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관심은 공천… "경선 통해 내 인지도 높이는 게 중앙당이 해야 할 일"
  • ▲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29일 광주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열린 공천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29일 광주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열린 공천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실시한 '열린 공천심사'를 통해 더민주 광주·전남 지역에 공천 신청을 한 '정치 신인'들의 수준이 대체로 기대 이하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컷오프로 촉발된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에까지 제동이 걸리는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29일 광주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더민주 공관위의 공개 면접에서, 공천을 신청한 많은 '정치 신인'들이 주어진 발언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공관위원들의 질문에도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천신청자들이 공관위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발언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되자, 이를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유권자들도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총선인가 대선인가… "노인성 질환, 국가책임 추진"

    이날 공천심사를 위해 진행된 공개 면접에서 몇몇 정치 신인들은 마치 대통령 선거 후보자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것처럼, 한 명의 국회의원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공약 사항을 발언 시간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마구 던졌다.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 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진 한 정치 신인 예비후보는 "기초 노령연금을 증액하고 노인성 질환의 국가책임제를 추진하겠다"는 등의 매머드급 공약을 이어가다, 발언 시간이 완전히 소진된 나머지 공관위원이 연신 종을 쳐대자 "금방 종을 쳤는데, 시간이 오버됐느냐"고 묻는 모습을 보였다.

    광주 광산을 선거구에 출마하겠다는 다른 정치 신인 예비후보는 "과거에 정치 경험이 별로 없고 지명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후보로 나오게 됐다"며 "중학교 때 5·18을 겪고 고등학교 때 확실히 (정치에 뜻을 두겠다고) 결심했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안 됐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치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라고 신상 발언을 길게 이어갔다.

    그러더니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더라도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가 시킨다고, 많은 수가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현역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다가 "누군가는 이 나라를 이끌어가려고 한다면 이 모든 문제를 계산하고 바꿀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 모든 준비를 해왔고 내가 적임자로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예비후보가 "호남에서 더민주가 인심을 못 얻고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국회의원 역할을 할 급(級)의 인물은 어느 정도 있지만 대선 급의 인물이 없다는 것"이라며 "그러한 호남의 꿈과 희망을 충분히 심어줄 수 있는 인물이 나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하는 대목에서는 대강당에 있던 청중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번지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는 이러한 발언을 하는데 개인 발언 시간과 질문을 대답할 시간까지 전부 다 써버려, 공관위원들의 질문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가야 하기도 했다.

    ◆광주·전남 지지율 제고에는 무관심? "공천이나 잘하라"

    공관위원들의 질문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동문서답(東問西答)하거나, 오로지 공천을 위한 자기 PR에만 매몰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국민의당 출현에 따라 광주·전남 지역에서 저조해진 더민주 지지율 제고를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한 예비후보는 "지지율은 지금 현재대로만 가도 앞설 수 있다"며 "경쟁력 있는 후보, 지역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선출하는 게 가장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오로지 자신의 관심사인 공천에만 매몰돼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에 공천 신청을 한 신문식 의원이 "호남의 민심 이반은 호남의 아픈 부분에 정치적으로만 접근한 것이 원인"이라며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 정책적·대안적 접근을 통해서 민심 이반을 아울러야 흐트러져 있는 민심이 수습되면서 이길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될 것"이라고 짚어낸 것과는 시야와 안목의 격차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또다른 예비후보는 공관위원의 질문 취지와 관계없이, 인터넷생중계에서의 인기만을 의식한 듯 정부·여당 비난에만 열을 올려 공관위원의 주의를 듣기도 했다.

    특정 예비후보는 자신도 광역의원과 기초단체장을 거치며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으면서도, 당장 해당 지역구의 현역 국회의원만이 구악(舊惡)인 것처럼 내내 네거티브 공세를 펼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당내 경선에서 지나치게 네거티브로 일관하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에 같은 공천신청자 중 한 명이 "우리나라 정치를 보면 상대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불신이 싹트고,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며 "정치를 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을 정도였다.

    반면 전남 광양·구례·곡성의 우윤근 의원이나 전남 무안·영암·신안의 이윤석 의원 등 현역 국회의원들은 지난 의정 활동의 경험을 살려 현안에 대한 질문에 취지에 맞는 답변을 했다. 우윤근 의원은 개헌(改憲)에 관한 질문에 자신이 저서를 들어보이며 상세히 설명했고, 이윤석 의원은 남북관계에 관한 질문에 정확히 시간을 지켜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당 전략공천엔 거부감… "경선 통해 내 인지도 높여라"

    이렇듯 정치 신인들의 수준이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이들은 공천만 되면 당선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며 전략공천에 강한 적개심을 보였다.

    4선 고지에 도전하는 강력한 현역 의원인 국민의당 김동철 후보가 버티고 있는 광주 광산갑의 경우, 공관위원이 "솔직히 지역구 사정이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을 이기기 위해 다른 후보를 전략공천한다면 중앙당의 방침을 수용할 것이냐"고 묻자, 예비후보들은 안색을 바꾸며 굳은 표정을 보였다.

    한 예비후보는 "김동철 의원의 선거에 두세 번 직접 관여하고 도움도 준 적이 있는 게 나"라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다른 예비후보는 "지역 경선을 통해 후보 경쟁력을 확보해야 새로운 인재가 탄생할 것 아니냐"며 "우리 당이 심사숙고해서 새로운 인재 키워내는 방법으로 갈 것이라 믿고 열심히 지역 경선 준비할 것"이라고 아예 전략공천의 가능성 자체를 일축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또다른 예비후보는 "나를 빼고 국민의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없다고 믿고 있다"며 "경선을 통해 나의 인지도를 더 높여주는 게 중앙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듯 '열린 공천심사' 자체가 의도는 매우 좋았으나, 안방의 유권자들에게 더민주 공천신청자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자, 이강일 공천관리위원은 광주·전남 공천 심사를 마치며 서울에서는 다를 것이라고 첨언해야 했다.

    질문의 형식과 수준 때문에 "오늘 약간 드라이하게 진행된 부분이 있었다"고 토로했지만, 그 내심의 의도는 공천을 신청한 '정치 신인'들 중 일부의 수준이 공관위원들이나 인터넷생중계를 지켜본 유권자들의 눈높이에 못 미쳤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강일 위원은 "서울은 현역 국회의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에 질문 수준을 높이겠다"며 "좀 더 다이나믹하고 수준 높은 질문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궁금증에 대한 만족감을 높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