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멘토’ - 바로 아들



  • 이 세상의 모든 조직에서 신(神)이 가장 먼저 만든 조직이 가정이라고 한다.
    그 만큼 가정은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이다.

    어디로 흘러 갈 지 모르는 급변의 시대에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다.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세대가 바뀌고 국가가 무너져도 인류를 지탱해 준 것은 가정이었다. 험한 세파에서도 삶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돌아 갈 수 있는 안식처가 있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 주던 부모의 사랑과 형제 자매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그런 가정과 부모의 사랑의 의미를 잃게 하고 퇴색하게 했을까?

    KBS2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고 대체될 수 없는 가정의 소중함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 주고 있다. 꺼져 가고 있는 그리운 사랑의 기억들을 되살려 준다.

    그 중의 하나가 드라마 처음부터 눈길을 끌던 모자지간(母子之間) 의 독특한 관계가 있다.
    강기범(최정우)의 아내 차지선(김혜옥)과 업둥이 아들 강성재(이정신).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업둥이를 친 자식들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엄마,
    아들 또한 유일하게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준다.   


    외형적으로는 재벌가의 사모님으로 부러울 것 없는 차지선. 하지만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남편의 밑에서 낙엽처럼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불행한 여자다. 결혼도 서로 사랑해서 한 것이 아니라, 집안끼리 사업상 맺어진 부부이다.


  • 여느 여자처럼 남편의 사랑을 늘 갈구하지만 그런 아내의 마음을 전혀 알려 하지 않는 남편은 오히려 늘 말도 못 꺼내게 윽박지르기 일쑤라 가슴에 멍이 들대로 들었다.

    그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남편의 책임을 다 한 것으로 아는 전형적인 보수적인 남자다.
    자상하고 정이 많은 성재가 그런 엄마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채워준다.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변할까, 자신의 마음을 알아 줄까, 여자로서 또 아내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돌아봐 줄까, 평생 기다리다 포기한 차지선.

    혹시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 두었다. 마침내 댐의 물이 차면 넘쳐 흐르듯이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고이고 고여 쟁여져 있던 물이 넘쳐 버렸다.

    남편의 말 한 마디에 꼼짝 못 하며 두려워하던 여린 마음이 모든 희망을 버리고 나니 차갑게 식어 버리며 집안을 박차고 나오는 용기까지 생긴다.

    집밖에 모르던 차지선이 가출하고 이혼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뜻밖의 아내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그저 힘 없는 자의 한 번의 몸짓이려니 생각했던 강기범, 차지선이 계속 강경하게 이혼을 요구하니 당황한다.

    강철같이 강해 보이던 사람이 아내가 나가버리니 얼마나 초라하고 약해 보이던지. 이렇게 저렇게 자기 딴에는 애를 써 보지만 다 좌절되고 만다.

    그 와중에서 아내를 사랑하고 있음을 아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다급해진 강기범은 누구보다도 아내와 친밀하게 지내며 아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늘 못 마땅하게 여기던 둘째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보기 드물다.
    더군다나 자기보다 격이 다르다고 느끼는 경우는 더더구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연장자가 어린 사람한테 조언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강기범 같이 늘 지시만 내리던 사람이 내려 와, 어린 아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열린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훈훈하다.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성재의 아이디어로 아버지 강기범은 용기를 내어 창피를 무릎 쓰고 사랑의 이벤트를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이번에는 엄마가 성재를 다방으로 불러 내어 조언을 구한다. 단순히 마음을 돌이키려고 맘에도 없는 이벤트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남편의 진심을 믿을 수 없는 엄마는 의심하면서도 기대감을 가지고 물어본다.

    “아빠가 변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아빠가 진심인 것 같은 데”


    성재는 엄마가 아빠한테 바라는 것을 적으라고 한다. 그 종이를 아버지한테 가지고 가서 아버지에게 들이댄다.

     “엄마 요구 사항이야. 공증하면 집에 들어 오겠대요.”

    이렇게 중간에서 아들은 서로의 마음을 믿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성재가 어느 덧 엄마 아빠의 멘토가 된 것이다. 아빠 엄마 두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멘토가 되어 주는 것도, 아빠 엄마가 어린 자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고 흐뭇하다.


  • 멘토가 유행인 시대다. 대부분 외부에서 멘토를 구하고 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부모 자녀가 서로 멘토가 되어 주는 것도 아름다운 가정으로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이제부터 자녀한테 손을 내밀어 보라.
    누구보다도 진실한 멘토가 되어 줄 것이며 자연스럽게 세대간의 벽도 무너질 것이다.

    [사진출처 = KBS '내 딸 서영이' 사이트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