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객 "스티브는 나와 세상과 연결해준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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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아이콘'이자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5일 밤(현지시간) 애플 본사와 인근 그의 저택 앞에는 꽃다발과 촛불을 든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 ▲ 잡스 추모하는 캐시 코비씨(쿠퍼티노<美캘리포니아>=연합뉴스) 임상수 특파원 = 스티브 잡스의 사망소식 발표 후 4시간이 지난 5일 오후 8시30분께(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니노시에 위치한 애플 본사 사옥을 둘러싼 인피니트 루프 한쪽 벤치에 마련된 영정 앞에서 캐시 코비씨(오른쪽 두번째)가 아이폰을 꺼내 촛불영상을 올려 놓고서 다른 추모객들과 잡스를 추모하고 있다. ⓒ
애플 측에서 본사 사옥이나 잡스의 집 앞에 별도의 추모공간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지만 추모객들은 본사 인근 벤치와 저택 앞마당 한쪽에 꽃다발과 촛불을 놓고 잡스의 명복을 빌었다.
◇쿠퍼티노 본사 앞에 50여명의 추모객 몰려
"스티브(잡스)는 나를 세상과 연결해 준 은인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소식 발표 후 4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8시30분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니노시에 위치한 애플 본사 사옥을 둘러싼 인피니트 루프 한쪽 벤치에 마련된 영정 앞에서 캐시 코비(57.여) 씨는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코비 씨는 자신이 가져온 아이패드에 잡스의 영정을 올려 벤치 한가운데 놓고는 아이폰을 꺼내 촛불 영상을 올려놓고서 3시간 내내 선 채로 다른 추모객 50여명과 함께 잡스를 추모했다.
애플 본사에서 30마일(48.3㎞) 정도 떨어진 샌타크루즈에 살고 있다는 캐시는 잡스의 사망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스티브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한 모임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다"면서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 만큼 그는 나의 은인"이라면서 그의 사망을 아쉬워했다.
25마일 정도 떨어진 프리몬트에서 왔다는 어니-제니퍼 부부는 "그는 어떤 의미로 세상을 변화시킨 멋진 혁명가"라면서 애도했다.
인근 린브룩고교에 다닌다는 파스 데바(17) 군은 "처음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면서 "잡스의 철학과 어록은 항상 나에게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캐시가 가져다 놓은 아이패드 영정 주변에는 이곳을 찾은 추모객들의 꽃다발이 켜켜이 쌓였으며 바닥에는 촛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이 추모공간은 애플 측이 마련해 준 것이 아니라 추모객들이 스스로 마련한 것이라고 한 추모객은 귀띔했다.
애플 본사 주변에는 대형 방송차량 수십 대가 생방송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정작 애플 본사 사옥은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한데다 간간이 비까지 내려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뒤늦게 퇴근하는 애플 직원들은 추모객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으며,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애써 외면했다.
◇잡스 집 앞에도 추모객..일부는 눈물
쿠퍼티노 본사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팰러알토 시내 잡스의 저택은 이날 오후 9시30분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창밖으로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앞마당에는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과 촛불이 쌓여 있어 이곳이 잡스의 집임을 확인시켜줬다.
이곳을 지킨 추모객 20여명은 운동복이나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고, 일부는 애완견을 데리고 있는 등 대부분 이웃에 사는 주민들로 보였다.
이곳에도 꽃다발 한가운데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아이패드 영정이 놓여 있었다.
자전거를 옆에 세워놓고 잡스의 영정을 한동안 바라보던 50대 여성은 이웃에 살고 있는지를 물은 데 대해 고개를 끄덕였으나 잡스 사망을 애도하는 코멘트를 요구하자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인근 상점에서 일한다는 20대 여성은 "출퇴근할 때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추모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영정 앞 인도에는 '당신이 가져다준 아이디어에 감사한다(Thanks for your ideas)', '정말 당신을 그리워할 것입니다(I really miss you)', '평안히 잠드소서(RIP, Rest In Peace)' 등 글이 적혀 있었다.
주택가 한복판인데다 애플 본사처럼 위치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추모객은 많지 않았지만 밤늦도록 끊어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