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청원 답변서 "입법 지원하겠다"… 학계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편집권 침해"
  • ▲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는 한상혁 방통위원장. ⓒ방송통신위원회
    ▲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는 한상혁 방통위원장. ⓒ방송통신위원회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가짜뉴스'의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신문 1면에 '정정보도'를 게재하도록 하는 법안이 입법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통신 분야 주무 장관인 한 위원장이 신문 기사의 위치까지 간섭하는 것 자체가 '월권'인 동시에 '편집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문 1면에 정정보도 강제로 싣는 법안 지원"

    문제의 발언은 한상혁 위원장이 24일 '언론사 가짜뉴스의 강력한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글에 정부 측 답변을 다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한 위원장은 "최근 들어 사실과 다른 허위정보가 온라인에서 만들어지면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고, 이러한 언론의 오보가 온라인에서 또다시 부풀려져 재생산되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사회 각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뒤에 숨어 민주주의 공론의 장을 훼손하는 악의적인 의도를 지닌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방관할 수만은 없다"고 강조한 한 위원장은 "국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허위조작정보 대응을 위해 다수의 법안을 발의했다"며 관련 법안의 대표 사례로 두 가지를 소개했다.

    한 위원장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허위조작정보를 차단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언론사의 오보 등에 대한 '정정보도 위치'를 신문의 첫 지면에 게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라며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이들 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광온 "허위보도 피해 막기 위해 정정보도 강화"

    공교롭게도 한 위원장이 거론한 법안들은 더불어민주당에서 허위조작정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광온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들이었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포털 플랫폼 사업자들이 각자의 기준을 갖고 허위조작 정보에 대응하고 있는데, 이 기준이 모호하다"면서 "플랫폼 사업자들의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털 등 플랫폼 사업자에 가짜뉴스 문제를 계속 일임하지 말고, 정부가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기준점을 세우고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매체별로 정정보도문의 위치를 강제하는 법안은 지난해 말 박 의원이 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법 개정안'을 가리킨다. 이 개정안은 언론사가 정정보도문을 실어야 할 경우 ▲신문은 1면 ▲정기간행물은 본문이 시작되는 첫 지면 ▲방송 뉴스는 첫 리포트 ▲인터넷신문은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강제 배치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하면 3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이 법안은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언론중재법상 정정보도 청구권'을 한층 강화한 것이다. 현재는 오보 기사와 '동일한 비중'으로 정정보도를 하면 되지만,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정정보도문 게재 결정이 내려지면 오보의 경중(輕重)과 관계 없이 이를 '첫 화면'에 실어야 한다.

    "가짜뉴스 빌미로 '언론 통제' 의도 엿보여"

    이를 두고 언론계에선 취재 과정엔 문제가 없으나 결과적으로 의도치 않게 오보를 낸 경우에도 징계성이 강한 정정보도를 한다면 언론 보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일부 언론의 정정보도 행태에 개선될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나, 정정보도 역시 언론의 영역"이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부가 법으로 정정보도문의 위치까지 강제하겠다는 건 반민주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게다가 이 같은 법안의 입법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방통위원장이 신문 지면 편집까지 간섭하는 건 명백한 월권 행위"라며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편집권 침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