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업무보고 토론석상서 건의..대통령 "빨리 해결해야"
  • "여성 외교관들은 마음 놓고 출산을 할 수도 없습니다. 대책을 마련해주세요."

    한 여성 외교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외교통상부에서 엄마로 살아가기'의 고달픔을 가감 없이 토로했다. 5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부 업무보고 뒤 진행된 대통령과의 토론 석상에서다.

    북미유럽연합(EU)통상과의 김모(40) 1등 서기관이 이 자리에서 여성 외교관들을 대표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 두 아이의 엄마인 김 서기관은 "공관 근무하면서 둘째 아이를 낳았다"면서 "산후조리와 육아 과정에서 가족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남편과 떨어져 있어 혼자서 고군분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저는 큰 공관에 근무해 출산을 할 수 있었지만 3~4명 규모의 공관에 근무하는 여성 외교관들은 동료에게 미안해 아이를 가질 엄두조차 못 낸다"면서 "여성 외교관은 급증했지만 조직 운영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서기관은 특히 "처음 해외근무를 나가면 공관 2곳에서 연달아 5~6년을 근무해야 하는데 이때가 대부분 여성 외교관들의 출산ㆍ육아 시기와 겹쳐 어려움이 있다"면서 "공관 근무체계를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대체인력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는 "지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정도 지켜달라"는 한 여성 외교관 남편의 말도 소개됐다.

    현재 여성 외교관은 외교부 전체 직원의 약 33%를 차지한다. 그러나 외교부의 모성보호 점수는 '낙제점'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해외 근무로 부부간 '생이별'이 잦다 보니 출산율이 저조할 뿐 아니라, 육아를 하는 여직원을 배려하는 분위기도 아니라는 것이다.

    김 서기관의 이런 호소에 이 대통령은 "외교도 중요하지만 출산ㆍ육아도 중요하다"면서 "가임기 여성 외교관들이 필요한 경우 국내 근무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빨리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토론 뒤에 이뤄진 대통령과 젊은 외교관과의 대화 시간에는 외교부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행정안전부에서 파견나온 한 직원은 "외교부 장관이 비행기만 타지말고 버스나 기차도 타면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외교부가 이런 지적은 귀담아들어야 한다"면서도 "고졸자 특채 대책에 행정학ㆍ헌법 시험을 요구하는 등 행안부도 가보니 꼭 잘하는 것만은 아니더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또 "국제사회에서는 이익과 원칙 사이에 긴장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그동안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단기적 이익 중심으로 외교를 해왔는데 앞으로는 국격ㆍ위상에 걸맞게 인권 같은 보편타당한 원칙을 지키는 거시적ㆍ장기적 외교가 필요하다"고 외교부 직원들에게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