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102주년 기념식26일 오전 10시,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열려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제 대륙침략의 핵심인물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안중근의사 의거 102주년 기념식’이 26일 오전 10시,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 대강당에서 (사)안중근의사 숭모회(이사장 안응모)주관으로 열린다”고 밝혔다.

    안중근 의사(1879.9.2~1910.3.26)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906년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삼흥(三興)․돈의(敦義)학교를 설립해 인재양성에 헌신했다.

    일제에 의해 광무황제가 폐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해외로 나가 이범윤․김두성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08년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해 경흥․회령 등지에서 항일의병전쟁을 펼쳤다.

    안중근 의사는 이후 노령 블라디보스토크․연추(煙秋) 등을 돌면서 동지들을 만나 독립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1909년 봄에는 김기열(金基烈)․백낙길(白樂吉)․우덕순(禹德淳) 등과 함께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결성했다.

  • ▲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면 그림.
    ▲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면 그림.

    1909년 9월 노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의 거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다. 10월 26일 9시경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기차에서 내려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여 걸어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권총으로 저격해 사살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뤼순(旅順)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평화의 정착을 위한 ‘동양평화론’을 펼치며 항거하다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1910년 3월 26일 순국하셨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26일 기념식에는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안홍순 광복회 부회장 등 독립운동관련 단체장, 광복회원,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조동성 안중근기념관장의 약전봉독, 정래현 학생(경복고 2년)의 의거 이유봉독, 국가보훈처 차장과 광복회장(부회장 대독)의 기념사, 김소엽 시인의 헌시 낭독, 역사음악어린이합창단의 안중근노래 합창 순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