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해야 할 말이 '검찰개혁'?… 관객이 쓴 '쪽대본' 형식으로 어색한 개그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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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일 : 잠깐!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다!
- ▲ KBS 2TV '개그콘서트 - 주간 박성광'의 한 장면. ⓒKBS 방송 화면 캡처
영길 : 어디 해보거라!
선일 : 검찰개혁!!
KBS 2TV '개그콘서트'가 '검찰 개혁'을 소재로 한 풍자 코미디를 선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개그콘서트의 엔딩 코너인 '주간 박성광'은 지난 25일 '쪽대본'이라고 적힌 종이 빈칸에 방청객으로하여금 직접 대사를 채우도록 한 뒤 이를 보고 개그맨들이 즉석에서 연기를 펼치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이날 한 방청객은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다"는 선일의 다음 대사 자리에 "검찰개혁!!"이라는 단어를 썼다.
죽기 전에 할 말이 '검찰개혁'이라는 뜬금없는 대사가 쪽대본으로 올라오자 개그맨들은 '이걸 어떻게 말하냐'면서 잠시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이다 한 명씩 우린 모르겠다고 도망가면서 코너가 끝났다.
얼핏 보기에 이 같은 연출은 풍자 코미디에 인색한 우리나라의 방송 문화를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한편으론 여권 못지않게 일반 국민도 검찰개혁을 강하게 열망하고 있다는 좌파 진영의 논리를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코너는 미완성 대본으로 바로 촬영에 임해야 한다는 설정 아래 임의로 선정된 관객들이 작가 대신 대본을 완성하고, 그 대본으로 배우들이 즉흥 연기를 펼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관객의 돌발 참여로 예측불허의 재미를 선사한다는 게 방송 의도인데, 이날 방송은 재미는커녕 안방에 모인 시청자들의 '불편함'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문재인 탄핵' '조국구속' 나왔으면 바로 편집됐을 것"
방송 이후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개콘 '주간 박성광'에 검찰개혁이 나왔다"는 게시물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문재인 탄핵', 이런 걸 썼으면 바로 편집인데 '검찰개혁'을 쓰자 無편집" "너희 비리 눈감아줄 비위 맞출 놈 찾는 게 개혁이냐?" "정부 선거개입 수사하는 검사를 부산·제주도 보내버리는 게 검찰개혁?" "우리는 개그를 보러 왔지 정치질 하는 걸 보려는 게 아닌데 언제까지 저러려는지" "아니 개콘은 PD 뽑을 때 정치 성향부터 보고 뽑나? 어떻게 저렇게 꾸준히 정치색이 들어가지?" "좌파 까는 개그는 절대 안 나옴" 등 갖가지 댓글로 해당 프로그램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drsquat'라는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설날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보는 개그 프로에 굳이 '검찰개혁'이라는 키워드를 넣어야 했느냐"며 "만약 관객이 '조국구속'이라고 썼어도 그대로 방영됐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개그 프로를 빙자해 '깨시민 코스프레'를 하다 인기가 급락한 게 지금의 개콘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며 "100% 애드립이라는 것은, 공개 방송 프로에서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연기자들은 몰랐다 하더라도, 코너를 짜고, 감독하는 사람들은 알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하면, 코끼리를 연상하게 되는 원리와 마찬가지로, 웃자고 한 '검찰개혁'이었다고 발뺌하는 것도 변명거리가 안된다"며 "의도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온 가족이 다 보는 프로그램을 표방한 방송에서, 의도적으로 정치적 선입견을 주입시키는 이런 X같은 경우를 또 봐야 하다니…, 기분이 정말 더럽다"고 개탄했다.
"개콘, 정부 비리 의혹엔 침묵하다 뜬금없이 '검찰개혁'"
KBS 내부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KBS공영노동조합(이하 공영노조)은 31일 '개그콘서트에도 검찰개혁, 예능까지 선동도구인가?'라는 제하의 성명에서 "지난 25일 밤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뜬금없이 '검찰개혁'이 등장해 KBS 개그프로그램까지 정치적인 선동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은 검찰이 정권비리를 수사하는 것을 '검찰개혁'에 저항한다는 식으로 수사 방해를 해왔는데, 개그콘서트는 그동안 이런 정권의 비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풍자나 비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정부가 진실을 호도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검찰개혁'이라는 표현을 사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방송했다"고 지적했다.
공영노조는 "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19조에는 연예오락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앞으로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이런 교묘한 수법의 '정권 편들기'가 시사·예능·보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해 8월 박형근 PD가 "그동안 없었던 시사나 풍자를 넣겠다"고 공언한 이후 개그콘서트는 '반일(反日) 정서'를 앞세운 정치풍자 코너(복면까왕)를 선보인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국내 정치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룬 적은 없었다.
개그콘서트는 5년 전, 박근혜 정부를 폄훼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추어올리는 코미디로 '편향성 논란'에 휘말린 뒤부터 정치풍자 개그를 자제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