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개방?”... 씨도 안 먹힐 말씀
    ‘자유통일’ 추진이냐, ‘분단’ 관리냐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한 국민이 흉년을 만나 굶어 죽느냐 살아남느냐는
    당시의 통치자가 국민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감정적 일체감을 갖고 있느냐에 달렸다.
    북한 사태도 같은 눈으로 봐야한다”
     - 아마티아 센(Amartya Kumar Sen: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 국군통수권자께서 지난 2월 16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장단 ‘집중토론회의’에 참석하시어 “북한은 변화의 물결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해서 하루 속히 개혁과 대화의 길로 나서야 한다... 고립에서 벗어나서 성장의 길을 걷고 있는 몽골의 오치르바트 전(前) 대통령은 북한에 ‘안보는 핵이 아닌 두둑한 지갑에서 나온다, 북한이 주민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다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한은 경험에서 나온 이 고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지난 2000년의 6·15공동선언과 7년 후의 10·4선언이
    한반도 ‘자유통일’을 위한 것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북의 ‘수뇌’가 만나서 합의한 것은 맞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두 번의 ‘수뇌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그리고 근본적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두 분의 남측 수뇌, 즉 ‘행동하시는 욕심(慾心)님’과 ‘변호인(便好人)’께서
북녘의 ‘식견(食見)있는 지도자(脂盜者)’가 인민을 배불리 먹일 마음이 추호도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에 동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면 적(敵)을 선택할 수가 없다. 우선은 가난에 지배 당하고, 결국에는 운명에 지배 당하게 된다” 이것이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백도혈통(百盜血統)’의 통치 묘수(妙手)이다.
그리고 “사회가 빈곤하면 빈곤할수록 정권을 바꿀 에너지가 사회 내부에서 생성되지 못한다.
반면 정권은 일정한 무력으로 어떤 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최고 돈엄(豚嚴)’과 그 똘마니들의 입장에서는 북녘의 인민들은 늘 배가 고파야 한다. 1950년대 북녘의 소위 ‘천리마 운동’시기 ‘백도혈통(百盜血統)’ 시조(始祖)가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미래로 표현했던 ‘이밥(쌀밥)에 고깃국과 기와집’은 신기루였을 뿐이다.
거의 60년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이룰 마음이 없었던 거다.

또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인민 200만 이상이 굶어 죽은 것은 ‘식견(食見)있는 지도자(脂盜者)’가 세습독재 강화를 위해 기획(企劃)한 작품(?)이라는 주장도 거의 정설(定說)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이와함께, 평소 두 분 남측 수뇌의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견해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했었다.

    “북한의 급변사태나 자유통일은 남한에게는 재앙(災殃)이다. 그 처리 비용을 우리가 지불하게 되면 우리는 깡통을 차게 된다. 그러니 급변사태나 자유통일은 입에 올리지도 말고, ‘식견(食見)있는 지도자(脂盜者)’가 북한 주민을 잘 통제하게 도와줘야 한다. 돈도 필요하면 쥐어주고, 쌀·옥수수는 무조건 바치는 게 맞고. 배고픈 주민들이 궐기해서 혼란이 오면 안 된다. 심리전은 피해야 한다...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

    따라서, 상봉을 전후로 북녘에 갔던 식량·비료 기타 등등은 세습독재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인도적 지원’으로 잘 포장된 '선군정치와 인민 통제용 공물(貢物)’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만약 북녘의 어린 ‘최고 돈엄(豚嚴)’과 그 똘마니들이 위의 국군통수권자 말씀을 들었다면 화를 버럭 내며 이렇게 투덜(?)거렸을 것이다. “누가 모르냐. 그런데 인민을 배불리 먹이고 싶지 않을뿐더러, 먹여서는 안 되거든. 누굴 어린애로 알고 가르치려 하냐. 놀구 있네!”

    그렇기 때문에 국군통수권자와 어린 ‘최고 돈엄(豚嚴)’이 마주 앉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조건 중에 하나가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