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만 표 얻었던 노련미 돋보였지만… "여기 나와 뭐하자는 거냐"
  •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3일 관악구 삼성동 시장에서 현지 출마선언을 한 뒤, 시장을 둘러보던 중 장애우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3일 관악구 삼성동 시장에서 현지 출마선언을 한 뒤, 시장을 둘러보던 중 장애우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정동영 씨, 진짜 출마하지 마요! 그런 식으로 할 꺼면…"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 현지 출마선언을 하고 있던 3일, 삼성동 시장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동영 후보가 진중한 목소리로 "국민이 이겨야 바뀐다"며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해달라"고 부르짖던 그 시점이었다. 뒤이은 민주·평화·개혁 등의 단어는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려 "정동영 씨, 이야기 좀 하자"며 국민모임 관계자들과 옥신각신하던 이 사내의 움직임에 묻혀 공허하게 흩어졌다.

    정동영 후보가 현지 출마선언을 하던 장소는 마치 조그만 광장처럼 생겼지만, 알고보니 한 쪽으로 골목길이 연결돼 있는 삼거리였다. 골목 쪽으로 좌회전하려던 차량은 삼거리를 막고 출마선언을 하고 있던 군중에 막혀 갈 길이 없었다. "정동영이가 나오는 건 좋은데, 길을 막아버리면 어쩌라는 거냐"는 투덜거림이 그 후에도 끊임없이 들렸다.

    그런데 시각을 바꿔 생각해보면, 단지 우연히 차를 몰고 이 곳을 지나가던 운전자도 군중들 사이에서 마이크를 잡은 인물을 보자마자 그의 이름을 대번에 알았다는 뜻이 된다. 만일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나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가 이 삼거리를 막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면,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대뜸 "○○○ 씨!"라고 후보의 이름을 외칠 수 있었을까.

    출마선언을 마치고 삼성동 시장을 돌 때도 617만 표를 얻었던 전직 대선 후보의 공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상인들에게는 "매출은 어떠냐", 고시생에게는 "힘내고 꼭 (합격하라)", 장애우에게는 "장애가 2급인데 아파도 병원에 못 간다니…"라며 맞춤형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진정성을 전달하려 애썼다.

    성남 모란시장에서 짜 왔다는 참기름 몇 병을 내놓고 앉아 있는 노년의 노점상 앞에서는 대뜸 털썩 주저앉았다. 깜짝 놀란 그가 "일어나시라, 일어나시라, 이러시면 내가 못 앉는다"고 펄쩍 뛰었음에도 정동영 후보는 자신의 눈높이를 더욱 낮춰 다가갔다. "말하고 싶은 게 뭐냐"던 이 노점상은 "오늘은 말씀을 들으러 왔다"는 정동영 후보의 말에 어느새 자신의 삶, 장사, 지병, 자식 관계, 자녀의 혼인 여부까지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대화를 마치고 일어나던 정동영 후보가 노점상과 눈을 맞추며 마지막으로 "내 이름은 아시죠"라고 물었다. 노점상은 자기 자식마냥 어깨를 토닥여주며 "그럼, 정동영이!"라고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과연 대선이라는 큰 판을 뛰어봤던 후보다운 인지도와 세련된 유권자 접촉 기술이 돋보였다.


  •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3일 관악구 삼성동 시장에서 현지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이 곳은 마치 작은 광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진 왼쪽으로 골목길이 연결돼 있는 삼거리라, 사진 오른쪽의 길에서 좌회전하거나 우회전해서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운전자들의 극심한 항의를 받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3일 관악구 삼성동 시장에서 현지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이 곳은 마치 작은 광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진 왼쪽으로 골목길이 연결돼 있는 삼거리라, 사진 오른쪽의 길에서 좌회전하거나 우회전해서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운전자들의 극심한 항의를 받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 지역에서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와 자웅을 겨루는 상대는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와 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 후보. 둘 다 초선(初選)을 노리고 있고, 그나마 정태호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를 완주하는 게 처음이다. 세 후보의 시장 방문을 모두 지켜봤던 취재진은 "확실히 체급 차이가 있다"는 데 모두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이러한 체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날 출마선언과 시장 방문은 정동영 후보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왜 관악을 보궐선거에 나왔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고 그를 따라다녔다.

    정동영 후보는 이날 현지 출마선언에서 자신의 관악 출마 이유를 "나의 정치적 포부를 펼치고, 국민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라고 규정했다.

    "어렵고 고통받고 눈물 흘리는 국민들 곁에 항상 정동영이 있었다" "굴뚝에 노동자가 올라가도 정치인이 곁에 없고, 사람이 죽어가도 없었다"며 이어지던 그의 출마 선언에 군중들 사이에서는 이렇다할 반응이 없었다. 마침내 정동영 후보가 "여러분, 행복하시냐"고 외치자, 별 생각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네~"라는 대답이 나오는 바람에, 정 후보가 "아니, 아니, 하루 하루 일상이 행복하시느냐고"라며 "질문이 좀 잘못됐나"라고 당황해 할 정도였다.

    방향을 바꿔 "여기 삼성동 시장에 나라 예산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그제서야 군중들 사이에서 "문제다" "맞다" "옳다"는 추임새가 나왔다. 신이 난 정동영 후보는 2004년 자신이 열우당 당의장을 할 때 전통시장지원특별법을 만들어 3조 원을 투입했던 이야기를 자랑했다. 10년도 더 지난 옛 공로를 끄집어내는 것도 민망했지만, 어느새 정동영 후보는 자신도 모르게 '지역일꾼론' 프레임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정동영 후보가 시장 초입으로 들어가던 무렵, 관악구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한 남성은 "내가 호남 사람이고, 무안 출신인데 한 마디 해야겠다"며 "정동영이가 여기 나와서 뭐하자는 거냐"고 외쳤다.

    과연 그는 전북 전주덕진도, 서울 동작을도, 서울 강남을도 아닌 이 곳 서울 관악을에 나와 무엇을 하려는 걸까. 다른 후보와 비교되는 정동영 후보의 체급과 인지도, 전직 대선 후보로서의 노련미에도 불구하고, 해당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당선 가능성에는 언제까지나 물음표가 따라다닐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