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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바람이 분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SBS 수목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연출 : 김규태, 극본 : 노희경) 28일 방송에서는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실 그 동안은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설정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들은 몇 중고의 고통을 겪는다.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컴컴함 방에서 방치되어 허구 헌 날 혼자 외롭게 지내야 된다.
종종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40년 동안 한 번도 방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어요.”
그들에게 삶이라는 것은 없다. 끝없는 절망과 고통, 그 암울함에서 벗어나려고 끝없이 몸부림치고 몸부림치다 좌절과 포기로 살려는 의지는 잠잠해지고, 마침내 마음은 죽고, 빈 껍데기인 고통을 주는 육체만 마주하며 산다.
사회적인 편견도 만만치 않아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은 저주의 상징이었다.
장애인을 보면 재수없다고 피해 가기 일쑤다. 집 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창피하여 집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때도 있었다. -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장애인을 위해 헌신하고 복지단체도 많이 생겼고, 끊임없는 계몽으로 우리나라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장애인을 배려하는 사회적인 여러 가지 제도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많이 생겼다.
한 나라의 문화수준의 척도는 장애인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한다.
그 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꿨지만, 장애인들의 천국이라는 미국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그래서 종종 장애인을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오직 장애를 가진 자식을 잘 키우기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 오영(송혜교)은 시각장애인이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도 전혀 없다.
대부분 장애인들은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살지 못하지만,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빈 방에서 스스로 피나는 고통으로 몸을 움직여 살아야 한다.
오영은 일일이 필요한 것을 미리 미리 다 알아서 도와 줄 사람들이 주위에 깔려있다.
환경도 더 할 수 없이 쾌적하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차도 있다.
일반 장애인들은 도와 줄 봉사들이 나타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어떻게 보면 시각장애인인 것을 빼면 오영은-물론 그 장애의 고통을 무엇과 견줄 수 있으랴마는- 보통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차피 한계와 결함이 많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 환경적으로든 다양한 장애를 갖고 살고 있다.
그 동안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장애의 아픔이 특별히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
우리나라 드라마의 한계점이기도 하다.
어떤 영역에 대해서 그리면 그것에 대한 생생한 세계를 그리지 못한다.
하나의 드라마를 위한 장치로 슬쩍 걸쳐 놓여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지 않아서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의 생생한 현장을 그려주면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그들의 치열한 삶과 어려움을 알게 되고 막연히 갖고 있던 다른 집단에 대한 편견이 어느 새 스르르 사라진다.
굳이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거부감 없이 이해의 확장이 넓어진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벽이 무너져 막혀 있던 사회의 핏줄이 뚫어지게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늘 보호자로 둘러 싸여 살던 오영은 수술을 앞두고 이런 저런 이유를 만들어 친구도, 믿음직한 장변호사도, 가사도우미도 하나씩 주위에서 떠나 보내고 넓은 저택에 처음으로 홀로 남는다.
계단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영의 모습은 무슨 일이 일어 날 것 같이 위험해 보인다.
시각장애인이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 위태하고 불안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 넓은 우주에 혼자 외로이 떠 있는 듯 아슬아슬하고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안쓰러움과 그 쓸쓸함이란!
화려하고 넓은 집에 어느 새 짙은 적막감이 산 위에 운무처럼 덮여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