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는 익명, 그래서 거짓 횡행..떼거리로 더 잔인하고 비열한 짓거리 한다민통당의 몰염치..촛불이 시민주권의식의 발현이며 정의에 대한 열망이라 선언
  • 우리나라 트윗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싸움터가 되었습니다. 이념적 편향성을 가진 사람들, 루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상스런 막말을 하는 인기인들, 태연히 위선과 거짓에 찌든 메시지를 날리는 사회지도층 인사들로 넘쳐납니다.

    나아가 집단적으로 모의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계정을 폭파시키는 사이버 테러까지 횡행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쟁터입니다. 이번 4월 총선부터 트윗을 이용한 선거운동이 합법화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살벌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쫄지 마십시오.

    트윗과 같은 SNS는 본질적으로 개인과 진실에 대해 친화적입니다. 왜냐하면 익명성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트윗의 경우 약 5천에서 만 팔로워가 넘으면, 그 사람의 정체가 거의 대부분 드러납니다. 페이스북의 경우 친구가 약 5백명만 되어도 정체가 알려집니다. 어느 지역에서 살고 무슨 일을 하는 지 ‘족보’가 나옵니다.

    19세기 초반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떼는 거짓이다. 떼는 어떤 한사람(개인)이 할 수 있는 짓보다 더 잔인하고 비열한 짓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떼는 익명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떼가 비열하고 잔인하고 무참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은 그 떼에 속한 사람들이 죄다 익명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사람(개인)이 배려있고 너그럽고 사려깊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실체가 투명하게 드러난 ‘낱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 실존(individual existence)은 존엄하다”라는 키에르케고르 사상의 핵심입니다.

    자,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을 사용해서 2008년 광우병 난동을 한 번 돌이켜 보지요.  당시의 인터넷은 포털과 카페로 이루어졌습니다. 포털과 카페의 특성은 익명성입니다. 인터넷 실명제가 있다구요? 말짱 꽝입니다.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표로 수사를 받고 유죄판결을 받아 언론에 보도되어야 비로소 실명이 드러갈 뿐 그 전에는 그냥 ‘아이디’입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들? 누가 그 기사를 유심히 볼 것이며, 그 기사에 거론된 ‘홍모씨’가 ‘내 친구 홍길동’이라고 짐작하겠습니까?

    예를 하나 들어 보지요. 제가 청소년 성매매 카페에 가입해서, 가장 추잡한 방식으로 열 서너살 짜리 소녀 서너명과 동침했다고 가정해 보지요. 서너달 후에 경찰에 적발되어 ‘박모씨(53)’라고 언론에 보도되었다고 쳐 보지요. 벌금형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쳐 보지요. 제가 조금만 조심하면 심지어 제 집사람도 그 ‘박모씨’가 바로 남편인 저라는 사실을 모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익명입니까, 실명입니까? 사실상의 익명입니다.  

    2008년 광우병 난동은 바로 포탈과 카페의 익명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익명의 존재들—떼가 루머의 불길을 일으켜서 맹렬히 불길을 돌려낸 것입니다. 루머의 불길은 돌면서 자꾸 커집니다. 학자가 헛소리를 하면 기름을 붓는 격이 되지요. 서울대 교수쯤 되면 막강한 기름을 부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소가 광우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허접한 실험키트를 개발하던 서울대 수의대 교수 우희종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지요. 방송사가 엉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하면 불길 속에 고성능 화약을 집어넣는 셈이 되지요. MBC의 PD수첩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루머 불길(rumor bomb) 속에 갇힌 사람들은, ‘패닉(panic)에 질린 어리석은 떼’가 되어 무려 2개월 이상 나라 전체를 마비시켰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특히 루머 불길에 기름을 붓고 화약을 던진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민주통합당 정강 서문은 태연히, 뻔뻔스럽게 “촛불은 시민주권의식의 발현이며 정의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일”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지식인, 언론인, 정치인들이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운지 모르는 상태까지 타락한 것입니다.

    2010년 천안함 및 6.2 지방선거 때에는 좀 달랐습니다. 포털과 카페도 작동했지만 트윗이 많이 사용되었지요. 당시 트윗은 100% 종친초(종북-친북-촛불군중)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피로파괴설, 좌초설, 미국-이스라엘-MB 음모설 등이 국민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루머 불길을 이용하여 민주당은 기막히게 지능적인 선거 슬로건을 내걸었지요. “전쟁이냐 평화냐?”

