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굴 총리로 뽑아야 하나?
      
     안대희의 낙마는 '안대희의 실패'가 아니라 ‘박근혜의 실패’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각료들이나 참모들을 보면 대부분 공통된 패턴을 보이고 있다.
     
     관료 아니면 교수. 공부 잘하는 모범생.
    이 풍진 세상인데도 요리조리 피하며 몸에 흙 안 무치고 산 사람,
    아니 그냥 산 게 아니라 출세가도에서 승승장구 한 사람.

  • 얌전한 사람. 말쑥한 사람. 깔끔한 사람.
    독립변수이고자 하지 않는 사람.
    말 잘 듣는 사람. 대가 ‘쎄’지 않은 사람.
 
 이런 사람들은 순(純) 기술적인 직책에는 맞는다.
 다시 말해 차관 이하 실무자로선 나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도 이런 유형이 부담 없고 버겁지 않고
 ‘유식’해서 쓸모가 있다고 할 것이다.
박사학위도 있고, 행시(行試) 사시(司試) 등 과거급제도 했고,
야인(野人)처럼 통제 불능 형(型)도 아니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곧이곧대로 일을 해내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이런 유형은
험난한 한반도적, 한국적 상황에서 리더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리더는 박근혜 대통령 하나면 됐지 또 무슨 리더냐고?
웃기지 말라. 사단장 하나면 되는 게 아니라,
여단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 등, 모든 직급의 지휘관들이
다 리더가 돼야만 ‘장개석 군대’가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휘관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교과서를 딸딸 외워서 시험에 합격하는 타입보다는,
영화 ‘고독한 생존자(Lone Survivor)'의 주인공처럼,
끝까지 피투성이가 된 채 전투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엄마 치마폭에 쌓여 과외 많이 받고 고이고이 자라 과거급제 하여 어사화를 꽂고
뚜 마담 중개로 열쇠 열 개 쯤 따낸 ’귀하신 몸‘이
어찌 그런 고통스러운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리더, 전사(戰士), 지사(志士)를 배척하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와 철학과 문학과 감성과 가치와,
이를 위한 개입(commitment)과 투신(投身)을 우습게 여기는 천박한 풍조 속에서 살고 있다.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이고, 무엇을 요구하는 시대이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가?”의,
제대로 된 인식의 체계가 설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인식의 체계가 서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공공부문에 개인보신주의, 입신양명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종(失踪),
기회주의, 무책임, 무사안일, 부처이기주의, 부정부패의 탁류가 범람하고 있는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금까지의 인사(人事) 정책은
총체적 실패였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국무총리 감과 장관 감을 설정해야 할 것인가?
 
 지난 현대사의 고통스럽지만 보람찼던 고비 고비를 거치면서
그 시대의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절실하게 소망하고 고민하고
때로는 절망도 하다가 이내 다시 딛고 일어나 온 몸을 던져 돌파하고 쟁취해 온 사람이어야 한다. 이들은 탁상(卓上)의 사람 아닌, 현장의 사람들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실만 똑 따먹는 얌체 족(族)은
그저 직업적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로서 차관 이하까지만 했으면 한다.
(너무 과격한 표현일까?).
 
 지금 새 총리 감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인사들 가운데
그런 ‘정치적 리더십’ 유형에 상대적으로 근접해 있다고 간주될 인사로는
조순형, 김문수, 김무성, 이인제 씨가 거론되고 있다.
 
 여기서 김무성 이인제 두 인사는 말만 그렇게 나오다가 다시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조순형 씨 아니면 김문수 씨인데,
두 인사 다 정치적, 정무적 자질에서 긍정적인 평판을 들어왔다.
 
 조순형 씨는 평생 동안 한국 정계에선 드물게 보이는 올곧은 정치인으로 살아왔다.
항상 ‘쓴 소리의 지혜’로 존경받으면서도, 그러나 “이젠 고령이라...” 하는 후렴이 따라붙는다.
 
 김문수 씨는 인생의 전반은 치열한 저항가로서,
그러나 후반은 새롭게 출발한 현실정치가이자 지방정부의 수장으로서 살았다.
 그는 그런  역동적인 삶의 궤적에 대해 응분의 평가를 받으면서
반면에 ”사람을 끄는 매력이 부족..."이라는 평을 듣는다.
 
 이밖에 최경환, 김진선, 조무제, 김영란, 또 누구 누구 하는 이름들이 거론되지만,
좋은 사람이면 다 열거하기로 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더러는 김종인 현경대 같은 이름들도 들먹이지만, 제발 그런 불상사만은 없기를!    
 
 어쨌거나, 참하고 말 잘 듣는 출세지향형 인물 발탁은 그만했으면 한다.
그러다간 박근혜 대통령, 정치적으로 큰 난관에 직면할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그런 얌체족들의 피해자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받아쓰기’ 수재들을 멀리하고
정무적 유형을 발탁하는 방향으로 돌아설것인가? 대단히 회의적이다.
사람의 태생적 고집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과연 ‘독립변수이고자 하는 유형‘을
부담 없이 가까이할 수 있을지는 더욱 더 의문이다.
 
 그래서 단지 한 마디 청와대 쪽을 향해 던지고자 하는
 ‘소용없는 소리’는 이거다.
 "나 홀로 집에서 로봇을 부리는 식으론 이제 안 되지요...”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