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입설 조사' 특별법 국회 통과 땐 일제히 환영… '공청회' 열자 태도 바꿔 맹비난
  • ▲ 지난 8일 국회 공청회에서 논란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각 의원들의 발언. ⓒ뉴시스 그래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8일 국회 공청회에서 논란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각 의원들의 발언. ⓒ뉴시스 그래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이 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를 계기로 징계를 받았다. 언론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만원 씨를 초청했고, 지씨가 ‘막말’을 했다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이 공청회의 주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날 공청회는 ‘5·18 진상규명 특별법(이하 5·18 특별법)’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특별법은 사실 여야가 박수를 치며 통과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 진상조사’라는 항목이 들어 있다.

    여야가 환영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2017년 초, 5·18 특별법은 이미 여러 의원이 같은 주제로 발의한 상태였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민간인에 대한 헬기사격 의혹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 관련 진상조사에 관한 특별법’을,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특별법안’ 등을 내놨다.

    5·18 특별법안은 여럿 나왔지만, 문제는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의혹’에 대한 정의였다. 일부 시각처럼 5·18을 ‘폭동’이라고 보느냐, 아니면 ‘민주화운동’으로 보느냐에 따라 제기하는 ‘의혹’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이름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다른 법안들이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정리되는 듯 보였다. 같은 해 7월 당시 국민의당·더불어민주당·바른정당·정의당 등이 약간씩 서로 다른 특별법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통합법안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그 외 정당 간 의견차이가 나타났다. 관련 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거칠 때마다 ‘진상규명’ 범위를 두고 설전이 오갔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지난해 2월6일에는 공청회를, 같은 달 20일에는 법안심사를 했다. 이때 각 당의 요구는 달랐으나 “5·18을 두고 나오는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모았다.

    당시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은 “5·18과 관련한 가짜뉴스가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같은 당 이종명 의원은 “최근 가장 민감한 문제로 떠오르는 북한군 개입도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국회는 ‘북한군의 5·18 개입’ 여부까지 5·18 특별법의 진상 규명 범위에 넣기로 합의했다.
  • ▲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주요 조항들. 3조 진상규명 범위에는 '북한군 개입' 문제도 포함돼 있다. ⓒ법제처 법률정보시스템 캡쳐.
    ▲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주요 조항들. 3조 진상규명 범위에는 '북한군 개입' 문제도 포함돼 있다. ⓒ법제처 법률정보시스템 캡쳐.
    특별법 제3조 ‘5·18 진상규명의 범위 7가지’

    여야 합의에 따라 정해진 5·18 특별법의 진상규명 범위는 △5·18 당시 군에 의한 반인권적 민간인 학살,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하거나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사건 △5·18 당시 군 최초발포 및 집단발포 책임자 색출과 경위, 계엄군의 헬기사격에 대한 경위와 사격명령자 및 시민 피해자 △1988년 국회 ‘5공 청문회’에 대비해 당시 보안사령부와 국방부가 만든 ‘5·11 연구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사항, 이들에 의한 5·18의 진실 왜곡·조작 의혹 △집단학살 지점과 암매장 지점의 소재 및 유해 발굴·수습 △행방불명자의 규모와 소재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 또는 북한군 침투로 조작했는지의 여부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등 7가지다. 이와 관련해 5·18 피해자 가족들의 진상규명 신청도 받기로 했다.

    5·18 특별법의 진상규명 범위를 보면, 지금까지 실시했던 5·18 진상규명은 모두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5·18 직후인 1980년 군당국과 전라남도청 등은 당시 피해상황을 집계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정부차원의 공식 보고서가 아니었다.

