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국민정당으로 재편할 마지막 수술대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결산하면 대충 이런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느냐를 놓고 벌인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쟁은 대한민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 승리를 이룩한 중심가치는 개인의 존엄,
개인의 존엄을 담보할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짝을 이룬 자유시장경제였다.
그렇다면 한국정치를 이끄는 주역(主役) 역시 당연히
이 가치를 공유하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진보주의라야 할 것이다.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전체주의( 좌건, 우건)이고,
이에 대해선 보수, 리버럴, 진보 모두 '노(no)'라고 말해야 한다.”
지금의 시점에서 왜 이런 교과서적 원론을 끄집어내는가?
야(野)와 좌(左) 쪽에서는 16일 발기인대회를 마친 ‘새정치민주연합’이
앞으로 그 ‘노’의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근래의 민주당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불신(不信)을 씻어줬으면 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엔 주로 우(右) 쪽에 ‘노’라고 해야 할 반(反)민주가 심했었다.
독재, 독선, 강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 쪽에는
‘민간인 사찰’ ’댓글‘ ’증거조작‘ 같은 공무원들의 일탈행위는 종종 있지만,
(그래서 그런 것 역시 ’민주‘의 이름으로 엄중히 대처해야 하겠지만,)
지난날처럼 “서구식 자유민주는 안 된다, 한국적 민주주의라야 한다”는
’극단‘은 권력으로서도, 운동으로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야당과 좌 쪽은 ‘댓글‘과 ’증거조작‘ 사건을 잡아채
“봐라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다시 유신으로 돌아갔다”고 공격하지만,
이 말이 1970~80년대 같은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촉발할 것이라고는 그들도 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 유신 시절이라면 통진당 같은 집단이
2011년 이후 지금까지 무려 134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타갈 수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었을까?
오늘에 와선 오히려 야와 좌 쪽에서 반(反)민주 ‘극단’이 더 심각해졌다.
좌 쪽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체주의 체제로 변혁하려는 ‘극단’이 엄연히 있다.
사법부의 1심 재판부는 이석기의 RO가 그런 종류라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는 통진당도 그런 종류인지 아닌지를 곧 가릴 예정이다.
이들 말고도, 1980년대 이래의 NL(민족해방) 증후군이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친일파, 악질반동, 간상모리배들의,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고
청소년들을 세뇌한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떼어버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런 증후군은 오늘의 제1 야당 안으로도 들어와 있다.
이들은 처음엔 전통야당을 숙주(宿主)로 삼았다가 나중엔 주인을 밀쳐내고
‘민주당+통진당’ 한통속을 만드는 선까지 갔었다.
이들에겐 ‘천안함’은 ‘침몰’, 제주해군기지와 북한인권법은 ‘폐기물’,
한-미 FTA는 ‘이완용 짓’, 6. 25 전쟁영웅은 ‘민족반역자’, 탈북은 ‘변절(變節)’이었다.
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이석기 사태를 전후해
“설마 했는데 정말 저런 사람들이었어?” 하고 놀란 눈을 떴다.
민주당 안의 NL은 그러나, 그런 민심과는 동떨어진 채 그들만의 완고한 성을 쌓았다.
야당의 수권(授權)태세를 위해서는 그건 정말 “아니올시다”였다.
‘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런 의미에서, 80년대 대학가 이념서클처럼 돼버린
오늘의 야당을 다시 보편성 있는 국민정당으로 재편할 마지막 수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신당은 여당을 상대로 한 집권투쟁에 나서기에 앞서,
야당 안방에 똬리를 튼 NL의 시대착오적 근본주의에 대해
먼저 치열한 노선투쟁을 선포하거나 과감히 선을 그어야 한다.
신당은 선거만 끝나면 ’도로 친노(親盧)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시인하고 싶지 않다면 김-안 투톱은 “지금의 민주당으론 왜 안 되는지?”
“신당은 그와 어떻게 다를 작정인지?”의 차별성을 빨리 드러내 보여야 한다.
발기인 대회에서 김-안 두 사람은 ‘낡은 이념대결과 진영싸움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새 정치라고 밝힌 바는 있다. 그러면서도 낡은 이념이 무엇이고,
왜 이념싸움이 있어왔는지의 역사적 인과(因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자기 식대로 말한 사람은 오히려 민주당 조경태 최고위원이였다.
그는 “친노 종북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의해두는 것은 어떨까?
“새 정치는 야당을 NL 꼴통 이념집단으로부터 떼어내,
그것을 미국 민주당 식 ‘리버럴 개혁’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김-안이 이 개혁을 제대로 해야 ‘잘되는 정권교체’도 기약할 수 있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