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땅 무상 몰수' 시도에 국제사회 주목... 20년 전 백인 이탈 후 '폭망'한 짐바브웨 꼴 날까 '우려'
  •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남아공 관련 트윗. 그의 트윗 이후 세계가 남아공을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美대통령 트위터 캡쳐.
    ▲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남아공 관련 트윗. 그의 트윗 이후 세계가 남아공을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美대통령 트위터 캡쳐.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남아공을 예의 주시하라”고 말한 트윗 때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남아공 정부가 추진 중인 토지 무상몰수 개혁을 알게 된 뒤 놀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난 3월 당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거듭 강조했던 '정부 개헌안 속 토지 공개념'과 사실상 같은 맥락이다.

    지난 3월 21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개헌안과 관련해 “귀가 번쩍 뜨이고 눈이 확 트이는 게 토지 공개념 도입이었다”면서 “이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입구”라고 환영했다. 그는 이어 “토지 공개념을 토지 공산주의라고 선동하는 반지성적·반이성적 세력이 있다”며 야당을 비난했다.

    추미애 더민주당 대표는 3월 27일 정강정책 방송 연설에 나와 다시 한 번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 들어 있는 토지 공개념을 적극 지지했다. 그는 “우리보다 앞선 많은 자유선진국가들이 이미 헌법과 법률에서 토지 공개념을 채택하고 있다”면서 “토지 공개념은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이념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토지 공개념’이 “정체된 대한민국의 발전과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치유할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트윗에 주목하게 된 ‘백인농장 무상몰수’

    트럼프 美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남아공의 토지 몰수, 그리고 거대한 규모의 농부 죽이기 정책을 면밀히 주시하라고 지시했다”며 “남아공 정부가 지금 백인 농부들의 땅을 몰수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남아공에서 백인들이 소유한 농장을 빼앗아 흑인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정책은 사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여당이 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내걸었던 공약이다. ANC는 “향후 5년 이내 백인들이 가진 토지 30%를 빼앗아 흑인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ANC가 여당이 된 1994년 당시 남아공 농지의 85% 가량이 백인 소유였다고 한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평화적 투쟁으로 종식시킨 만델라 대통령은 ‘토지 무상몰수’와 같은 극단적 방법이 다른 형태의 역차별과 인종 갈등을 불러 올 것이라며 토지 주인과 가격 협상을 벌여 적정 수준의 보상을 해주고 흑인에게 불하하는 방식을 택했다. 만델라에 이어 1999년 대통령에 당선된 ANC의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백인이 소유한 농지의 재분배가 계속 늦어지자 집권 2기인 2006년 ‘백인 토지 무상몰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추진하는 데는 장벽이 적지 않았다. 가장 큰 적은 여당 내부에 있었다. “백인의 토지뿐만 아니라 모든 재산을 빼앗아 흑인에게 돌려줘야 하며, 백인 기업은 정부가 몰수해 공기업으로 만들고 흑인들을 취업시켜야 한다”는 과격파가 그 세력을 넓힌 것이다. 결국 2008년 음베키 대통령은 ANC 총재에서 밀려나고, 같은 해 9월 대통령직까지 사임하게 됐다.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음베키에 이어 ANC 총재까지 차지했지만 지지 세력의 염원인 ‘백인토지 무상몰수 및 무상분배’를 추진하기는 너무도 어려웠다. 주마 대통령 또한 2010년 백인토지 몰수 및 분배 정책이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ANC와 남아공 정부가 토지개혁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이후 2016년까지도 농지를 가진 백인들과 땅을 요구하는 흑인들 사이에서 중재와 조정을 하면서 꾸준히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하지만 흑인들에게 돌아간 농지는 전체의 10% 불과했다. 흑인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갔다.
  • 습격 당한 남아공 백인 농장. 남편과 아이들이 총격으로 숨졌다고 한다. ⓒ호주 뉴스닷컴 관련보도 화면캡쳐.
    ▲ 습격 당한 남아공 백인 농장. 남편과 아이들이 총격으로 숨졌다고 한다. ⓒ호주 뉴스닷컴 관련보도 화면캡쳐.
    2017년 2월 극좌정당 ‘경제자유투사(EFF)’가 “백인 소유 농지를 무상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심각한 수준의 실업률, 치안 부재, 경기침체 등에 시달리던 흑인들은 이를 지지했다. 2017년 12월 결국 여당 ANC도 ‘백인 농지 무상몰수’를 당론으로 채택하게 된다. 그 사이에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ANC 내부에서 사임 압박을 받았다. 그는 결국 2018년 2월 물러난다. 후임은 시릴 라마포사 부통령이 맡게 됐다.

    시릴 라마포사 ANC 총재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의회에 ‘백인 농지 무상몰수 법안’을 검토해줄 것을 요청한다. 의회는 이 법안을 통과시킨다. ‘무상몰수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자 남아공 백인 사회의 반발이 격렬해졌다. 결국 헌법위원회(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에서 8월 말까지 위헌 여부를 심사하기로 했다. 최종 결정은 9월말에 나올 것이라고 한다.   

    ANC서 축출된 말레마, 극좌 정당 ‘경제자유투사’ 세우다

    이것이 트럼프 美대통령이 국무부에게 “예의 주시하라”고 지시한 남아공의 농지 무상몰수에 대한 간략한 역사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을 끝내고 핵무기까지 자발적으로 해체했던 남아공이 지금과 같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 치안 악화, 기존의 백인기업과 흑인 정치인의 결탁 및 부정부패로 흑인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자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은을 위한 나라’를 요구하는 강경파가 많아졌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ANC 내에서는 ‘줄리어스 말레마’라는 청년 정치인이 등장했다.

