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어린 담화문을 듣고
해방 후의 혼란과 6‧25의 참변을 겪으면서 나는 대학에 다녔습니다.
거기서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와 현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그 뒤에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의 이름 있는 대학의 대학원에 가서 여러 해 공부를 하고 돌아와 한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정년이 되어 퇴직한지도 허언 20년이 넘었습니다.나는 서양의 합리주의를 익혔고, 문명은 감정의 표출보다는 억제를 권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4‧16 세월호의 침몰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의 고2 학생들을 생각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지 않은 한국인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에 관한 담화문’ 발표가 있던 5월 19일 아침에 나는 TV가 없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있다가 그 뒤에 방영된 뉴스 시간에 보고 나도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담화문을 마무리하면서 이번 세월호 침몰의 비극 속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이 나라의 ‘영웅들’의 이름을 분명하게 발음하면서 대통령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나도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간신과 협잡꾼, 도둑과 모리배가 우굴 거리는 이 땅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그 한 마디에 국민의 절대다수는 숙연해졌습니다. 그것을 대통령의 자작극이니 ‘쇼’니 하며 비방한 자들이 있다고 듣고 내가 한국인인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그 담화문에 빠진 것이 있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어떻게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자들은 만일 법이 허용한다면, 광화문에 서 계신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다 모아놓고 내 주먹으로 한 대씩 후려갈기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이 합리적이어야 하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입니다.김동길www.kimdonggil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