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토학살 90년> ③재난방지 구호에 묻힌 일본
    "조선인 희생자 기억하자" 목소리…추모행사·강연회 열려


    (도쿄=연합뉴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해로 기록된 간토(關東)대지진(1923년 9월1일)은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 무고한 조선인 수천명이 학살되는 비극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일본은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9월1일을 '방재의 날'(防災の日)로 정해 지진, 해일, 쓰나미, 태풍 등 자연재해 대응 능력을 점검하는 날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은 이에 따라 대규모 훈련을 하곤 한다. 이 때문에 재해 방지 구호에 일본의 만행, 부끄러운 역사가 묻힌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가운데 재외동포나 의식 있는 일본인 등을 중심으로 외면당한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려는 움직임이 펼쳐진다.

    간토대지진 발발일을 하루 앞둔 31일에는 도쿄도 다치카와시 여성종합센터에서 '아리랑-우호와 평화에의 염원을 담아'라는 제목으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의 간토 대지진 기록 다큐영화 '숨겨진 손톱자국'(1983년 작)을 상영하고 관련 사진을 전시하며 역사를 돌아보자는 취지다.

    같은 날 군마현 후지오카시 성도사에서는 당시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제가 열린다.
    대지진 발발일인 9월1일에는 다수의 행사가 준비돼 있다.

    도쿄도 스미다구에서는 일조협회도쿄도연합회가 중심이 돼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을 거행한다.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 90주년 가나가와실행위원회'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소재 구보산묘지에서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을 여는 등 10여건의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9월7일에는 학살 장소 중 하나인 도쿄도의 아라카와 하천부지에서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인 '봉선화의 저녁 모임'이라는 행사가 개최된다.

    대지진 당시 아라카와에 있던 목조 다리 '요쓰기바시' 근처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학살이 벌어졌다. 이곳에서는 추모행사가 열리는 것은 올해로 32회째다.

    '간토 대지진때 학살된 조선인 유골을 발굴해 추도하는 모임'과 일반사단법인 '봉선화'가 중심이 돼 행사를 준비했고 일본에서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불러 유명해진 이정미 씨 등이 추도의 뜻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대학살을 학술적으로도 조명하는 시도도 있다.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은 9월14일 역사관에서 일본인이 조선인 학살을 어떻게 보는지 등을 주제로 강연한다.

    간토지방 각지에서 벌어진 학살 실태와 이에 대한 진상 규명 상황을 소개하는 세미나도 이어진다.

    조선인 대학살에 관심을 두는 단체나 개인은 역사를 제대로 규명하고 기억해야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재난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표명하기도 한다.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은 30일 "지진을 경험한 일본인은 지진 자체보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가 더 무서웠다고 말한다"며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