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연극 '안녕 말판씨', 무일푼으로 시작… 입소문 타고 장기 공연 안착하기까지
  •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박성원 기자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박성원 기자
    "이 대문은요. 작가 분 고모님이 포항에서 쓰시던 철재 대문을 뜯어 온 거예요. 또 이 안방문은요. 작가 분 어머니께서 쇳물 만지는 용접 일을 하시는데, 저희를 위해서 직접 만들어주셨어요. 이렇게 주위 분들의 도움을 받아 달랑 세트 두 개만 놓고 시작을 했죠."

    지난 8월 말부터 두 달여간 대학로를 뜨겁게 달궜던 연극 '안녕 말판씨(연출 홍루현)'는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해 11월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배우 성병숙(64)은 '연극 무대에 올리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무대를 구하러 발품을 팔았다.

    장소는 아는 극장 대표에게 부탁해 스케줄이 비는 월·화요일에는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물론 대관료는 무료였다. 무대 소품은 작가의 가족 도움을 받아 마련했다.

    배우들은 '경상도 사투리 되고, 연기 되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주위에서 끌어모았다. 주인공 고애심 여사의 딸 이수연 역에는 성병숙의 친딸(서송희)을 섭외하고, 사위 역에는 서송희의 학교 동기를 섭외하는 식이었다.
  •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배우로 활동 중인 서송희(좌)는 이번 작품에서 모친(성병숙)과 함께 모녀 연기를 펼쳤다. ⓒ박성원 기자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배우로 활동 중인 서송희(좌)는 이번 작품에서 모친(성병숙)과 함께 모녀 연기를 펼쳤다. ⓒ박성원 기자
    "지난해 이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홍루현 작가님과 함께 연극으로 만들기로 결심했죠. 그런데 저희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무일푼으로 시작했죠. 그렇게 알음알음 배우들을 끌어모아 '노개런티'로 연극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밥 사먹을 돈이 없어 배우들끼리 연습만 하고 헤어지기로 약속할 정도였다. 어렵게 구한 한 관에서 프리뷰 공연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작가 가족이 만들어준 대문 두 개가 세트의 전부였다.

    그런데 관람객들 사이에서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안녕 말판씨'는 월·화요일뿐만 아니라 수·목·금·토·일요일까지 프라임 타임을 장식하는 장기 공연작이 됐다.

    "그야말로 반응이 터진 거죠. 공연 초창기 때 저희 공연을 3번이나 보러 오셨다는 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당신이 아주 골치 아프고 힘든 일이 있었는데 저희 공연을 보고 너무 힘을 받아서 계속 오게 되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공연을 하는 저희들도 같은 심정이에요. 이걸 하고 나면 정말 막 힘이 솟고 신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뒤편에 작가 고모의 도움으로 직접 포항에서 공수했다는 녹슨 철재 대문이 보인다. ⓒ박성원 기자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뒤편에 작가 고모의 도움으로 직접 포항에서 공수했다는 녹슨 철재 대문이 보인다. ⓒ박성원 기자
    아이러니하게도 '안녕 말판씨'는 '죽음'을 화두로 삼고 있다. 말판증후군(Marfan syndrome)에 걸려 의사로부터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주소원은 할머니(고애심)를 설득해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얼핏보면 이해가 안가는 행동처럼 보이나, 연극을 보고 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신이 죽고 나면 쓸쓸히 홀로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할머니를 생각해 미리 '사전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심한 주소원은 인정 많은 이웃들과 십수년만에 돌아온 아버지와 함께 '축제 같은' 장례식을 준비한다.

    59세 고애심 여사는 친딸에 이어, 이젠 함께 살고 있는 손녀딸마저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다. 엄마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주소원은 아직 19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에서 그늘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끔은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가족에게 앙칼진 원성을 토해내기도 하지만, 금세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인다.
  •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박성원 기자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박성원 기자
    "보셔서 아시겠지만 정말 밝은 작품이에요. 이 작품에는 '인생? 그거 별거 아냐. 신나게 살면 돼. 정말로 중요한 건 바로 오늘이야'라는 모토가 깔려 있어요. 나를 원망하고, 남을 원망하고 그렇게 살기엔 너무 시간이 아깝잖아요?"

    성병숙을 중심으로 하나둘 모인 배우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사연을 안고 있다. 배우 중 한 명은 방광암 2기로 투병 중이다. 빠듯한 출연료 덕분에 생활고는 기본. 연극인용 임대 주택에 들어간 배우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대본을 쓴 작가 역시 드라마 단역·조연 생활을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저마다 다 사연이 있더라고요. 이 작품이 결코 남 얘기가 아닌 거죠. 다들 한가지씩 걸려 있어요. 그래서 다들 연기를 하면서 힘을 얻고 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이렇게 젊고 용기 있는 친구들과 함께 연기를 하면서 큰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있어요."
  •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배우로 활동 중인 서송희(좌)는 이번 작품에서 모친(성병숙)과 함께 모녀 연기를 펼쳤다. ⓒ박성원 기자
    ▲ 배우 성병숙이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라디오 드라마였던 '안녕 말판씨'를 연극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배우로 활동 중인 서송희(좌)는 이번 작품에서 모친(성병숙)과 함께 모녀 연기를 펼쳤다. ⓒ박성원 기자
    잘 알려지지 않은 라디오 드라마를 연극 무대에 올려 '대박'을 친 성병숙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안녕 말판씨'를 극장에 거는 것이다.   

    "이걸 지금 얘기해도 되나 싶은데, 지금 '안녕 말판씨'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가님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요. 예감이 좋아요. 작가님이 워낙 감각이 있는 분이라서요. 이 분은 드라마 연기도 겸하는 분이라 나중엔 드라마 작가를 하셔도 성공하실 것 같아요."

    연극 '안녕 말판씨'는 아쉽게도 27일을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가지만, 성병숙의 농익은 연기는 대학로의 다른 극장에서 또 만날 수 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테너를 빌려줘'에서 성병숙은 친딸 서송희와 함께 또 한 번 '모녀 케미'를 발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