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百濟人의 후예다』 
      한국에서 한국기업 키우는 ‘구다라기 겐’ 소니 게임사업 부문 前 명예회장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7월11일자 朝鮮日報 조선경제 섹션 박스 톱기사로 보도된 「소니의 혁명가, 한국 넘어와 한국기업 키운다」제하의 주인공 ‘구타라기 겐(くだらき けん)’ 소니 게임사업 부문 前 명예회장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그는 자신이 韓半島에서 건너온 渡來人(도래인)의 후예임을 발설하며, 그 증거로 자신의 姓 ‘구다라기’를 들었다. ‘구다라’는 百濟(백제), ‘기’는 木의 일본식 발음이다.
     일본인은 百濟를 「구다라」라고 訓讀(훈독)한다. 新羅는 「시라기」, 高句麗는 고마(=熊, 貊, 高麗) 또는 「코리」라고 읽는 것과 구별된다. 같은 讀法(독법)으로 읽는다면 百濟는 「햐쿠사이」라든가 중국처럼 「바이지」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도 일본에서는 『구다라나이』라는 말은 『가치가 없다』, 『시시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즉 『백제는 가치가 있다』, 『중요하다』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舊韓末(구한말)에 일본을 비롯한 선진 서양에서 수입된 물품을 舶來(박래)품이라고 했다. 배를 타고 온 물건이라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좋은 제품」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마찬가지로 옛날 일본에서는 선진국인 「구다라」에서 건너온 물건이라야 좋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왜 百濟를 「구다라」라고 했는지 일본인들조차 잘 모른다고 한다. 일본의 《國史辭典(국사사전)》은 三國 중 왜 백제만을 따로이 「구다라」 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를 「謎(미=수수께끼)라는 말로 糊塗(호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잘 모르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알아도 차마 밝힐 수 없는 일을 이 謎라는 말로 비켜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구다라」의 語源(어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세 가지만 소개해 본다.
     첫째 「大王」에서 찾는다. 「구」는 「구렁이(큰 뱀)」, 「구들(큰 돌 또는 구은 돌)」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크다(大)」는 뜻의 古語(고어)다. 「구」에 소유를 나타내는 촉음 ㄷ과 王을 일컫는 어라하(於羅遐)를 붙여 부르면 「굳어라하」가 되고 이를 빨리 읽으면 「구다라」가 된다는 얘기다.
     중국 역사책 《周書(주서)》 百濟편에는 〈백제왕의 성씨는 扶餘(부여)씨인데, 王을 부를 때, 지배족은 「어라하(於羅遐)」, 백성들은 「건길지(腱吉支)」라고 하며, 王妃는 於陸(어육)이라고 했다〉고 되어 있다.
     우리 전통설화인 〈바리공주〉이야기에서 나오는 바리공주의 짝이 되는 남자 이름이 「어라하」다. 이 말은 유목민족인 흉노, 돌궐 계통語라고 한다. 將軍神(장군신)이자, 開國(개국) 영웅이 된 그를 「어라하」라 했는데, 흉노계 首長(수장)을 뜻한다.
     민요 〈성주풀이〉의 「어라(하) 萬壽(만수), 어라(하) 大神(대신)이야」라는 대목, 〈공심무가〉의 「어라하 만수, 어라하 대신이여, 왕이여 만수를 누리고」라는 대목을 보면 어라하가 大神(대신)이거나 왕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왕비를 뜻하는 於陸(어육)은 反切(반절)이다. 反切이라는 말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중국 玉篇(옥편)을 보면 글자 하나하나에 발음기호가 들어 있다. 예를 들어 ‘學(학)’자를 찾아보면 중국인은 ‘轄覺切(할각절)’로 발음을 표시하고 있다. 後漢(후한)때 許愼(허신 · 30~124년)이 지은 《說文解字(설문해자)》이래 지금까지의 전통이다. 여기서 ‘切(절)’은 反切(반절), 즉, ‘轄覺切(할각절)’이 ‘學’의 발음기호라는 것을 의미한다. 첫 글자 轄(할)에서는 초성(ㅎ)만 취하고 두 번째 글자 覺(각)에서는 중성, 종성(악)을 취해 읽으라는 뜻이다. 동녘 東자는 ‘德紅切(덕홍절)’이라고 발음기호가 정해져 있다. 東자의 발음은 德에서 초성 ㄷ을 따고, 紅에서 중성, 종성을 따서 합해 읽으라는 뜻이다.
     따라서 於陸의 陸에서는 於에서는 초성 ㅇ, 陸에서는 중성 종성을 따서 於陸 전체의 발음은 ‘억’, 또는 ‘윽’이다. 이 발음은 지금 일본인이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존칭 ‘오쿠’(奧 · 오)의 원형으로 추측된다.
     또 하나, 「구다라」가 「구」에 촉음 ㄷ과 「나라」를 붙여 읽어 「굳나라」라고 했으며, 훗날 「구다라」로 轉音(전음)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다. 이는 大國또는 本國이라는 뜻이다. 일본인들이 백제를 大國 또는 本國이라는 뜻으로 「구다라」를 쓰다가 百濟를 의미하게 되는 말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일본 역사책에도 百濟를 本國이라는 뜻으로 쓴 대목이 있다. 660년 百濟가 패망한 후, 《日本書記(일본서기)》 齊明天皇(제명천황)편에 〈百濟國(백제국) 窮來歸我(궁래귀아) 以本邦喪亂(이본방상란) 靡依靡告(미의미고) · 백제가 곤궁하여 우리에게 돌아왔네. 本國(本邦)이 망하여 없어지게 되었으니 이제 더 이상 어디에 의지하고 어디에 호소한단 말인가)〉라고 했으며, 3년 후, 百濟 부흥운동까지 실패로 끝나고 周留城(주류성)이 함락되자, 天智天皇(천지천황) 2년조에 〈州流降矣(주류항의) 事无奈何(사무내하) 百濟之名(백제지명) 絶于今日(절우금일) 丘墓之所(구묘지소) 豈能復往(개능복왕) · 주류성이 함락되고 말았구나, 어찌할꼬 어찌할꼬, 백제의 이름이 오늘로 끊어졌으니, 조상의 무덤을 모신 곳 이제 어찌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슬퍼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이다. 조상의 무덤을 모신 곳이 故鄕(고향)이고 本國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丘墓之所란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는 先山을 가리킨다. 《日本書記》에 百濟가 丘墓之所로 표현된 것은 의미가 깊다.
     「구다라」가 百濟의 地名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부여 부소산 서쪽 기슭에 있는 白馬江(백마강)의 나루터 「구드래」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구드래」의 현 행정구역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1번지. 나루 건너 울성산 남쪽 기슭에는 武王 원년(600년)에 세운 王興寺(왕흥사)가 있고, 백마강 兩岸(양안)을 따라 호함리 절터, 부소산성, 부여 羅城(나성)을 비롯한 옛 유적이 많이 분포돼 있다. 「구드래」는 옛날 百濟와 倭, 중국 南朝(남조)의 배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지금의 항구 역할을 하는 큰 나루였다.
     옛날 百濟의 사비성에서 온 지식인들이 일본에 가서 「구드래」라는 말을 자주 쓰니까, 일본사람들은 「구드래」가 곧 백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됐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에서 외국에 간 사람들이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국 대신, 『서울에서 왔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百濟가 멸망한 후, 百濟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제는 「구드래」로 돌아갈 길이 막혔구나』하며 서러워했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인이 듣기에 百濟는 곧 泗沘(사비=소부리)요, 「구드래」였을 것임에 분명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