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비명도 새길 수 없는 북한
신준식 기자 /뉴포커스인간은 죽으면 한 줌의 재로 사라지지만, 묘비는 무덤 곁을 지키면서 그의 경력이나 일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더불어 묘비명에서는 긴 일생을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글귀를 적어 자신이 어떠한 생각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 나타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개인 묘비에 글을 새기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 이유는 묘비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개문구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두, 세사람 이상이 볼 수 있는 글들은 반드시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 묘비도 제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탈북자 장용성씨에 의하면 “일반 주민이 만일 당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묘비명을 썼다가 발각되면 처벌받음은 물론이고 묘비까지도 망치로 깨 부신다”고 증언했다. 죽어서까지도 벙어리가 되어야만 하는 북한 주민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
- ▲ ▲ 사진자료 「7년간 북한을 담다」 : 일반 주민의 묘비
그렇다면 간부들은 어떨까?
권력층은 ‘충신’이라는 명목 하에 대성산 기슭에 위치한 ‘혁명열사릉’에 묻힌다. 일단 이름과 함께 생전에 자신이 가졌던 직위가 기입되고, 출생일과 사망날짜를 적는다. 그렇지만 간부조차도 묘비에 기입할 수 있는 권리는 여기까지다. 북한에서 흔히 말하는 ‘김정일 측근’의 묘비에서도 묘비명은 쉽게 관찰해 볼 수 없다. -
- ▲ ▲ 기본정보만 적혀있을 뿐, 묘비명은 찾아볼 수 없다.
간혹 묘비명이 새겨진 묘비들도 있는데, 이 같은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유언을 남긴 말이 아닌 당에서 지정해 준 문구를 새기도록 되어있다. 오히려 일반 주민들보다 제약이 더 큰 셈인데, 간부들 같은 경우에는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죽음조차도 공개매체로써 체제선전에 이용하는 북한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
- ▲ ▲ '신념과 의지의 화신, 반일혁명렬사'란 문구가 보인다. 당에서 지정해 준 문구를 사용한다. 사진은 김영삼정권때 석방하여 북한에 보낸 비전향 공산당 이인모의 묘비명.
얼마 전, 인터넷에서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굉장히 화제가 된 바 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묘비명에 새겨진 문구로만 보자면 실소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덧없는 인간사를 한마디로 솔직하게 이야기한 그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묘비명이란 인간이 죽으며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언마저 조작되거나, 강제로 새겨진다면 죽은 자의 일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북한은 개인의 역사를 너무도 쉽게 왜곡한다.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죽었어도 묘비명에는 ‘김정일 장군의 뜻을 받들어 사회주의 건설에 이 한 몸 바치다’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며 한마디라도 남기고 싶은 자유마저 박탈당하며, 개인의 일생이 아무렇지도 않게 조작되는 곳이 북한이다.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www.newfocu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