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L, 야당 먹고 대한민국 먹을 채비

    진보당이 민주당 끌어가 NL로 흡수통일,

    공동합의문과 멘토들 발언 "허물고 갈아엎겠다"는 선언
    안보문제까지 'NL판' 벌이면 정권교체 넘는 체제변혁

    2012년 전반기 한국 정치의 톱뉴스는 물론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역전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만 못지않게 중요한 게 또 하나 있다. 한국 정치지형에서 중도개혁 야당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NL(민족해방파) 통일전선이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NL이 한국 제도야권(野圈)을 흡수통일했다고도 할 수 있다.

    4·11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이른바 야권연대라는 것을 했다. 주목할 것은 그것이 단순한 후보 단일화를 넘어 공동정책합의문과 노선통합으로까지 갔다는 점이다. 그 통합은 민주당이 진보당을 중도로 끌어간 통합이 아니라, 반대로 진보당이 민주당을 NL로 끌어간 통합이었다. 이것은 통합의 사부(師父) 역할을 누가 했나, 그리고 공동정책합의문의 내용은 무엇이었나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공동정책합의문의 멘토 그룹은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였다. 그중엔 NL 운동권의 대부(代父),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우긴 아이콘, 그리고 촛불 소동 때의 혁혁한 캐릭터도 섞여 있다. 나중에 '공동선언'을 했을 때는 무단 입북해 북(北)의 '수령(首領)'을 찬양한 얼굴도 보였다. 이런 성향들이 축복해 준 공동정책합의문이었다면, 종래의 중도 민주당이 NL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공동정책합의문과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20개 약속'이란 또 다른 문건의 내용 또한, 중도 민주당이 NL 진보당으로 견인당했다는 탄탄한 물증이다. "한미 FTA 시행을 전면 반대한다"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한 것은 물론 당연하겠다. 그러나 "자주외교, 균형외교, 평화외교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고…"라고 한 대목은 더 예사롭지 않다. 자주, 균형, 평화, 평화체제란 말 이면에는 한미동맹에 대한 대립각과 남북 연합제에 대한 암시가 배어난다.

    멘토 그룹의 좌장인 백낙청 교수는 이미 '2013년 체제'란 책에서 2012년 좌파 승리 이후에 있을 그런 변혁의 시나리오를 예고한 바 있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군(軍) 공안기구를 민주적으로 개혁… 온·오프라인에서의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 학문·사상·언론·문화의 자유를 가로막는 각종 검열 및 통제장치를 폐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 반민주 악법 개폐,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활동 보장, 국가 안보문제 전반에 대한 결정에서 시민참여를 보장…" 등의 대목들 역시 범상치 않다.

    이런 말들은 언뜻 듣기엔 지당하신 법어(法語) 같다. 그러나 잘 곱씹어보면 무언가가 깨고 들이닥쳐 온통 허물고 해체하고 갈아엎겠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말이 좋아 '시민참여'이지, 시민이란 대체 누구인가? NL 운동가들인가? 이들이 '국가 안보문제 전반', 예컨대 군(軍)과 군사(軍事)문제까지 '직접민주주의'와 '민관 협치(協治)'로 'NL 판'을 벌일 것이란 뜻인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정권 교체를 넘어서는 체제 변혁이다.

    야권연대, 정책연대, 공동정책합의문이라는 것의 실체적 진실은 바로 그것이다.
    웃기는 것은 그런 의미심장한 사태가 정계와 담론계(界)에서조차 별로 중요한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말 별것 아닌가? 새누리당이야 물론 그런 데엔 아예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중은 먹고살기 바쁘고 젊은이들은 "아무러면 어떠냐?"는 투이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매사 피곤하다. 한국과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이런 '엄연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너무 한가하다. 1990년대의 종북 지하조직,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의 잔재가 지상으로 올라와 민노당과 진보당 당권파로 계속 집요하게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판인데 말이다.

    사태의 중요성을 그나마 지적한 사람은 오히려 민주통합당의 이윤석·우윤근, 두 의원이었다. 그들은 TV 인터뷰에서 번갈아 말했다. "진보당은 그들이 가는 급진적인 길이 있고, 우리는 우리가 가는 중도의 길이 있다. 정체성과 노선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선거연대는 해도 왜 정책연대까지 했는지…" 그러나 그런 말은 먹힌 다음보다는 먹히기 전에 했어야 제격이다.

    다음의 '먹잇감'은 대한민국이다. NL은 사회·문화 부문을 넓고 깊게 침식했다. 그러곤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절반, 즉 제도야권을 먹었다. 지금 그들의 경선 부정이 드러난 것은 급히 먹다가 체한 것일 뿐이지, 그렇다고 그들의 전략이 위축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12월 대선에선 대한민국 전체를 먹으려 할 것이다.
    (조선일보 특별기고, 20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