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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수목드라마 '착한남자'는 악녀(惡女) 한재희를 둘러싼 군상들이 벌이는 막장 드라마다.
미모에다 계략까지 능숙한 악녀는 돈이라는 목적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가는 욕망의 화신이다.
그래서 제목은 '착한남자'였지만, 이 드라마는 나쁜 남자와 더 나쁜 여자들이 돈을 놓고 벌이는 저질 서부영화같았다. 그런데, 슬슬 바뀌고 있다. 착한드라마가 되려고 한다. 돈 보다 사랑...이라고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착해지기 시작했다.
태산그룹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암투, 엄청난 돈을 놓고 죽기 살기로 달려 들던 한재희(박시연 분)와 서은기(민채원 분) 사이의 싸움은 서은기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기억상실(이라는 뻔한 수법)에 걸리면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24일 방영된 13회에서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목표는 돈 보다 사랑이라고 암시를 주기 시작했다. 등장인물들이 바뀌는 장면이 드러난다.
박준하 변호사 : 사랑한다면 꼭 가져야 합니까?
서은기를 짝사랑하던 젊은 총각 변호사, 그의 목적은 서은기의 사랑을 얻는 것이다. 젊어서 순수했다고나 할까, 세상물정 몰랐다고나 할까. 박변은 서은기를 좋아한 것이지, 서은기가 가진 재물을 쫓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쫓아다니던 서은기, 그녀의 마음은 이제 강마루에게 넘어갔다.
이 허탈감과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배신감 없이, 패배감 없이, 정말 so cooool 하게 말이다. 13회에서 함께 강마루를 몰아내자고 설득하는 선배 변호사 안민영에게 박변은 이렇게 말한다.“강마루는 도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쳐내야 할 대상이야, 네가 정말 서은기를 갖고 싶다면” “꼭 가져야 됩니까? 사랑하면 내가 꼭 가져야 됩니까? 전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등신같은 놈"“우리가 손에 쥐려 했던 게 결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서은기 : 내가 그렇게 싸가지 없었다니...
그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전 재벌회장 딸이었을 때 너무나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자기 중심적이었다. 기억상실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 뉘우치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홍어무침이 올라오면 소리 지르고 난리법석을 떨었던 과거를 돌이키면서 헛 웃음을 짓는다. 내가 그 정도로 나쁜 아이였어? 하고 강마루와 주고 받는다.“황당하다. 와 진짜 황당하다, 먹기 싫은 음식 하나 잘 못 올렸다고 그렇게 화를 내고 성질을 부렸대잖아, 내가.”
“내가 말했잖아, 너 완전 개 싸가지 였다고.”
“그러게 갑자기 기억이 돌아오는게 무섭다. 지금도 이렇게 당혹스러운데.”
한재희 : 나 땜에 너 다치는 거 원하지 않아
그녀도 이제 조금씩 무너진다. 첫사랑 강마루를 언제까지 쥐고 흔들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강마루의 마음은 완전히 자기를 떠나 서은기에게 향한 것을 확인했다. 허탈해 하는 한재희, 그런데 죽기 살기로 대립하던 서은기가 자신의 아들 은석이와 사이좋게 지내고, 온순한 태도를 보이자 악녀 한재희도 부드러워진다. 악녀의 화신으로 모든 시청자로부터 욕을 먹던 한재희는 서은기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손을 잡는다."난 널 좋아하진 않지만, 미워하지도 않아. 네가 조금만 더 날 인간취급해주고 지금처럼만 우리 은석일 인정해줬으며 우리 여기까지 안 왔어, 나 땜에 네가 다치는 거 원하지 않아. 나 땜에 니가 피 흘리는 거 바라지 않아.”
드라마 초반의 음모와 탐욕과 위선과 모략과 살기는 이제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착한남자, 전반부만 해도 밑천이 뻔한 것처럼 보였다. 돈, 섹스, 권력, 암투, 삼각관계에 불륜에 살인청부 온갖 장사되는 지저분한 메뉴는 다 갖다 붙였었다.
그런데 이제 슬슬 다시 재미있어 진다. 미스터리 추리극 냄새도 풍긴다. 기억상실에 걸렸던 서은기, 기억을 되살리려고 벽에 사람들 사진을 붙여놓고 익히고, 그녀가 기억상실에 걸렸는지 아닌지를 놓고 주변 사람들이 두뇌경쟁을 벌인다.
미스터리 냄새를 풍기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미숙한 연기도 한 몫 한다.박시연과 문채원, 솔직히 연기는 별로다. 발성이 엉성하다 보니 목소리가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조금 붕 떠 있다. 붕 뜬 목소리와 약간 책읽는 듯한 대사가 현실감을 떨어뜨리기에 오히려 추리극 냄새를 살리는 이 묘한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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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7회 동안 어떻게 수습할 지 궁금해진다. 과연 등장인물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증오와 갈등, 이해상충, 그리고 욕망과 애증의 실타래가 사랑으로 순식간에 녹아질까?
드라마 주제가는 드라마의 방향을 암시하는 것 같다.“사랑을 죽을 만큼 한 적 있나요
단 한번만 단 한번만
제 . 발 . 돌 . 아 . 봐 . 요 ... ”[사진출처 = KBS2드라마 착한남자 캡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