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걸(求乞)성 강도(强盜)질이 뻔하다” 
    누굴·무얼 위한 올림픽 분산(공동) 개최?

    이 덕 기 / 자유기고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 참석차 일본에 입국한 북한의 장 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13일 오전 나리타(成田)공항에서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데 대한 소감을 묻는 연합뉴스의 질문에 “동계올림픽이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남북 공동개최는) 그렇게 되길 원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2011년 7월 7일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린 IOC총회의 1차 투표 결과 63표를 얻어
    강원도 평창(平昌)이 삼수(三修) 끝에 제23회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지 1주일만이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 놓으려는 ‘백도혈통(百盜血統)’의 상습적인 뻔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   푸른 양띠 해가 시작되고, 북녘의 어린 ‘최고 돈엄(豚嚴)’이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네다”는 쉰년사를 주절거린 직후부터
    “잘 차릴 밥상에 북녘이 숟가락 하나 얹게 해 주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단다.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이 속한 뿔뿔이 단체장은
     “북한이 동참하겠다면, 평화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상징성을 본다면
    (남북 분산개최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에 여의도 ‘새(鳥)연합’의 두목이 되겠다는 안경잽이 대권 재수생도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분산개최를 위한 강원도와 북한 당국 간의 만남을 허용해야 한다”고
    거들고 나섰다나. ‘새(鳥)연합’이 되기 전(前) 민똥당 두목(지금은 은퇴 중?)도
    평창 유치가 결정되자마자 남북 공동개최를 주장한 바가 있었으니, 이 분들의 특기인가?
     
    이런 저런 와중에 통일부 장관이라는 분도 ‘분산 개최...’ 어쩌구 하며 어물어물 거린 바 있다. 
    국제적인 체육 행사 유치 후에는 거 무슨 ‘평화’니 ‘통일’이니 또는 ‘남북화해·협력’
    이런 걸 내세우며 늘상 주접을 떤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대한민국과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회 유치를 위해 체제의 명운을 건 치열한 스포츠 외교 전쟁을 벌였다.
    당시 북녘 ‘백도혈통(百盜血統)’의 시조(?)인 ‘혹부리 천출맹장(賤出盲腸)’은
    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 아시아 체육계의 실세(實勢)인 아시아경기연맹(AGF) 수석부회장
    ‘세이크 파히드’를 초청하여 금강산에서 한 달 동안 푹 삶는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파티가 연일 계속되었다. 
     (# 쿠웨이트 국왕의 동생이었던 ‘세이크 파히드’는 후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이 된다. 그리고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시 사망한다.)
  •   하지만, 이미 ’88올림픽 유치 신청까지 마친 대한민국으로 판세는 기울기 시작했고,
    드디어 1981년 11월 ’86아시안게임 개최지 표결을 하루 앞두고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치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86아시안게임은 서울에서 당연히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어서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대회,
    즉 ’88올림픽의 서울 개최가 결정된다. 이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대기업 창업주들이 각고의 노력을 보탠다. 물론 이들 중에는 요즘 그 유명한 ‘땅콩 아줌마’의 할아버지도 계셨다. 

      헌데 개최 결정 당시에는 아무 말도 없다가 ’86아시안게임이 성공적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분단 올림픽 반대”, “’88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등의 구호와 시위가 여기저기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라 해 봐야 이 무렵 소위 운동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주사파(主思派)와 그 언저리 세력들이었지만... 그 때도 지금이나 똑 같은 그 무슨 ‘평화’, ‘통일’, ‘남북화해·협력’ 등등이 앞장섰다. 
      그리고는 루머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88올림픽 서울 개최 결정에는 쏘련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이는 남한이 좋아서가 아니라, 재정 능력이 없는 남한으로 하여금 올림픽을 무리하게 치르게 하여 경제 파탄으로 망하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진짜 야한 얘기, 즉 음모(陰毛)론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88서울올림픽은 대성공을 거두고 막을 내렸다.
    올림픽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코미디 같은 일도 있었다.
    미국과 쏘련이 겨루는 경기가 있으면, 위의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처절하게 사랑하는)애국·(적화赤化)통일 인사’들이 몰려가서 미국팀에 야유하고, 쏘련팀을 응원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나저나 ‘애국·통일 인사’들의 찐한 아쉬움 속에 그 망할(?) 놈의 ’86아시안게임과
     ’88분단올림픽은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질투심이 발동한 북녘의 ‘혹부리 천출맹장(賤出盲腸)’은 그 이듬해인 1989년 사회주의
    청년·학생들이 참가하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라는 행사를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에서 어마어마(?)하게 개최한다. 177개 국가, 2만 2,000여명이 참가했다는데,
    참가 국가 수로는 축전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나.
  이 때 남녘에서 한 청춘이 올라가 혹부리 영감 품에 안긴다.
그가 바로 최근 좃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조국인 아주마니들의 ‘조국 자랑질’ 자리에 동참하셨던 ‘대한민국의 여(女) 구개이언(口開異言)님’이시다. 
  그런데 ‘혹부리 천출맹장(賤出盲腸)’의 대접이 주제넘게 너무 과했는지, 아니면 젊은이들이 사회주의를 잊어버린 채 눈치 없이 마구 처먹고 마셔서 그랬는지 나라 살림이 거덜이 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혹부리 영감 돌아가신 뒤 200만 이상의 인민이 먹을 게 없어 지상낙원(地上樂園)을
영영 떠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제 와서 2018년을 앞두고 ‘공동’이니 ‘분산’이니를 꺼내는 것은 그렇게 반대하면서 파탄이 나길 바랐던 ’88분단올림픽이 대한민국 대도약의 계기가 되었던 기시감(旣視感 déjà vu) 때문인가? 그들은 다시 그런 불행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 너무도 싫은 것은 아닌지... 

  북녘의 ‘영도자(永盜者)’가 아주 순수한 마음, 즉 ‘평화’니 ‘통일’이니 또는 ‘남북화해·협력’을
위해 올림픽을 같이 한다고... 우리 집 강아지가 웃을 일이다.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했다. “진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하나 올리고 거기에 더하여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할 꼬라지 안 봐도 비디오다” 
  •   그렇다. 남북 분산(공동)개최에 덜렁 합의하고 나면,
    ‘올림픽 성공’을 앞세워 별별 구걸(求乞)성 강도(强盜)질과 협박(脅迫)성 거지 행각을 벌일 것은
    뻔할 뻔자 아닌가. 
      혹시 ‘올림픽 성공’을 빌미로 대〜한민국을 ‘최고 돈엄(豚嚴)’에게 무릎을 꿇게 만들고자 하는
    야한 이야기 즉 음모(陰毛)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기우(杞憂)일까?

      백번 양보해도 이런 물음은 계속된다.
    “어렵게 마련한 밥과 반찬을 돼지에게 나눠준들 돼지가 진정 고맙게 여길까?”

    <더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