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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김문수, 정몽준, 이재오는 경선(競選)에 참여해야"
4백 년 전 세르반테스는 말했다, “길은 늘 주막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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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늘 주막보다 낫다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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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대표에 맞서온 후보들인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그리고 정몽준 의원에게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들의 고뇌도 점점 깊어진다. 경선에 나가기도 어렵고 포기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선 문제를 되도록 큰 맥락 속에 놓고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번 경선의 목적은 물론 가장 지지를 많이 받는 후보를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뽑아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경선에 참여할 후보들에겐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뽑히는 것이 물론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인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뽑혀도, 만일 그가 선거에서 당선되면, 새누리당은 계속 집권하게 될 터이고, 그도 당연히 작지 않는 이익을 얻게 된다. 적어도 그런 가정 아래서 움직인다.
경선 후보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공동의 이익은 당내 경선을 비영합경기(non-zero-sum game)로 만든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합경기(zero-sum game)에선 경기자들의 이익이 상반되므로, 서로 상대를 꺾으려고 치열하게 다툰다. 그러나 비영합경기에선 경기자들이 경쟁하면서도 공동의 이익을 얻으려 협력한다.
세 후보들이 계속 집권이라는 공동의 이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 공동의 이익은 그들이 경선에 참여해서 경선을 경선답게 만드는 것이 옳은 선택임을 말해준다.
물론 세 후보들은 경선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다.
박근혜 후보가 워낙 압도적 지지를 받아온 터라,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경선 과정에서 다른 정치적 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들이 요구한 완전국민경선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행 규정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따르겠다고 당에서 결정한 터라, 이제는 참여하지 않을 명분도 생겼다.
반면에, 경선 과정에서 지게 될 위험들은 여럿이고 심중하다. 특히, 경선에선 자연스럽게 나올 박근혜 후보에 대한 공격이 유력한 후보 흠집내기로 비칠 위험이 크다. 그래서 비용과 혜택을 비교하면, 거의 틀림없이 경선에 나가지 않는 것이 낫다는 계산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세 후보들은 경선에 참여해서 완주하는 것이 옳다.그렇게 해야, 경선이 제 모습을 갖출 수 있고 투표자들에게 열린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당연히, 경선에서 뽑힌 대통령 후보의 대표성이 늘어나고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선택이 옳다는 점은 투표자들의 처지를 살피면 또렷해진다. 투표자는 누구나 자신의 한 표가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고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투표하든 아니하든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투표자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투표장을 찾는다. 자신이 미는 정당이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투표자들은 투표한다.
그런 행태는 개인적 수준에선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수준에선 큰 뜻을 지닌다. 모든 유권자들이 자신의 투표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 결정’인 기권을 택하면, 선거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선거는 본질적으로 공동의 이익이 존재하는 비영합경기이기 때문이다.
경선에 참여하는 후보들은 먼 주막을 향해 걷는 나그네들이다. 먼저 닿은 후보가 주막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들을 누린다. 늦게 닿은 후보들은 술은 고사하고 대궁도 고마워해야 할 처지가 된다. 따라서 그들은 길을 가는 과정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장거리 경주에서 지친 몸을 추슬러 완주한 꼴찌에게 관중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은 바로 그런 사정에서 나온다.
4백 년 전 세르반테스는 말했다, “길은 늘 주막보다 낫다.”
힘들고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얘기보다 더 도움이 되는 얘기도 드물 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비중이 크고 아직 큰 역할을 할 세 후보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희망해 본다.
<복거일 /작가, 평론가, 문화미래포럼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