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자 후보에 압도적 차이로 당선최고위원에 허증·박상돈·김영주·홍표근·송종환 후보
  • ▲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 ⓒ 뉴데일리(자료사진)
    ▲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 ⓒ 뉴데일리(자료사진)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의 초대 대표로 이인제 후보가 공식 선출됐다. 최고위원으로는 허증·박상돈·김영주·홍표근·송종환 후보가 선출됐다.

    이 신임대표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제 1차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1154명의 투표 결과 938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196표를 얻은 황인자 후보와 742표란 압도적 차이였다.

    이 신임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저는 험난한 정치역정을 견디면서 과오도 많고 흠도 많은 사람이지만, 저의 열정과 경험을 믿고 맡겨주신 대의원 동지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신명을 다 바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당이 한 사람에 의해 지도되는 정당이 아니라 주권자인 당원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여론에 이끌리는 대중적 민주정당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신임대표는 그간 탈당과 입당을 여러 차례 반복해 '철새'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쓴 바 있다. 그럼에도 지역구에서 계속 승리를 거둬 '불사조', '피닉제(피닉스+이인제)'린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87년 당시 통일민주당의 중심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5년 10월 김 전 대통령이 임기 후반 "국민이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를 내세워 승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당시 47세에 '차기 대선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7월 신한국당(새누리당 전신)의 15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당시 이회창 후보에 패한 그가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보수세력의 배신자’로 지목됐다.  보수표가 분산돼 당선이 유력시됐던 이회창 후보가 40만 표 차이로 석패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다시 동교동의 전폭적인 지원속에 출마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1948년 충남 논산 ▲경복고 ▲서울대 행정학과 ▲대전지법 판사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제15·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제13·14·16·17·18·19대 국회의원 ▲자유선진당 비상대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