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鳥)정치’를 먼저 알아 본 늙은 철새들...
    (어제의 철새들이 다시 뭉쳤다)
    새정치는 ‘새(鳥)정치’다. <제2탄>
       
     이 덕 기  /자유기고가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향토예비군의 노래다.
    요새는 이 노래를 ‘향토예비군의 날’ 말고는 듣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1970년대 유신(維新)의 시절에는 시도 때도 없이 많이 들었다.
    며칠 전 그 시절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를 위한 국민동행’. 철지난 옥수수 같은 분들이 ‘민주와 평화’를 외치고 계시다. 

      소위 ‘범국민운동’을 표방하시고 11월 17일 거창하게 출범(804명이나 발기하셨단다)을 하셨다는데, 면면을 보니 1970년대 이후 줄곧 ‘민주화’를 외치면서 ‘대도무문(大盜無門)’의 길을 걸어오신 분과 ‘행동하시는 욕심(慾心)’을 추종했던 이들이 상당수다.
     특히 위의 ‘대도무문’이나 ‘행동하는 욕심’을 주군(主君)으로 모셨던 이들이 주동하시나 보다.

    그런데 그 주군과 그를 추종했던 이들의 ‘대한민국 민주화’는 곧 “내가, 내 주군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는 진짜 의미를 이제 국민 대부분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두 분께서 대통령을 하셨는데도 아직도 ‘민주’를 외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혹시 현재의 한국정치를 ‘유신(維新)의 시절’로 착각하고 들 계신 것은 아닌지...
    더욱이 이들의 ‘평화’는 또 무엇인가? 제발 굴종(屈從)의 평화, 즉 세습독재에 무릎 꿇겠다는 평화가 아니기 만을 바랄 뿐이다. 

      그 시절 간(肝)과 쓸개를 오가던 ‘쉰 옥수수들’의 착각과 “영광이여 다시 한번”(‘민주화’ 운운하면서 국민을 속인 대가로 잘 먹고 잘 살았다. 보상도 많이 받았다)을 위한 출범식 자리에
    아주 걸 맞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격려와 동참을 약속했단다.

     한 사람은 한참 더울 때 시청 앞에서 캠핑을 시작했다가 추위가 시작될 즈음에 캠핑을 접으신 야당 대표고, 또 한 사람은 최근 금빼지를 다신 이제는 정치판에서 “절대로 철수 안하실” 돈 많은 ‘깡통(다른 말로 새대가리)진보(眞保=진짜 보수)’다. 

      캠핑맨은 대표가 되신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유신(회귀) 반대”를 외치고 계시다.
     나도 ‘유신(維新)의 시절’을 대한민국 젊은 대학생으로 살아 본 사람이지만,
    유신독재는 북한의 세습독재에 비하면 정말 ‘낭만독재’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다.
    (물론 ‘조국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서 순수한 열정을 바치신 분들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 ‘낭만독재’에 대해서는 글 뒤에 짧게 언급하겠다.)

    지금을 ‘유신독재’ 운운하는 것은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던 젊은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려는 것이다. 마치 그 시절에 북한의 세습독재가 운용하는 ‘정치범 수용소’나 ‘교화소’ 같은 것이 있었고,
     영장 없는 체포·구금과 무자비한 고문만이 일상화되었던 것처럼... (허긴 우리 젊은이들 중에 그렇게 믿고 있는 이들도 있단다.)

    그런데 이 캠핑맨은 그 출범식에 그저 들러리(?)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는 말들이 공허해 보였고 별로 호응도 없었던 듯하다.
     같이 참석했던 ‘새대가리’에 비하면... 허기사 세력, 즉 자기를 주군으로 모시는 이들도 많지 않은데다가 당내에서도 이리저리 치이고 있다니, 더군다나 캠핑 철도 지났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제 그만 정치 접으시고 아름다우신 탤런트 부인과 귀여운 아들에게 돌아가
     본업인 ‘글쟁이’나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된다. 때가 됐다, 아니 지나고 있다. 

