다. 대구에 자원봉사를 온 의사들은 자신들을 ‘Dirty Team’이라 자칭하며 일하고 있었다. 서울 종합병원의 한 여의사는 영양주사를 맞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진료를 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택시를 탔을 때는 기사가 TV에서 본 홍콩 시위가 너무 폭력적이라고 비난했다. 나는 홍콩 시위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3월 5일 인천공항을 떠나 경유지인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 공항 검역원이 대구를 다녀왔냐고 물었다.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비록 경유였지만 간사이 공항에서 신체검사를 하는데 상당 시간을 보냈다. 혹시 격리당하는 것 아닌가 불안했지만 2시간 뒤 무사히 홍콩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 3월 15일 자정 격리시설 퇴소 직전 기념촬영한 '애플데일리' 한국취재팀. 왼쪽이 티파니 (Tiffany), 오른쪽이 도즈 (Dorz)ⓒ애플데일리

홍콩의 격리시설은 새로 지은 깨끗한 아파트였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건물이라 예전에 주민들이 이웃 아파트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시위를 여러 번 벌인 적이 있는 곳이었다.

홍콩 격리시설, 복도에서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적막감에 휩싸여


격리시설은 사람이 없어 적막했다. 숨만 쉬어도 크게 들릴 것 같은 복도의 적막한 분위기는 여태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서비스는 괜찮았고 효율적이었다. 식사는 삼시 세끼 진공포장 배달이 됐으며 날짜별 식단도 배포됐다. 신문도 매일 배달됐다. 모두 무료였다. 받은 쓰레기봉투는 다 쓰면 묶어서 방 밖에 내놓으면 됐다.

단 입주한 직후 화장실을 보니 변기에 핏자국이 있었다. 관리원에게 방 교체를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고, 대신 세척을 해 줬다. 그리고 관리원은 나에게 세제를 주며 변기를 매일 씻으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매일 체온을 두 번 측정해 표에 기입해야 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보낸 물건은 받을 수 있었지만 음식물은 반입금지였다. 방문 밖을 나가 복도를 걷는 것도 금지됐다. 그 외에 특별한 생활 수칙은 없었다. 방에 TV가 없어서 회사로부터 노트북을 받아 해결했으며, 기사를 다 쓴 후에는 가족들이 넣어준 책을 읽으며 지냈다.

격리기간 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볼 수 없던 게 가장 힘들었다. 주변이 너무 적막했다. 검사 결과가 안 좋게 나오는 게 아닌가 매일 걱정했고, 인터폰이 울릴 때 안 좋은 결과를 들을까봐 제일 긴장됐다.

좋은 인생 경험이었다. 가정과 집 그리고 친구들의 소중함을 느꼈다. 퇴소 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집에 가서도 검사 결과에 따라 다시 격리시설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지금도 약간은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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