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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의 조선일보 특별기고] 안철수, 무늬만 '제3의 길'인가
'기득권 과보호 구조' 배척하듯 '舊좌파 오류'도 똑같이 맞서야
정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선 '역사 안'으로 들어와 부딪쳐야
양쪽 꾸짖고 한쪽과 손잡으면 순도와 진정성 의심할 수밖에 -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기 전의 안철수 교수는 자천(自薦) 타천(他薦)으로 '제3의 길'을 가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상 출마를 선언했을 때의 '안철수의 생각'은 꼭 한 가지 점에서만 '제3의 길'이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다 틀려먹었다. 그래서 그런 '민의(民意)를 반영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는 확 바꿔 버려야 한다고 한 대목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 밖의 그의 생각들은 새누리당, 민주당 그리고 온 세상이 다 떠드는 보편적 상식이 아니면 이쪽저쪽의 어느 한쪽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는 ▲빈부 격차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계층 간 이동이 차단된 사회 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은 기득권 과보호 구조 ▲지식산업 시대에 역행하는 옛날 방식의 의사 결정 구조 등을 '오거지악(五去之惡)'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게 과연 안철수만의 특허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비슷한 말들은 박근혜 문재인, 새누리당 민주당도 줄곧 해오던 것이다.
민주당의 재벌 때리기에 대해 그가 "근본주의로는 안 된다. 점진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해야 한다"고 반론한 것도 그만의 '제3의 길'이라기보다는 새누리당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역대 모든 정부에 공(功)도 있었고, 과(過)도 있었다"고 한 그의 역사 인식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식은 민주화 세력엔 오로지 공만 있고 산업화 세력엔 오로지 과만 있다는 투의 민주당과는 다르다. 반면 새누리당과는 과히 멀지 않다. 문재인 후보는 이승만·박정희 묘소를 싹 비켜 갔지만 박근혜 후보는 5·16, 유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사과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보다 새누리당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제주도 해군기지를 이번 정부 마지막 해에 추진하지 않으면 국가 위기를 맞을 상황인가?"라고 물었다. 이런 그를 '재야 원탁회의'가 "판을 키워라"며 잡아당겼다. 안철수 후보는 이래서 '제3의 사나이'라기보다는 필요하다면 민주당과 더불어 얼마든지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선수라고 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비상식적 세력'(안철수의 생각)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목표에서 안철수와 문재인은 생각이 같다. 다만 문재인은 '재래식'이고 안철수는 '강남 스타일'이다. 문재인은 '봉하마을'이고 안철수는 '홍대(弘大) 앞'이다. 문재인이 '민중민족' 캠프라면 안철수는 딱히 그렇지도 못하면서 그쪽에 가산점을 주는 타입이다. 체질적으로는 근본주의와 편의(便宜)주의의 차이다. 그러나 오늘의 대선(大選)판에서 그 차이는 서로 단절적이 아니라 연속적·보완적이다. '싸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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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헷갈린다. 아니, 헷갈리게 한다. 말부터가 딱 부러지는 법이 없다. 안철수는 과연 누구이고 무엇인가? 그는 더 이상 '남자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짓지 말고 직설화법으로 화끈하게 답해야 한다. 그의 '제3열차'는 부산까지 가는 것인가, 대구까지 가는 것인가? 진짜 '제3'인가 아니면 '무늬만 제3'인가? 기껏 '제3의 옷'을 걸쳤다가 막판에 그것을 훌렁 벗어버릴 양이면 지금 하는 말은 다 헛것이다. "(민주당이) 정치 쇄신을 한다면…"이라는 탈출구를 마련해둔 것 자체가 '순박한 철수씨'치고는 꽤 기교적이다.
참다운 '제3의 자리'는 출마 전과 후의 '안철수의 생각'쯤으로 쉽사리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짜 '제3'이 되려면 '기득권 과보호 구조'를 배척하는 것과 똑같은 강도(强度)로 '올드 레프트(구좌파)'의 오류도 함께 정면으로 배척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안철수 후보는 그러나 그런 적이 없다. '제3각(角)'으로서 충분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뜻이다.
'제3의 자리'는 또 오늘의 정치 갈등을 '싸움만 하는 정치'라며 퇴 하고 침 뱉는다 해서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갈등엔 국가 형성 이래 체제와 반체제의 숙명적 싸움이 깔려 있다. 이것을 넘어서려면 넘어서기 위한 또 하나의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역사 안'으로 들어와 부딪쳐야지 '역사 밖'에서 "왜들 이래?"라고 꾸짖는다 해서 그 질긴 자락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게다가 양쪽을 다 꾸짖고 나서 어느 한쪽과 짝짜꿍이 될 경우 그 꾸짖음은 위장이고 사기(詐欺)일 가능성이 크다.
'제3의 길'은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순도(純度)이고 진정성이다. 그것이 엄격하게 검증돼야 한다.
<이 글은 조선일보 2012.9.25 특별기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