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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희망버스’라고 자처하는 가투(街鬪) 세력이 7월 30일의 부산 영도에 진입할 모양이다. 사태의 패턴은 항상 같다. 정리해고, 반발, 극적 타결, 급진파의 불복, 외부 개입, 거리 공방(攻防), 뒤죽박죽. 이게 한국 민주주의의 불임(不姙) 현장이다. 서로 합의할 규칙이라는 게 없다. 규칙이 있어 어찌 어찌 합의를 해도 구속력이 없다. ‘파토’ 내면 그 뿐이니까.
본질문제 자체를 두고 봐도 피차 이빨이 들어가지 않는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안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해고된 측은 "그러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냐?“고 절규한다. 여기 대체 무슨 완전무결한 해결책이 있을 수 있을까? 식자(識者)들은 곧잘 “왜 해결하지 않느냐?”고 성현(聖賢) 같은 당위론을 들이민다. 그러나 누가 해결하고 싶지 않아서 해결이 안 되나? 마술 지팡이가 없으니 해결이 안 되는 것이지.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일부는 말한다. 그러나 국가는 만능이 아니다. 세상만사를 국가가 무슨 수로 해결하나? 국가가 해결한답시고 나선 것이 극단적으로는 볼셰비키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였고 나치스의 전체주의적 국가사회주의였다. 전체주의까지는 아니라 해도 지금 그런 ‘국가=만능’ 신앙으로 가자고 할 수는 없는 세상이다. 시장의 실패를 국가의 실패로 대치한다는 건 해결책이 아니기에.
‘한진’ 현장의 경우, 모두가 다 해피하게 생각할 완전무결한 해결책이란 없다. 그저 불만스러운 타결(妥結)만이 있을 수 있다. 이게 통하지 않으면 몸싸움이 있을 뿐이다. ‘한진’이 지금 그 지경까지 와있다. ‘희망버스’임을 자처하는 가투(街鬪) 세력과, 그것을 ‘절망버스’라고 말하는 영도 생활인들의 정면충돌-그걸 거쳐서 결국은 다시 불만스러운 타결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불만스러운 타결을 받아들이자는 제도요 문화다
가투(街鬪) 당론(黨論)에 반대한 영도구의회 어느 민주당 의원의 반(反)포퓰리즘을 두고 한나라당 ‘우파 포퓰리스트’ 홍준표, 황우여, 그리고 ’좌(左) 클릭 소장파‘가 과연 뭐라고 할지 심히 궁금하다.
류근일 /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