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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국열차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 주의! 스포있음 ]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의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봉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무척 단선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 그가 만들었던 작품 중
이해하기에 무난한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영화의 주제 의식들을 은유와 상징 속에 철저하게 감춰 놓았다면
이번엔 자신의 의도에 대해 뼈대 그 자체를 보여준 느낌이다.
어쩌면 기존의 방식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은
이번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주제 의식에 당황하고
일종의 배신감까지 느꼈을지도 모른다.
주제 의식을 과감히 노출 했다는 것은
봉 감독이 텍스트를 다루는 스타일에 있어
변화를 줬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그의 생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지속될지 아닐지는
그의 후속작을 살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변화가 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
- ▲ 영화 속 한 장면(크리스 에반스) ⓒ CJ 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커티스(크리스 에반스)가 일등칸을 장악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이것이 이 영화의 기본 로그라인이다.
불합리한 대우에 맞서 싸워 일등칸을 차지하려는 것이
커티스와 꼬리칸에 있는 사람들의 목적이다.
하지만 일등칸을 얻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은
애초에 헛된 망상일 뿐이라는 걸 영화는 역설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윌포드(에드 해리스)와 커티스의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윌포드는 자신과 길리엄(존 허트)의 관계를 폭로하며
커티스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커티스에게 권력을 넘겨주겠다는 것.
투쟁을 통해 윗자리를 선점한다 한들,
또 다른 형태의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가 발생할 뿐이라는 것을
윌포드와 길리엄은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투쟁의 결과가 부의 균등한 분배가 아닌
다시 한 번 계급의 재배열이 일어나는 것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커티스의 최종 목표 도달에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
- ▲ 영화 속 한 장면(고아성) ⓒ CJ 엔터테인먼트
봉 감독은 애초에
열차 내부에서 일어나는 싸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없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기차 밖의 세계,
즉 새로운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지점을 놓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래서 사실, 남궁민수(송강호)와 요나(고아성)의 등장은 무척 노골적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커티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봉준호가 생각한 핵심 인물은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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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속 한 장면(틸다 스윈튼) ⓒ CJ 엔터테인먼트
이야기의 핵심은 의외로 이상한 부분에서 돌출된다.
마약 중독자인 커티스와 남궁민수의 대화에서
봉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가 대놓고 자신의 생각을 발설한다.
‘열차 밖으로 나가자’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남궁민수의 모든 역할이 끝이 난다는 데 있다.
기차의 끝까지 오는 동안 남궁민수가 한 일이란
열차와 열차 사이의 문을 연 것이 전부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것이 남궁민수의 존재의 이유이자 역할이다.
감독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남궁민수는 <보안설계자>여야 했고 존재해야만 했다.
송강호의 독특한 억양에 의한 유머와 존재감은
스크린을 가득 채울 만큼 충만하다.
하지만 난데없고 뜬금없는 그의 등장은
관객에게 폭소를 선사할 수 있을지언정
차분하게 이야기를 따라온 관객에게 있어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관객들은 남궁민수의 독특한 첫 등장에 환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맡은 캐릭터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그리고 그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백그라운드 스토리조차 부재한다.
과격하게 말해, 설국열차에는 송강호는 있지만 남궁민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캐릭터가 이 영화에 있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남궁민수가 등장하고,
결말에 있어 요나가 기차 밖의 땅을 밟는다는 설정은
다소 갑작스럽게 급조된 결말처럼
그리고 봉 감독의 억지스러운 욕심처럼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이 영화의 결말은 희망을 줄지언정
납득하기 어렵고 다소 난감하다.
남궁민수와 요나에 대한 이야기가 깔려있어야
서사적 구조는 더 완성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궁민수, 요나 이외에도
극 중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이야기 진행 단계마다 휘발시켜 버린 부분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
- ▲ 영화 속 한 장면(옥타비아 스펜서) ⓒ CJ 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설국열차>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봉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다.
두 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 동안
카메라는 기차 안을 떠나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다양한 앵글을 잡아낸다는 것은
엄청난 내공을 요구한다.
횃불 신을 비롯해 웨스턴을 연상시키는 일대일 총격 신까지,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영화적 리듬감에 있어서도 후반부에 가서 약간 떨어지기는 하지만
무난한 흐름을 보이는 편이다.
기차의 칸을 마치 게임미션을 클리어하듯 진행되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의 구조는 단선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을 연출력으로 커버 했다는 것은
그의 번뜩이는 천재성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하다.
물론 이번 작품이 그의 최고작이라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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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 ⓒ CJ 엔터테인먼트
봉준호는 공공연하게
“늘 새로운 영화를 찍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전작과 비교해 달라진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것은 단지 할리우드 배우라든지,
제작규모라든지, 영어대사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작품 한 편만으로 그가 변했다, 라는 느낌을 갖는 다는 것이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작품이 그의 영화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변화가 긍정적이고, 앞으로 더 큰 발전을 줄 거라 생각한다.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사진제공= CJ 엔터테인먼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