    5년 뒤인 1985년 전두환 정부는 ‘80위원회’를 구성해 5·18에 대한 조사결과를 내놨다. 1988년에는 국회에서 ‘5공 청문회’를 통해 5·18 진상규명을 실시했다. 이때 노태우 정부는 ‘5·11위원회’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에는 국방부와 검찰이 합동으로 진상조사를 했고, 이는 곧 ‘5·18-12·12 특검’으로 이어졌다. 2007년에는 당시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5·18 문제를 다시 들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5·18 사망자 수자도 당시 루머였던 '2000명 이상'이 아니라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200명을 넘는 수준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고생 유방이 절단됐다는 소문은 대검에 가슴을 찔린 여고생이 있었다는 사실의 와전, 임산부를 살해해 태아를 적출했다는 주장은 진압군의 총에 맞아 숨진 임신 8개월 임산부가 있었다는 사실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때 논란이 됐던 헬기 기총사격설과 10여 년 전부터 흘러나온 ‘북한 특수부대 600명 침투설’ 또한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 ▲ 2015년 8월 촬영한 육군 AH-1S 코브라 헬기의 기총 사격. 몇 킬로미터 바깥의 바위가 부서질 정도다. 저런 기총사격을 받으면 건물 벽이 뚫리고 갈라지는 게 보통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년 8월 촬영한 육군 AH-1S 코브라 헬기의 기총 사격. 몇 킬로미터 바깥의 바위가 부서질 정도다. 저런 기총사격을 받으면 건물 벽이 뚫리고 갈라지는 게 보통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재인 정부 들어서자 ‘5·18 진상규명' 다시 지시

    2008년 이후 5·18 진상규명 문제는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다 ‘과거사’에 유독 관심이 많은 이번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화제가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한 지 석 달 만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과 헬기사격 의혹을 특별조사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국방부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9월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위원장은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이건리 변호사, 위원에는 강희간 예비역 공군 준장, 김성 전 <광주일보> 차장, 김칠준 대한변협 인권위원(전 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송병흠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안종철 광주시 5·18 국정과제실행추진위원장, 이장수 변호사, 광주혁신 시민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최영태 전남대 교수, 군에서 항공작전사령관을 지낸 최해필 예비역 육군소장이 선정됐다.

    국방부의 5·18 특조위는 2018년 2월까지 헬기 기총사격 진상을 조사했다. 조사에는 국방부와 육·해·공군 관계자는 물론 국가기록원·검찰·경찰 등이 동참했다. 33명의 조사관은 한 달 넘게 140여 부대를 돌면서 당시 상황을 조사했다. 그리고 지난해 2월7일 특조위는 “육군이 500MD와 UH-1H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특조위는 “5·18 민주화운동 기간에 육군은 광주에 출동한 40여 대의 헬기 가운데 일부 헬기를 이용해 5월21일과 5월27일 광주시민을 상대로 여러 차례 사격을 가했다”면서 그 근거로 당시 계엄사령부가 5월21일부터 여러 차례 헬기사격을 명령한 점을 들었다. 특조위는 또한 당시 AH-1 공격헬기에 20mm 발칸포탄 수백 발을 싣고 비행했던 게 근거라며 “이들이 광주시민을 향해 발칸포 사격을 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내놨다.

    그러나 특조위가 당시 헬기들의 실제 운행일지를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을 놓고 이견이 일었다. 당시 광주로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들이 “무장한 채 비행은 했지만 대량살상 위험 때문에 사격은 하지 않았다”며 극구 부인한 사실도 부각되지 않았다. 실제 20mm 발칸포를 사람을 향해 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특조위의 결론이 어느 정도나 논리적인 비약에 해당하는지를 언론도 지적하지 않았다.

    이런 특조위의 발표에 즈음해 나온 것이 바로 ‘5·18 특별법’이다. 특별법은 국회를 거침없이 통과해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시행 중이다. 하지만 ‘진상규명’을 할 위원회가 아직 꾸려지지 않았다. 각 정당이 추천한 위원 가운데, 문 대통령이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사람들의 임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 속에서 지난 8일 ‘자유한국당 막말 논란’이 터진 것이다.

    지난해 2월28일 ‘5·18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자유한국당·민주평화당은 물론 정의당까지 즉각 환영 성명을 내놨다. 광주지역의 5·18 유관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현재 각 정당은 극명하게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종명 의원은 "5.18 당시 북한군이 침투·개입했다"는 루머의 진상을 조사해 털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종명 의원은 “이번 기회에 북한군 개입에 대한 논란이 되는 부분을 깨끗하게 정리함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차단하고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