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아픔은 상처로 남았는데, 진실은 덮어둔 채로 상처를 파먹고, 또 파먹는다”
  • 요즘 감옥 다녀온 사람들이 말이 많다.

    힘든 인생 살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감옥 다녀온 사연이라면 실로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감옥 갔다 온 것이 누구에겐 전과가 되고, 누구에겐 정계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스펙이 된다. 감옥 다녀온 많은 정치인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면, 잘못해서 감옥 다녀온 사람은 없다. 다 나라 위해서 투쟁하다 그랬단다. 사실 그가 말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주류가 된 이 나라에선, 그때 감옥살이 한 번 안 해 본 인사는 ‘애국’하고는 거리가 먼 것처럼 치부된다. 그들이 누굴 위해서 싸웠는지, 무엇을 위해서 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때 감옥에 갔었으면 그만이다. 뭘 잘못해서 갔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때 감옥에 있었으면 되는 거다. 그러면, 나라에서 특별히 챙겨주는 유공자도 되고, 국민의 세금으로 톡톡히 챙겨 먹을 수 있는 수혜자도 된다. 요즘같이 취업하기 힘든 시국에 자식 취직할 길도 열어 주고, 부모 노릇 제대로 할 수도 있게 된다.

    그들 말대로라면 이 나라 국민이라면 당연히 대대로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유공자들인데도 아무도 모르게 정하고, 자기네끼리 주고받는다. 나라를 위해서 싸운 자랑스러운 투사라면서 쉬쉬한다. 무엇을 주고받건 간에 드러나지 않도록 ‘눈 가리고 아웅’ 한다. 뭔가 숨기고는 있고, 들키면 안 되고, 자기네끼리 나눠 먹기는 해야 되겠고... 나름 고생이 많다. 자꾸 숨기려고만 하니까 드는 생각이다. 정말 오해였으면 좋겠다.

    소위 ‘진보’라 하는 세력이 집권한 대한민국. 집권 세력의 한 인사는 수백만의 사람을 죽이고 수천만의 인권을 유린한 자를 향해 ‘만세’를 외칠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전 국민의 살길을 열어 놓은 지도자는 독재자요, 철천지 원수로 취급받는다. 분명 ‘사람이 먼저’라면서 뭐가 먼저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많은 이들이 뭐가 옳은 건지, 그른 건지. 뭐가 선인지, 악인지 혼란스러워하는 형국이다.

  • ▲ 박원순 서울시장은 과거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었다. ⓒ뉴시스
    ▲ 박원순 서울시장은 과거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었다. ⓒ뉴시스

    왜 그럴까?

    선과 악의 기준선이 국민 각자의 마음에 제대로 그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와 지식에 기반하지 않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기준이 문제인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아야, 진짜를 알아야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데, 그것을 모른 채 보여주는 대로, 들려주는 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기의 기준으로 삼고 선과 악을 나눈다. 에덴에서의 오류가 유전된 것인지...

    이렇게 선과 악에 대한 오류를 기반 삼아 만들어 가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수많은 심판들, 과거로의 후퇴,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갈 에너지의 고갈...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자기보호 본능이 기준이 되어 적(그들에게 적은 곧 악이다)으로 간주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행하는 광기 어린 폭력!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배신도 상관없다. 누명 씌우기 쯤은 양심에 가책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상대의 약점과 허점은 언제든지 파헤칠 준비가 되어 있는 하이에나들이 각계각층의 노른자위를 차지했다.

  • ▲ 과거사 문제 해결을 주장해왔던 송영길(더불어민주당)·손혜원(무소속, 당시 민주당)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엄지 척’을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다. ⓒSBS 뉴스 캡쳐
    ▲ 과거사 문제 해결을 주장해왔던 송영길(더불어민주당)·손혜원(무소속, 당시 민주당) 의원은 위안부 피해자인 故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엄지 척’을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다. ⓒSBS 뉴스 캡쳐

    과거의 아픔은 모두의 상처로 남았는데, 진실은 덮어둔 채로 상처에 기생하는 벌레들처럼 상처를 파먹고, 또 파먹는다. 진실이 밝히 드러나면, 상처가 치유돼 버리면, 숙주 잃은 기생충처럼 돼 버릴까 두려운 게다. ‘비열해도 괜찮고, 추잡스러워도 괜찮다. 어차피 인간 세상은 다 그런 거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진정한 자기 점검이 없는 이들이 다른 이들을 점검해 대는 꼴이,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자가 남의 눈의 티끌을 보고는 빼라고 지적하는 꼴과 같다.

    최고의 엘리트, 거듭난 지성으로 불리는 찰스 콜슨의 확실한 자기 점검은 감옥을 다녀온 체험 전후에 이뤄진다. 자신의 죄성을 대면한 그는 철저하게 변화된다. 어거스틴이 그랬던 것처럼. 지성의 진정한 변화가 세기의(적어도 한세대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이들을 통해서 보았다.

    찰스 콜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실상을 마주한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합리화에 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인지하고, 신속하게 회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게 된다. 남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단 순간에 판단하고, 예리하게 비판하며, 그에 맞는 징벌의 수준을 정하는데, 누구나 베테랑 검사 수준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죄에 대해선 자기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사건을 신속히 무마시켜 버리는 유능한 변호사가 된다. 이것이 모든 개인에게 나타나는 본능적 현상이라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 성경 속 다윗이 선지자 나단의 입을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지적당했을 때, 그 순간 통회의 고백과 함께 뼈아픈 회개를 했듯이.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그때 자신을 바로 점검하고, 잘못이 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내가 정책을 잘못해서 경제가 엉망이 됐어도, 재빠른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현실을 부정한다면 어느 누가 그를 존경하겠는가? 다른 누군가가 잘못한 거지, 나는 잘못이 없다고 끝까지 우긴다면 누가 그를 인정하겠는가? 거짓말도 자꾸 하면 자신마저도 속이는 믿음이 된다. 거짓에게도 힘이 있다. 기만의 힘 말이다. 거짓으로 계속 남을 기만하면 그건 결국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 된다. 결국 자기 영혼을 유린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는다. 종래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이 나라의 지도자와 현 집권 세력은 이 교훈을 꼭 명심했으면 한다. 거짓과 시대의 상처를 파먹고 사는 기생충으로 남지 마실 것을 충언 드린다.


    김윤지
    청년한국 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