    2010년 6.2 지방선거 이후에 생각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트윗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반란을 시작했습니다. 아, 이들은 ‘반란군’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종친초가 장악하고 있는 트윗 공간에서 사람다운 목소리, 진실의 메시지, 개인의 땀냄새를 전파하는 '문화반란군'입니다. 이들의 반란이 처음 성공한 케이스가 한진중공업 사건이었습니다.

    반란군에 의해 '희망버스'가 '재앙버스'가 되어버렸습니다. 반란군들이 종친초의 본색을 폭로하고 고립시켰기 때문에 ‘희망버스’의 실체가 ‘재앙버스’임이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무식하고 끔직한 이야기를 무슨 낯짝으로 할 수 있습니까? 종친초가 내세웠던 이 슬로건은 인간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극언입니다.

    제대로 성숙한 인간은 취업 혹은 해고 따위에 의해 죽고 사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만약 해고가 살인(생명 박탈)이라면 취업은 ‘생명 부여’가 되겠죠. 취업과 해고를 주물럭거리는 기업 경영자는 신(神)이 됩니다. 생명의 부여와 박탈을 맘대로 주물럭거리는 존재가 바로 신 아닌가요?

    종친초는 기업 경영자를 공격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기업 경영자를 신으로 만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을 해고, 취업 따위에 의해 죽고 사는 존재로 폄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경영자를 신격화하는 정신분열증—이것이 바로 종친초입니다.

    트윗 문화반란군은 바로 종친초의 정신분열과 정신적 타락을 폭로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한진 중공업 '재앙버스'는 2차(부산)에서 기가 꺾였고, 3차(부산)에서 코메디가 되었고, 4차(서울)에서 노숙자 몰골의 시위꾼 집단임을 스스로 드러냈고, 5차(부산)에서는 개망신을 했습니다. 2011년 민노총의 기획상품 시리즈는 원래 전주버스파업, 유성기업파업, 한진 재앙버스로 이어지면서 에스컬레이트 되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2011년 말에 종친초의 정치 투쟁과 맞물려,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라는 클라이맥스로 치달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트윗 문화반란군에 의해 한진 '재앙버스'에서 박살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소수라도 용감하고 진솔하게 진실을 알리는 문화반란군이 존재하면, 트윗에서 효과적인 저항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트윗과 같은 SNS는 본질적으로 개인 친화적, 진실 친화적이기 때문입니다. 떼의 위세를 앞세워 거짓을 떠벌이는 세력에게는 본질적으로 불리한 토폴로지(topology, 지형)인 것입니다.

    이 반란군 안에는 이른바 보수나 우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세금, 큰 정부를 좋아하더라도 북한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정상적인 좌파’ 혹은 ‘정상적인 진보’도 많습니다. 이 트윗 문화반란군들은 이제 계정폭파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종 무기(www.twt119.com)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에 한 번 가입해 두면 트윗 계정폭파를 당했을 때 매우 신속하게 계정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 모두를 무료로 대행해 줍니다.

    물론 SNS로는 예를 들어 ‘인심’을 돌려 놓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경제는 100년만의 세계공황을 비교적 잘 타고 넘어가고 있지만 (사실 전세계에서 우리와 독일, 두 나라만 빵빵합니다. 나머지는 개판났습니다) 공황은 여전히 공황입니다. 가진 자와 없는 자,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사람들의 삶이 고단해집니다. 인심이 사납고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인심을 달래서 사회를 통합해 내는 것은 SNS가 주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인이나 제도권 주류(establishment mainstream)의 각성과 실천과 희생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SNS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진실을 존중하는 차분한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수많은 생활인들이 트윗으로 들어 오셔야 합니다. 땀 냄새나는 건강한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주셔야 합니다. 이 살벌한 트윗 전쟁터에서 이런 관점의 이야기를 하시려면 용기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분들을 ‘트윗에서 활동하는 문화반란군’이라 부릅니다.

    반란에 참여하십시오. 종친초의 힘은 거짓과 떼를 앞세운 문화권력에 있습니다. 이 문화권력에 도전해서 이를 붕괴시키는 것—이 숭고한 반란에 님을 초청합니다.


  • 박성현 저술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는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이메일 : bangmo@gmail.com
    페이스북 : www.facebook.com/bangm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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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격수다 제 17 화] 트윗 군중이 무섭다고라? 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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