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호원이 본 李承晩 대통령  
      
     "밖에 나가서 경무대 석 자를 팔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李根美   
     
     *李承晩 대통령의 경호원이었던 金正旭씨가 2001년11월호 月刊朝鮮 인터뷰에서 증언한 내용. 
      
      <李承晩 대통령은 「냉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가 친척들을 경무대에 얼씬도 못 하게 했습니다. 대통령의 甥姪(생질)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생질 남매에게 금족령을 내려서 경무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요. 그런 분이었으니 당신께서 不正(부정)을 할 리가 없지요. 4·19 때 李대통령이 스위스 은행에 몇백억을 예치해 놓았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지금까지 한 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금전적으로 깨끗한 분이었습니다』
     
      李承晩 대통령이 수행원들에게 늘 당부한 말이 있었다고 한다.
     
      『「냉수먹고 된똥 싸라. 밖에 나가서 경무대 석 자를 팔지 말라」고 하셨어요. 경무대를 등에 없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말라는 의미였죠. 그 말씀을 자주 하셔서 항상 수행원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張勉(장면) 정권이 들어서서 강도 높은 조사를 했지만 경호원 가운데 부정과 연루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경호원이었던 곽영주씨가 사형을 당한 것은 4·19 때 발포사건과 연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얘기인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어느 해는 비서실 예산을 반납시켰을 정도로 경무대 사람들도 검소하게 지냈습니다』
     
      李대통령은 항상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金正旭씨가 바라본 李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었다. 당시 유일한 돌파구는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많이 받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국무위원에 많이 기용되었으며 그들은 대부분 유학파로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대통령께서는 밀가루 한 포라도 더 원조받으려고 애쓰셨습니다. 국무위원들과 한국말로 하시다가 긴밀한 얘기, 우리 수행원들이 들으면 안 되는 얘기들은 영어로 하셨어요. 당시 국무위원들은 상당히 격조 있고 수준 높은 분이었어요. 또 연륜이 있는 분들이었죠』
     
      당시 국무위원 중에 李範奭(이범석) 국무총리와 錢鎭漢(전진한) 사회부 장관이 영어를 좀 못했을 뿐 대부분 영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李대통령은 대단히 조리 있게 말을 잘해 趙炳玉(조병옥) 박사가 들어와서 얘기하다가 말문이 막힌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한다. 李대통령은 연설원고를 공보비서에게 구술한 뒤 원고를 만들어 오면 일일이 점검하여 직접 수정했다고 한다.
     
      李承晩 대통령은 대체로 과묵한 편이었고, 표정 변화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단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日帝시대 때 고문받은 후유증이 나타나면서 볼에 경련이 일고 손가락을 후후 불었다. 수행원들에게 사사로운 말을 건네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항상 아랫사람에게 친절하고 인정이 많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면 반드시 수행원들에게 『식사했느냐』고 물었으며 지방에 갔을 때는 아침에 『잘 잤느냐』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면 수행원들에게 와이셔츠를 하사하곤 했는데 그것도 모든 수행원들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니라 몇몇에게만 주었다.
     
      『경호원들에게 봉투에 돈을 넣어서 준다든가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두 분이 워낙 검소하게 사셨기 때문에 남에게 선물을 줄 만한 물건이 없었어요. 저도 몇 번 와이셔츠를 받았는데 영광이었지요. 한번은 쓰시던 중절모를 저에게 하사하셨습니다. 대통령의 중절모를 아버지께 갖다 드렸더니 몹시 기뻐하시더군요. 대통령께서 대신 나에게 충무로에 가서 중절모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李대통령은 좀처럼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데 어느 해인가 공휴일에 북한 어선이 연평도를 침공했을 때 洪璡基(홍진기) 해무청장과 金貞烈(김정열) 공군참모총장이 자리에 없어서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한다.
     
      李承晩 대통령의 유일한 취미는 낚시였다. 광나루 워커힐 아래 강가나 경복궁 內의 경회루에서 매주 토요일 낚시를 했다. 낚시 외에는 가끔 비원을 산책하면서 깊은 상념에 젖곤 하는 것이 취미생활의 전부였다.
     
      『술도 마시지 않으셨어요. 오로지 모든 시간을 나라 살리는 일에만 투자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 살 만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國運이죠』>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