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통합 목소리에 원심력… 김무성 "국민들은 무조건 통합 요구"
  • ▲ 바른정당이 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당의 진로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바른정당이 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당의 진로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보수혁신(保守革新)의 기치를 들고 야심차게 출범했던 바른정당이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분당(分黨)에 직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른정당은 5일 저녁 의원총회를 소집했으나, 유승민 의원이 11·13 전당대회 연기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끝내 분당 수순을 밟게 됐다.

    이른바 통합파와 자강파가 결별하게 된 것은 범(汎)보수 진영이 하나로 뭉쳐 문재인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원심력이 돼, 보수혁신의 실험을 계속하자는 구심력을 뛰어넘게 된 게 원인으로 분석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말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보수정당 일부 의원들은 '멘붕'에 빠졌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우리 보수가 정권을 재창출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옳으냐' '민주주의의 원칙상 이렇게까지 잘못했다면 정권을 교대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갖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정당 김용태 의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그 때는 보수가 집권하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고, 정권을 넘기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다"며 "당시 다들 주저할 때 새판(보수혁신)을 짜기 위해 나왔다"고 털어놨다.

    바른정당 핵심 중진의원실 관계자도 "우리 의원도 당시 '보수가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내는 게 옳으냐'는 점부터 고민했던 게 사실"이라며 "의도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영입이 무산되고, (당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유승민 의원이 후보로 나섰는데도 바른정당에 남아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교과서적인, 어떻게 보면 순진하고 순수한 이해를 가지고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한 의원들은 정권교체 여부에 관계없이 '낡은 보수'를 토대부터 재건해나가자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정권이 교체되고나니 문재인정권이 하는 행동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 계속되는데도 '안보의 버팀목'인 한미동맹을 위협하는 행태, 시대착오적 '동북아 균형자론(論)'의 재등장, '퍼주기'로 일관해 국가재정을 위기로 몰아가는 복지정책, 정체불명의 '혁신성장' 속에 사라진 산업계에 대한 배려 등은 보수층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명백한 적폐(積弊)에 국한하지 않고, 전전임 이명박정부까지 지난 9년의 보수집권기간 전체를 통째로 부정하며 휘몰아치는 '적폐청산'의 광풍은,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을 뿌리조차 남겨놓지 않고 고사(枯死)시키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여지가 충분했다.

  • ▲ 5일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 의원총회에서 자강파의 유승민 의원과 통합파의 김무성 의원이 마주 보는 위치에 앉아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 5일 국회에서 열린 바른정당 의원총회에서 자강파의 유승민 의원과 통합파의 김무성 의원이 마주 보는 위치에 앉아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기자

    김용태 의원은 "문재인의 포퓰리즘 독재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하는 상황이 됐다"며 "보수의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라의 실패로 갈 것 같은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문재인정권의 출범으로부터 5개월이 경과해 맞이한 지난달초 추석 연휴 기간에 이러한 민심은 보수정당 의원들에게 전달됐다. 민생 현장에서 지지층의 생생한 성토의 목소리를 수렴한 의원들의 심각성은 커져갔다.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은 연휴 기간 중 본지와 통화에서 "(민심이) 보수통합하라는 게 90% 이상"이라며 "문재인정권의 독주를 힘을 합쳐 막아야 하는데 갈라져 있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민주당만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 전했다.

    다른 보수정당 의원도 "보수인 사람들을 주로 만났는데 '대한민국이 5년만 존속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문재인정권이 지나치게 퍼주기를 한다'고 걱정한다"며 "보수정치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통합에 매진하라는 이야기들을 많이들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바른정당 통합파와 자강파가 최종 결별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마지막으로 던진 '11·13 전당대회 연기 요구'라는 구당(求黨)의 제안을 유승민 의원이 거부한데 있다.

    그러나 분당에 이르게 된 근저에는 문재인정권의 독주로 초래된 국난(國難)의 위기 속에서 더 이상 한가하게 '보수혁신'이라는 불확실한 정치적 실험을 계속하고 있을 수 없다는 통합파의 인식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의총이 산회한 직후, 유승민 의원은 "탈당 이야기가 시작이 됐으니 이렇게 (당이 깨지게) 된 것"이라며 "당을 지키겠다는 생각과 자유한국당과 합치겠다는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라고, 탈당을 거론하고나선 통합파에 탓을 돌렸다.

    하지만 김무성 의원은 "노력했으나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탓이라고 자인한다"면서도 "현재 주어진 상황이 워낙 어려운 상황이고, 우리를 지지했던 보수 계층 국민들은 무조건 통합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90% 이상이 보수통합하라더라"는 민심을 전했던 주호영 대표권한대행도 "당을 지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통감하면서도 "통합에 뜻을 같이 하고 있으며 (탈당)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통합파로 분류되는 김영우 의원은 이날 황영철 의원과 함께 의총장에 들어서는 도중 자강파 의원들과 입장 경로가 엇갈리자 "자강파와 통합파는 길이 다른 것 같아"라고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문재인정권의 독주를 견제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받아들이는 농도의 차이가 컸던 바른정당 통합파와 자강파는 각자 다른 길을 택해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