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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지난 21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박 의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은 탈북자들을 색출해 체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만큼 스스로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는 보여주기 위한 단식, 정치적인 단식은 하지 않겠다면서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탈북자들의 강제북송을 막아 내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숨 건 사투를 뉴데일리가 밀착 취재했다. <편집자주>#1. 23일 오후 12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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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오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신문을 보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부터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항의하는 단식 농성을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하고 있다. ⓒ 뉴데일리
“너무 안됐어.”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신문을 보면서도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이곳에서 호소문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한 학생의 사진이 실린 기사였다. 박 의원은 이날도 신문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전 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 다녀온 박 의원의 표정은 유난히 슬퍼보였다. 그는 “전체회의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했다. 이날은 중국에 억류된 탈북자들 중 일부가 북송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늘따라 그의 머리색이 유독 하얘 보였다.
박 의원의 진심이 전해졌던 것일까. 외통위는 이날 박 의원이 제안한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과 새누리당 구상찬, 민주통합당 김동철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결의안을 하나로 묶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박 의원의 단식은 이날로 4일째를 맞았다. 그는 힘든 표정 한 번 짓는 일이 없다.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없었을텐데도 피곤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챙겼다.
이날도 박 의원을 찾는 기자들은 매우 많았다. 주요 언론사들은 모두 박 의원을 취재하고 갔다. 외신들의 관심도 부쩍 늘었다. 미국의 뉴스 채널 CNN은 박선영에 인터뷰를 요청했고 3시간동안 이곳의 분위기를 취재했다.
시민들의 ‘응원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 시민은 “‘쇼하다 말겠지’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박 의원을 지지했다.
#2. 23일 오후 1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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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오후 탈북자 북송반대 촉구 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앞에 '중국정부 반인륜적 강제북송 중단하라'는 메세지가 적힌 피켓이 걸려있다. ⓒ 뉴데일리
오후 2시를 앞두고 탈북자단체들이 모여들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주최로 ‘탈북자 강제북송 기자회견’이 열리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박 의원을 보자마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며 사과하느라 바빴다. 한 탈북자에게 “왜 그렇게 미안해 하느냐”고 묻자 “우리들이 해야할 일을 박 의원이 대신해주고 있으니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답했다.
대북전단을 오랫동안 날려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이날 200여개의 풍선을 갖고 왔다. 몇몇 탈북자들은 수용소의 잔혹한 실상을 그린 그림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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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기자회견’이 열렸다. ⓒ 뉴데일리
탈북자들의 표정엔 분노보다 슬픔이 어려있었다. 이들은 중국을 규탄하기에 앞서 억류된 탈북자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울지를 먼저 걱정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북한의 실상은 아무리 많이 전해들어도 탈북자들만이 잘 알고 있다.
박 대표는 "중국은 강제 북송 탈북자들에 일일이 번호를 매긴다. 작년 말에 강제 북송됐다 다시 탈북해 최근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의 증언이다"고 전했다.
한 남성 탈북자는 "중국에서 떠돌다가 붙잡힌 탈북자는 대부분 노동단련대에 간다. 하지만 한국행을 시도하다 잡힌 탈북자는 정치범수용소로 가거나 총살을 당한다"고 강조했다.
#4. 23일 오후 2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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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오후,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평양통일예술단’ 단원들이 ‘고향의꿈’을 불렀다. ⓒ 뉴데일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꽂 살구꽂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꽂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 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평양통일예술단’ 단원들이 ‘고향의꿈’을 부르기 시작했다. 엠프가 망가졌는지 반주가 중간중간 끊겼다. 노래를 부르던 단원들도 눈물을 흘리느라 노래를 잇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 가사는 가슴 속으로 한 글자씩 들어왔다. '고향의 꿈'이 이렇게 슬픈 가사인지 그전까지 몰랐다. 사람들은 눈물을 쏟기 일쑤였다. 방분옥 단장만이 꿋꿋이 노래를 불렀다.
그 어떤 집회나 시위보다도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평화 시위'였다.
# 24일 오후 3시 00분
여성 탈북자 김모씨가 자리에서 쓰러졌다. 김씨는 지난해 4월쯤 아들이 북송되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다. 구급차가 왔지만 그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감정에 북받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울고만 있었다.
구급차가 온 것을 보고 한 사람은 "박 의원이 쓰러졌느냐"며 다급하게 물었고 "박 의원이 아니라 탈북자 한 명이 쓰러졌다"는 대답이 나오자 그는 누군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돌아섰다. 씁쓸해졌다. 그렇게 '탈북자들'에 슬프다고 했던 그가 의아해졌다.
그러던 중 울고 있는 김씨에게 박 의원이 찾아왔다. 박 의원은 “제 텐트에서 조금 쉬세요”라며 말을 건넸고 박 의원의 손을 잡고 일어서 텐트로 향했다.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쉬가 터져나왔다. 단식하느라 힘도 없을 박 의원이 김씨를 부축했다. 박 의원 외에는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박 의원이 첫날 '보여주기 단식은 거절한다'고 했던게 떠올랐다.
# 24일 오후 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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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오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과 국민생각 박세일 대표는 한 탈북자의 증언에 눈물을 글썽였다. ⓒ 뉴데일리
텐트 안은 눈물바다였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싶다. 명절 때 ‘우리 아들 잘생겼죠’ 하며 친척들에 자랑하고 싶다. 늦잠자는 아들 깨우고, 아들 반찬 투정 받아주고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
김씨는 자신의 소원을 이같이 말하며 울부짖었다. 이어 “내 아들이 마지막 강제북송이었으면 좋겠다. 북송 문제에 동참해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울먹였다.
김씨가 말하는 중에 찾아온 국민생각 박세일 대표도 고개를 떨궜다. 박 의원과 박 대표 모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박 대표는 “우리 대한민국이 약해서 그렇고, 우리 지도자들이 못나서 이렇게 됐다.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박 의원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는 김씨에게 “이렇게 울면 어떻게 아들을 만나겠느냐. 건강하고 몸관리도 잘해야 아들을 만난다”며 김씨를 다독였다.
박세일 대표는 박선영 의원의 단식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해야할 일을 박 의원이 혼자서 하고 있다. ‘북송 문제’가 빨리 해결돼야하는데 걱정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래야 단식도 그만 하실텐데”라며 박 의원의 건강을 챙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