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로부터 사형선고, 측근 단죄 잇따르는데도 퇴진 않고 버티기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유럽과 미국이 나서면, 문재인 대표도 물러날까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축구 종가인 유럽축구연맹(UEFA)의 반발과, 국제축구협회(FIFA) 비리에 대한 책임론을 못 이기고 퇴진한 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의 처신에 문재인 대표를 빗댄 것이다.

    근대 축구의 뿌리는 영국이다. 영국이 속해 있는 UEFA야말로 축구의 종주(宗主)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블래터 전 회장은 UEFA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독선과 아집으로 FIFA 업무를 전횡해 왔다.

    급기야 존 위팅데일 영국 문화체육대신은 "블래터 회장이 연임되면 영국축구협회는 FIFA에서 탈퇴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도 "블래터 회장이 5선 연임에 성공한다면 UEFA를 FIFA에서 분리시켜 독립기구화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여기에 미국 사법당국이 FIFA 고위 간부들의 비리 수사에 착수하면서 블래터는 책임론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스위스 경찰은 미 법무부의 요청으로 지난달 27일 취리히에서 블래터 전 회장의 측근 6명을 전격 체포했다. 이러한 압박에 못 견딘 블래터 전 회장은 결국 5선 연임에 성공한지 나흘만인 지난 2일 퇴진을 선언했다.

    만시지탄의 감은 없지 않지만, 결국 책임 있는 선택을 했다. 반면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처신은 어떨까.

    당의 뿌리인 호남의 민심을 무시하고 친노패권주의로 당을 사당화하고 당무를 농단하다가, 마침내 호남 민심으로부터 사퇴를 요구받고 있음에도 묵묵무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7·30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 친노(親盧) 서갑원 후보가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에 밀려 낙선하고, 올해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친노패권주의 청산을 내건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당선되면서 문재인 대표를 위시한 친노 세력은 호남 민심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 여의도 새정치연합 당사 앞에서는 문재인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당원연대 소속 당원들이 십수 일째 농성과 결의대회를 벌이고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우리 당의 뿌리는 호남이고, 친노는 줄기"라고 말했다. 뿌리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줄기가 버틴다는 것은 우리 정당사에 유례 없는 일이다.

    광주 북구을의 임내현 의원은 지난달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의 주인이 호남인데, 왜 주인이 밖으로 나가느냐"며 "당내에 '못된 사람'이 있다면 안에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에 대해 주인정신과 책임감을 갖고 문재인 대표의 퇴진과 친노패권주의 청산, 당의 혁신을 부르짖어 왔던 호남 지역 의원과 당원들 사이에서도 문재인 대표의 '버티기'에 점차 피로감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후보자 중 최다 득표를 한 '수석최고위원'이자 호남 지역의 유일한 최고위원으로 호남 민심을 대변하는 주승용 최고위원은 지난달 23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지역 행사에서 "분당 우려가 차츰 커지고 있는 게 현 상황"이라며 "이대로 가면 당이 깨질 것 같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뿌리로부터 분당(分党) 경고음이 울리는데도 문재인 대표는 들은 척 만 척이다. 나갈려면 나가라는 생각일까.

    측근들에 대한 민심의 단죄도 잇따르고 있다.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문재인 대표의 최측근 정태호 후보는 '야당 텃밭'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의원에 눌려 큰 격차로 낙선했다. 문재인 대표가 몇 번이나 관악을을 찾으며 공을 들였지만 소용 없었다. 준엄한 민심의 단죄 앞에서 책임을 느낄 법도 하고, 실제로 책임론도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후안무치(厚顔無恥) 정당이 됐다"며 "문재인 대표가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세계적으로 얼굴 두껍기로 소문났던 제프 블래터 전 FIFA 회장도 '축구의 뿌리'로부터의 민심 이반과 측근 단죄에 따른 책임론으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했다. 호남 민심의 이반과 측근의 낙선에도 꿋꿋이 당대표직을 고수하며 버티는 문재인 대표는, 후안무치함만큼은 블래터 전 회장을 뛰어넘는 세계구급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