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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장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의 폭파가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6월 12일로 예정된 美北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질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거 '비핵화' 사례들을 살펴보면 북한 비핵화가 어떤 '모델'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가장 최근의 비핵화 국가 이란
이란은 2015년 7월 P5+1(핵을 보유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과 핵협정을 타결하였다. 포괄적합의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이라는 합의안은 약속을 이행하면 이란의 무역과 금융 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제재를 푸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과 수준 및 비축량에 대해서 지정된 기간 동안 제한을 가하고 2030년까지 우라늄 농축 시설로는 '나탄즈 시설'만을 보유하도록 했다. 두 번째로 '포르도 시설'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우라늄 농축 활동을 하지 않으며 합의된 분야에서 국제 협력이 이루어 지는 핵, 물리 및 기술 센터라는 과학 연구 시설로 전환하고 어떠한 핵물질도 보관하지 않도록 했다.
이란에 2030년까지 추가적인 중수로 건설은 없을 것이며 여분의 중수는 모두 국제 시장에 수출하기로 하였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금지하고 모든 사용후핵연료는 이란 외부로 반출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주요 합의 사안의 이행 여부에 대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통한 검증이 이루어져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명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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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악관에서 이란 핵협정 파기를 발표하는 美 트럼프 대통령 ⓒ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스스로 핵포기에 나선 남아공과 리비아
앙골라 주둔 쿠바군과 구소련의 위협 때문에 비밀리에 핵무장을 했던 남아공은 1990년대 안보 환경의 변화와 세계 경제체제로부터의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비핵화를 선택했다.
1990년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이미 완성된 6기의 고농축 우라늄(HEU) 핵폭탄과 일부만 완성된 7번째 핵폭탄을 해체할 것을 지시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1993년에는 의회에 핵폐기를 선언하였고 같은 해 4월부터 8월까지 IAEA의 사찰을 받으면서 핵무기 프로그램의 완전한 해체를 검증받았다.
2015년에 남아공은 여전히 185파운드(85.91kg)의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하였지만 이를 IAEA가 통제하는 시설로 보내 보관하였다.
중동의 대표적 반미국가로 테러조직 지원까지 했던 리비아는 강력한 경제 제재 조치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3년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포기 선언을 하였다. 리비아는 핵과 화학무기 프로그램의 내용을 미국에 공개하고 이듬해에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도 가입하였다. IAEA의 사찰까지 받은 리비아는 핵 무기 제조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관련 서류들을 모두 미국 영토로 보냈다.
이로써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은 2003년 말 포기 선언을 한 뒤 불과 2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을 거쳐 2005년 완전한 비핵화에 성공했다. 미국은 핵이 완전한 폐기되고 나서야 비로소 리비아에 대한 보상을 시행했다. 미국은 2006년 리비아와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고 테러 지원국 목록에서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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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는 존 볼턴 美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그는 '리비아식 모델'을 따르는 북한 핵폐기를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뉴시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소련 국가들의 비핵화에 매우 효과적이었던 'CTR 프로그램'
자발적으로 핵무장을 선택했던 나라들과 달리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고 카자흐스탄은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 시대 때 배치돼 있던 구소련군 핵무기들을 떠안게 됐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통제가 허술해진 구소련의 핵무기들이 테러리스트나 국제 범죄조직의 손에 들어가 무차별적 핵테러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을 매우 우려했다.
美의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1년 민주당 샘 넌 상원의원과 공화당 리차드 루가 상원의원이 발의한 일명 '넌-루가 법안', 즉 '협력적 위협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 CTR)'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들 국가에 대한 안전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핵무기를 해체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구소련 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들을 확보하고 해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CTR 프로그램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운반수단의 폐기에 필요한 자금과 전문 기술, 장비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CTR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한때 소련이었던 국가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데 대한 정치적 저항에 부딪히기도 하였지만 '넌-루가 법안'은 핵무기 폐기에 큰 효과를 거두었고, 한 때 세계 3,4, 8위 규모의 핵무기 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의 비핵화에 성공했다.
2003년에는 '넌-루가 확대 법안'을 통해 구소련 국가가 아닌 나라들도 대량살상무기 해체와 지원을 받게 됐다. 알바니아는 이듬해 CTR 자금을 지원 받아 2007년까지 갖고 있던 화학무기들을 완전히 폐기할 수 있었다.
◆ 그렇다면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기해버린 이란 핵협정을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국가들의 사례는 비핵화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핵포기 국가들과 북한의 상황은 분명 달라 특정 비핵화 모델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비핵화 선언 당시 남아공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는 워낙 적었고 리비아도 보유하고 있던 핵 기술과 능력이 미완성이어서 현재 북한의 그것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수준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과 벨라루스는 구소련제 핵무기를 다량으로 보유하였지만 핵무기로 크게 위협할 적성국도 없었고 미국의 돈으로 핵무기를 처리하면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이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는 이점보다 훨씬 컸다는 점 덕분에 CTR 프로그램을 통한 비핵화가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 유지를 위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카드로 쥐고 있고 체제 보장이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 비핵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통해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받은 뒤 비핵화에 따른 대북 경제 지원 비용을 한국, 중국, 일본이 부담할 것이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 미국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국들도 비핵화 문제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점 또한 북한 비핵화 문제의 복잡함을 보여준다.
북한의 비핵화 작업은 지난 25년 동안 실패를 겪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북한 비핵화를 하려면 우선 핵 동결을 전제로 한 보상이나 지원을 먼저 해줄 것이 아니라 IAEA 전문가들의 철저한 사찰을 통한 확실한 검증이 이루어질 것, 두 번째로 이란 핵합의와 같이 일정 기간 동안의 핵개발 동결이 아닌 영구적 핵활동 금지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끝으로 미국 외에 한·중·일 및 러시아의 신뢰를 구축해가며 진행되는 모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