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2년6개월 만에 교체되면서 6자회담 재개 흐름에 미묘한 기류가 드리워지고 있다. 단순히 북핵협상 대표가 바뀌었다는 인적교체 차원을 넘어 현 정부의 대북 접근과 북핵 대응기조상의 변화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차관급인 6자회담 수석대표는 원칙적으로 청와대와 외교장관의 지시와 훈령에 따라 움직이는 자리이지만 협상대표로서의 재량권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청와대와 본부가 큰 윤곽을 담은 지시를 내리면 그 지시의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운신의 폭을 갖고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북핵 협상이 갖는 사안의 특수성상 정부 내에서 가장 정확히 흐름을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이는 사실상 6자회담 수석대표뿐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가 입안하는 전략과 의제설정이 정부가 큰 틀의 북핵협상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열쇠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주목할 점은 임성남 신임 본부장이 실용을 중시하는 전략통이자 협상가라는 점이다. 전임인 위성락 본부장이 상대적으로 '원칙'에 충실하면서 압박 우위의 '투트랙' 전략을 구사했다면, 임 본부장은 방법론상으로 '유연성'을 발휘하며 적극적 협상력을 발휘할 소지가 크다는 전망이다.

    이러한 분석은 과거 6자회담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로 협상 진전에 기여했던 임 본부장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주미대사관 정무 참사관이던 2005년 6자회담 개최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급파'돼 9ㆍ19 공동성명의 초석을 놓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또 6자회담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됐던 2007~2008년에는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 겸 우리 측 6자회담 차석대표로 활약하며 북핵 협상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다.

    좀 더 시야를 넓혀볼 때 이번 6자회담 수석대표의 교체는 최근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장관의 교체와 맞물려 전반적인 대북 정책기조의 전환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원칙을 중시하는 현인택 통일장관이 물러나고 '유연성'을 예고한 류우익 장관이 등장해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변곡점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협상대표의 교체는 시의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류 장관이 주중 대사로 재직할 당시 임 본부장은 주중 공사로 근무했다는 점에서 대북정책의 양대 축인 순수 남북관계와 북핵 협상 파트가 서로 '호흡'을 맞추며 대북 정책의 유연한 변화를 주도해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같은 협상대표의 교체는 대화국면의 한복판에 진입한 한반도 정세의 흐름과도 맞물려 주목된다.

    현 정세는 지난 7월 하순 발리 남북회담-뉴욕 북미대화의 '1라운드'에 이어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2차 남북 비핵화회담이 열림으로써 '2라운드'가 본격화되는 국면이다.

    지금까지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끌어내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협상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특히 현재 모색되는 북미 후속대화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을 경우 연내 6자회담 재개도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측의 새로운 협상대표 등장은 다른 6자회담 수석대표의 세대교체 움직임과 맞물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맥락 속에서 새 6자회담 사령탑에 오른 임 본부장으로서는 이제 궤도에 오른 협상국면의 흐름을 살려가면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며 6자회담을 재개시켜야 하는 과제를 떠맡게 됐다.

    전임 위 본부장이 북한을 남북 비핵화 회담의 장(場)으로 이끌어낸 성과를 토대로 실질적 협상의 진전을 이끌어내는 수완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물론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의 교체가 당장 현재의 6자회담 재개 흐름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힘들다.

    신임 본부장으로서는 급격한 기조변화를 꾀하기보다는 우리 측이 취해온 투트랙 기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모색해보는 신중한 대응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견고한 한미 공조에 터잡아 남북-북미대화를 병용해가며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하고 있는 '원칙 있는 대화' 기조를 감안하고 내년 초부터 본격화될 선거국면을 고려한다면 자율적 운신의 폭이 그다지 크지 못한 점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북미 후속대화와 이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예비협상 과정이 꼬이면서 교착국면이 조성될 경우 신임 본부장으로서는 나름대로 창조적 해법을 제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가 미국과 중국 사정에 두루 밝은 외교관이라는 점은 한국의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점이다. 특히 최근까지 주중 공사로 근무하며 북핵문제와 관련한 중국 측 기류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점은 앞으로의 6자회담 재개과정에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 본부장이 앞으로 어떤 협상전략과 행보로 대화국면을 관리해나갈지에 외교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