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웅산 테러 30년…한·미얀마 관계 "근본적 변화"
    미얀마, '北과 특수관계'→'北 변화의 모델'로 변신



    우리나라 정부요인 등 17명이 숨진 아웅산 폭탄테러가 발생한 지 9일로 30년이 된다.

    아픔의 기억을 뒤로하고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나면서 미얀마는 '은둔의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협력 대상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치, 경제, 개발협력, 문화 등에서의 전방위적인 교류 협력으로 '미얀마 러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미얀마의 위상은 재평가되고 있다.

    ◇ 한·미얀마, 정상외교에 경제협력도 활발

    한·미얀마 양국은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전례가 없는 관계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우선 정치·외교 차원의 교류는 정상 수준에서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5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정상으로는 아웅산 테러 이후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으며 같은 해 10월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도 방한했다. 양국 외교장관도 정상방문 전이나 정상과 함께 상호 방문했다.

    올해 들어서는 미얀마 유력 정치인인 뚜라 우 쉐만 하원의장이 4월에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했다. 그에 앞서 강창희 국회의장이 올 1월에 미얀마를 찾았다.

    경제 분야의 교류도 활발하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2008년 3억6천만 달러였던 양국간 교역규모는 지난해 16억8천만달러로 5년 새 4배 이상 급증했다.

    우리나라는 또 지난해 말 기준으로 3억달러를 미얀마에 투자, 미얀마의 제4위 투자국이기도 하다. 지난 8월에는 인천공항공사가 11억달러 규모의 제2양곤(한따와디) 신공항 개발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화적으로는 미얀마에서도 한국 드라마 위주로 한류가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초 방한한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도 한류 스타와 만나는 별도 일정을 잡기도 했다.

    이밖에 우리나라는 미얀마에 2011년 기준으로 530만달러의 무상 원조를 했다.

    ◇ 미얀마 개혁·개방이 관계개선 결정적 계기

    한·미얀마 관계 발전의 결정적 계기는 미얀마의 개혁·개방이다.
    군 장성 출신으로 군부 정권 시절 총리를 지낸 테인 세인 대통령은 선거로 2011년 3월 집권한 뒤 개혁·개방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 연금 해제 등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고 핵 관련 의심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수용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개방 정책도 추진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이른바 '미얀마의 길'로 불리는 이런 조치를 평가,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풀고 관계 개선으로 적극 호응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관심은 개혁 개방에 나선 미얀마의 발전 잠재력에 쏠려 있다.

    동남아와 서남아를 잇는 요지에 자리 잡은 미얀마는 한반도의 3배 크기로 원유, 천연가스, 철광석, 우라늄, 니켈, 아연, 목재, 희토류 등 희귀자원이 풍부하다. 수력자원과 수산자원 개발 가능성도 큰 상태다.

    정부 소식통은 8일 "아웅산 테러가 발생한 나라로만 기억되던 미얀마가 이제는 관계 정상화를 넘어 우리나라의 주요 관심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 北과 돈독했던 미얀마…아웅산 테러로 장기간 단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이 북한에 대해 '미얀마의 길'을 따르라고 하고 있을 정도로 미얀마는 '북한의 변화 모델'로 변신했지만 과거 군부 정권 때에는 북한과 특수 관계에 있었다.

    미얀마는 남북에 대해 등거리 외교 정책을 표방했으나 1977년 미얀마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북한에 편향됐었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이 관계는 계속됐다.
    미얀마(당시 버마)는 아웅산 테러 발생 후 북한과 국교를 단교했다가 2007년 관계를 복원했다.

    관계 복원 전후로도 북한과 미얀마간에는 핵·미사일 개발 커넥션에 대한 의혹이 계속됐으나 미안먀가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북한과의 관계는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얀마는 이제 테러로 엮인 북한과의 애증의 관계를 청산하고 북한에 대한 모범 사례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북한이 저지른 아웅산 테러

    1983년 10월 9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현 미얀마) 공식 방문을 노리고 북한이 자행한 폭탄 테러다.

    양곤 주민들 틈에 위장하고 있던 북한 공작원들은 대한민국 대표단이 도착하기 하루 전 새벽 묘소에 잠입해 지붕에 2개의 폭탄을 설치, 원격 조종장치로 폭파를 감행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과 기자 등 수행단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 대표단은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 참배가 예정돼 있었고 사건이 벌어진 오전 10시 30분께 예행연습이 진행 중이었다.

    북한의 암살 대상이었던 당시 전 대통령은 숙소 출발이 예정보다 3분 늦어지면서 화를 면했다.

    우리 정부는 미얀마와 공동으로 진상 조사를 벌였으며 북한 정찰국 특공대 소속의 특수부대원들이 테러를 자행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북한 테러범 3명 중 신기철 대위는 체포 과정에서 사살됐고, 체포된 진모 소좌는 사형을 선고받은 뒤 이듬해 처형됐다. 테러 사실을 자백한 강민철 대위는 미얀마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08년 5월 사망했다.

    정부는 한·미얀마 관계 개선을 배경으로 연내에 테러 현장 인근에 아웅산 테러로 숨진 순국사절 추모비를 건립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