      출범식에 같이 참석했던 ‘새대가리’는 참석자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나 보다.
    TV 화면에 비친 얼굴이 엄청 상기되어 있었던 것으로 봐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쉰옥수수들’이 그 시절 입에 달고 다녔던 ‘민주화’와 그 돈 많은 ‘깡통’의 ‘새정치’는
    시대의 차이가 있을 뿐 똑 같은 것이니까.
    이런 때 ‘데자뷰(deja vu)’, 즉 기시감(旣視感)이라는 말을 쓰나 보다.
     ‘새정치’는 그 ‘깡통’이 대통령되는 것-그가 대통령이 안되면 대한민국 정치는 영원히 ‘헌정치’다-이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쉰옥수수들’의 호응과 공감은 예상했던 대로 아니었겠는가.

    조만간 창당을 한다니 당 이름은 당연히 ‘후조당(候鳥黨)’... 새정치를 한다고 하고 새대가리가 우두머리니 말이다. 많은 참신(제대로 시어버린)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일 것이다, 그 주위에... 그럴진대 왜 “시지도 않아서 군내부터 먼저 난다”는 우리 속담이 언뜻 뒤통수를 칠까?

    국가 또는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된 개인의 허황된 꿈과 욕심이 얼마나 많은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나라와 본인 모두에게 장기간 얼마나 큰 해악이 되었던가. 탄식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성숙, 정치발전은 ‘민주회복’ 등등 유신시절의 상투적인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고, 더군다나 자기의 욕심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국민들을 현혹시킨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야 말로 걸림돌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이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면 국민들이 도와 줄 것이다.
    아니 머지않아 엄청나게 큰 심판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능력은 건국 이후 여러 차례의 기적을 가져왔지 않은가...  
     <더 끼>

      # ‘낭만독재(浪漫獨裁)’ : 유신의 시절에는 영장 없는 체포·구금이 많았다. 그 시절 어느 도시이던 역전(驛前)광장에는 가막소가 자주 설치되었었다. 새끼줄로 사각 줄을 치고, 그(권투시합하는 링 같았다) 안에 양민 범법자(?)를 가뒀다. 장발 대학생과 젊은이,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렸거나 침을 뱉은 행인, 그리고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잘 못 건넌 (그 당시 횡단보도 신호등이 처음 생겼는데, 파란 불일 때 건너는지 빨간 불일 때 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노인네 등등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무단으로 그 가막소에 감금했다. 그리고 경찰 1∼2명이 지키고 있었다. 노인네들은 겁에 질려 서너 시간 꼼짝 못하고 있었지만, 장발 청년들은 잠시 서로 눈을 마주 치며 기회를 보다가 일시에 사방으로 튀었었다. 물론 소수인 경찰들은 이들을 잡을 수가 없었고... (하지만 이후에는 경찰이 도주하는 청년 한명만을 집중 추적했고, 검거(?)한 후에는 한참 쥐어박았다. 고문이라면 고문이다.) 
      그 시절 조국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순수한 열정을 바친 분들도 많다. 상상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분들 대부분은 그 시절을 용서했다. 큰 보상도 바라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분들이야 말로 대한민국 또 하나의 기적(민주발전)을 이룬 중심이다. 
      긴 머리를 했다고 영장 없이 체포 당해 머리를 짤렸던, 그리고 도망가다 잡혀 고문당했던 우리 세대도 대부분은 허허 웃으며 그 시절을 얘기한다. 시대의 아픔, 대한민국 민주발전의 진통으로 가슴에 안고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게 용서라는 표현은 좀 어색하다)
      그런데 입으로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내심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을 숭모했거나,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었던 이들은 악착같이 보상(국민의 세금이다)을 받아냈고, 자신들의 진심을 속인 대가로 높은 자리에 올랐거나 아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이야말로 ‘낭만독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