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카자흐스탄 포럼서 '北 비핵화' 논의… "'경제지원·핵폐기 교환' 카자흐 방식 참고해야"
  • ▲ 지난 26일 서울 용산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제2회 한-카자흐스탄 비핵화 포럼이 열렸다. ⓒ박성원 기자.
    ▲ 지난 26일 서울 용산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제2회 한-카자흐스탄 비핵화 포럼이 열렸다. ⓒ박성원 기자.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방법을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카자흐스탄이 북한의 비핵화 결심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은 26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제2회 한·카자흐스탄 비핵화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했을 때를 대비해 카자흐스탄의 과거 비핵화 과정을 적극 참고해야 한다는 제안이 눈길을 끌었다.

    韓-카자흐 전문가들 “北의 비핵화 결심부터 이끌어내야”

    이날 포럼 제2세션에서는 드미트로파블렌코 블라지미르 니콜라예비치 카자흐스탄 원자력위원회 자문위원,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 양측 전문가들이 북한 비핵화에 참고가 될 만한 카자흐스탄식 비핵화 모델에 대해 설명했다.

    양국 전문가들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먼저 간접적인 설득으로 비핵화 방법론을 제시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핵무기 및 투발 수단 폐기, 핵물질 생산시설 파기, 핵무기 연구개발 인력들의 업무전환교육, 이어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를 폐기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카자흐스탄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지난해 미국 협상팀에 말했던 “우리 아이들이 핵무기를 지고 살게 할 수 없다”는 주장이 과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브 카자흐스탄초대 대통령이 세미파라친스크 핵실험장을 전격 폐쇄할 때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며, 북한 비핵화에서 카자흐스탄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먼저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결심을 할 수 있도록 국제 학술대회와 같은 대화의 장을 마련한 뒤 여기에 북한 관계자를 초청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카자흐스탄과 대사급 수교를 원하는 북한을 중앙아시아 비핵화지대 논의 학술대회에 초청하면 분명 응할 것이고, 이때 비핵화에 대해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북한을 설득해보자는 제안이었다.
  • ▲ 한-카자흐스탄 전문가들은 과거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경험이 북한 비핵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성원 기자.
    ▲ 한-카자흐스탄 전문가들은 과거 카자흐스탄의 비핵화 경험이 북한 비핵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성원 기자.
    전문가들은 북한이 1990년대 카자흐스탄이 했던 것처럼 핵 폐기와 경제지원을 맞바꾸는 데 동의한다면, 그때부터 핵무기를 시작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기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잠수함, 액체연료의 용도 전환 등을 단계별로 추진하고, 이후에는 화학무기·생물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전체를 폐기하자고 제안했다.

    전문가들 “핵무기로 시작해 미사일·잠수함·연료까지 폐기해야”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북한이 보유한 핵연료와 고농축 우라늄(HEU)은 과거 미국이 카자흐스탄에 했던 것처럼 돈을 주고 매입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북한의 우라늄 광산도 폐쇄해 핵연료 추가 공급을 차단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카자흐스탄이 국제과학기술협력센터(ISTC)를 통해 자국 핵무기 과학자들의 전직을 도왔던 것처럼 북한 핵과학자와 기술자들도 작업전환교육을 받게 해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양국 전문가들은 “북한 핵무기 전문가들이 사회주의 교육기관에서 (카자흐스탄 전문가와) 유사한 교육을 받았으므로, 카자흐스탄에서 수행한 방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할 때를 대비해 ‘채찍’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춤형 대북제재와 이를 위한 다자간 제재 기준의 정비가 대표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카자흐스탄 당국이 협력해야 하며, 그래야 북한 핵무기 고도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변 핵시설이나 풍계리 핵실험장의 폐쇄 및 검증 때도 카자흐스탄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자흐스탄이 폐기한 세미파리친스크 핵실험장 주변에서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은 50여 만 명에 달했다. 카자흐스탄은 이 핵실험장을 폐쇄하면서 러시아·미국과 협력해 생태계 영향 파악과 시계열역학조사 등 다양한 실험과 조사를 했다고 한다. 한국이 이런 경험을 공유한다면 북한 비핵화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 카자흐스탄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 ▲ 이제는 폐쇄된 카자흐스탄 세미파리친스크 핵실험장의 '그라운드 제로(폭발 원점)'. ⓒ유엔 공개사진.
    ▲ 이제는 폐쇄된 카자흐스탄 세미파리친스크 핵실험장의 '그라운드 제로(폭발 원점)'. ⓒ유엔 공개사진.
    “카자흐 핵실험장 폐쇄 노하우, 한국과 북한에 큰 도움될 것”

    카자흐스탄 전문가들은 또한 세미파리친스크 핵실험장을 폐쇄한 뒤 3단계 방호체계를 구축하고, 주야간 원격감시, 무인 경계 및 수시 모니터링, 비상시 응급출동 체계 등을 마련한 카자흐스탄 당국의 조치도 한국의 원자력 시설 방호체계 정비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검증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국 전문가들은 “한국이 카자흐스탄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카자흐스탄 당국이 김정은에게 적극적으로 비핵화에 나서도록 유도할 수 있다”며 “2021년 8월 29일 세미파라친스크 핵실험장 폐쇄 30주년 기념행사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이 논의한 카자흐스탄식 비핵화 모델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4월 언급해 주목받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한 뒤 1140개의 핵탄두와 100여 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 4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카자흐스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브가 ‘핵 대신 경제’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이들은 ‘협력적 위협감소(CTR)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넌-루가 프로그램’으로도 알려진 CTR를 통해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비핵화를 이행했다. 소련 시절부터 40년 넘게 450여 회 핵실험을 실시한 세미파라친스크 핵실험장 때문에 수십만 명의 주민이 방사능 오염에 시달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