    ANC 내 청년 동맹 위원장이었던 말레마는 2008년에는 남아공에 있는 광산의 국유화를, 2009년에는 남아공 기업들의 국유화를 주장하며, 현실에 불만을 가진 흑인 서민층을 선동했다. 그의 선동에 남아공 최대 노조 COSATU와 ANC와 연립내각을 구성한 공산당이 동조했다. 말레마를 지지한 금속노조(NUMSA)는 “ANC와 COSATU, 공산당이 힘을 합쳐 남아공 사회의 인종차별적이고 식민지 제국주의 성향의 경제와 사회를 끝내는 민족민주혁명(NDR)에 나서야 한다”며 ‘혁명’을 부르짖기도 했다. 금속노조는 2011년 6월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흑인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며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인종차별적인 경제와 사회 질서를 종식시키기 위한 혁명적 조치가 전국 규모로 취해지지 않는 한 ANC의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며 극단적인 정책을 펼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금속노조와 이들을 선동한 말레마의 발언이 계속되자 남아공 경제인 연합(BUSA)은 기업과 금융기관, 광산, 토지 국유화에 대해 정부가 공개해명을 하라고 촉구했다. 경제와 정치의 정면 충돌 양상이었다. 결국 2011년 11월 ANC는 말레마를 징계·축출한다. 하지만 말레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3년 7월 말레마는 금속노조와 함께 ‘경제해방투사(EFF)’라는 극좌파 정당을 세우고 모든 기업과 토지의 무상몰수와 국유화를 계속 주장했다. 정부와 정치권에 불만을 품은 흑인들은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ANC마저 백인들이 가진 농지를 무상몰수한다는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 남아공 극좌파를 이끌며 백인들의 재산을 모두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줄리어스 말레마 경제자유투사 대표. ⓒ남아공 eNCA 뉴스 인터뷰 화면캡쳐.
    ▲ 남아공 극좌파를 이끌며 백인들의 재산을 모두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줄리어스 말레마 경제자유투사 대표. ⓒ남아공 eNCA 뉴스 인터뷰 화면캡쳐.
    남아공 안팎의 우려 “짐바브웨 전철 밟을까”

    트럼프 美대통령뿐만 아니라 남아공 안팎에서는 백인 농지의 무상몰수 법안이 시행될 경우 이웃나라 짐바브웨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남아공 북동쪽에 국경을 접한 짐바브웨는 1980년까지 ‘로디지아’라는 이름의 나라였다. 영국령 로디지아는 1965년 11월 독립을 선포하고 스스로를 로디지아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로디지아’라는 이름은 세계 최대의 광산업자이자 ‘대영제국 남아프리카 회사’와 ‘드비어스’의 설립자 ‘세실 존 로즈(Cecil John Rhodes)’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로디지아는 1970년대 후반까지 7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20만여 명의 백인이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며 나머지 흑인들을 지배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백인 농장주들을 축출하려는 흑인들의 반란이 일어나 결국 1980년 로버트 무가베가 대통령이 된다. 무가베는 나라 이름을 짐바브웨로 바꾼 뒤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말이 개혁이지 백인들이 가진 모든 토지를 빼앗은 뒤 흑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백인 농장주들의 저항은 거셌다. 무가베 정권이 1980년부터 1997년까지 백인 농장주에게서 유·무상으로 빼앗은 땅은 3만㎢ 정도였다. 무가베 정권은 백인들로부터 땅을 빼앗아 흑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1992년 법까지 제정했지만 이후 인수한 백인 농장은 100개도 채 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백인 농장주들이 소송을 벌여 함부로 나눠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가베 정권은 결국 1997년 7월 흑인들을 위한다며 5만 3,000㎢의 백인 농장을 무상몰수하는 토지법을 만들었다. 이 법안은 한 사람이 한 곳 이상의 농장을 가질 수 없고, 외국인이나 외국 기업은 토지 소유를 할 수 없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국 정부는 이 법안이 나오자 “우리가 돈을 댈 테니 토지를 유상수용하라”고 촉구했지만 무가베 정권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이 법안이 통과된 뒤 짐바브웨에서 농장을 비롯해 재산을 빼앗기고 해외로 이주하는 백인들이 급증했다.

    동시에 경제 또한 심각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경제력을 쥐고 있던 백인 농장주들이 쫓겨나다시피 해외로 나간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내전에 참전했던 일부 군인들이 농장을 무장 습격해 백인들을 ‘사냥’하는 사실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에서도 고립됐다. 그 결과 농업과 광업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 유통망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게 됐다. 농업과 광업이 기능을 상실하고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자 무가베 정권은 ‘양적 팽창’을 통해 위기를 모면해 보려 한다. 하지만 그 결과 사상 유례가 없는 인플레이션을 맞게 된다. 2008년 이후 짐바브웨 돈은 화폐 기능 자체를 상실하게 됐다. 결국 2015년 6월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우리 돈은 더 이상 화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12월에는 美달러와 함께 中위안을 공용 화폐로 채택했다.

    남아공 몰락한 뒤 아프리카 종주국은 어디?

    트럼프 美대통령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남아공을 지켜보는 이유는 과거 짐바브웨가 개인의 재산권을 강제로 짓밟은 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한 때 아프리카의 종주국이었고, 지금도 다이아몬드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남아공이 몰락하게 될 경우 미국과 러시아, 중국, EU의 세계 전략도 바뀔 것이기 때문에 세계 언론은 남아공의 농지 무상몰수 법안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한국 사회는 남아공이 포퓰리즘을 뒤쫓다 어떤 실수를 범하게 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특히 여당 수뇌부가 수 차례 강조한 '토지 공개념'이 사실상 토지 등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질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떠올리면, 한국도 이대로 가다가는 짐바브웨와 남아공에 이은 실수를 하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