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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내 권력지형에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을 주축으로 한 친이계가 급격히 힘을 잃고 있는 반면 당내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친박계의 조직 확장세(勢)가 심상치 않다.
7.4 전당대회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보완재’를 자임한 홍준표 후보는 무려 4만1,666표를 획득해 당 대표에 올랐다.
뒤를 이어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내 박 전 대표의 '복심으로 통하는 유승민 후보가 2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유 후보는 3만2,157표를 얻어 수석 최고위원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비해 구주류인 친이계의 지원을 등에 입은 원희룡 후보는 2만9086표를 얻는데 그쳐 4위를 기록했다. 탈계파를 선언한 나경원 후보에게까지 밀렸다.
친이계 초-재선 의원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핵심 중진급 인사들이 조직을 동원하고 나섰지만 결국 바닥 민심은 움직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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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준표 후보가 7.4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고 난 뒤 원희룡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4.27 이후 무너지는 친이계
친이계는 현 정부 초반까지만 해도 당내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가운데 3분의 2를 장악했던 최대 계파였다.
이제는 친박계를 압도했던 주류, 친이계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4.27 재보선 패배 이후 기류가 급격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당 내 ‘총선 위기’가 점차 확산되면서 친이계 소속 의원 중 다수가 ‘좌클릭’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친박-소장’ 연대에 손을 내민 것이다. 계파를 떠나 일단 제 살길부터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 탓이다.
사실 친이계는 이번 전당대회를 구주류로 밀려난 설움을 만회할 기회로 여겼다.
친이계 가운데 현역 의원 60여명이 원 후보를 지지하는 데 뜻을 같이했고, 홍준표 후보와 ‘50 대 50’ 정도로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과 7.4 대표최고위원 경선, 두 차례 모두 회복할 수 없는 참패를 당한 친이계의 향후 진로는 불투명해졌다.
친이계 모임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크게 3개로 나뉘었다고는 하지만 참석 의원들은 나날이 줄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관련, 한 친이계 의원은 “사실상 친박계로 당이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이제 한나라당사(史)에서 친이계는 사라지는 존재가 됐다”고 허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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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친이계 의원모임인 민생토론방이 열린 가운데 대다수 참석자들이 빠져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이계, 이제 다 죽고 없다”
박풍(朴風)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허탈감과 무력감만 남아있었다.
전당대회 다음날인 5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이계 초-재선 모임인 ‘민생토론방’ 회의에는 전체 20여명의 대상자 중에서 7명의 의원만 참석했다. 회의에 불참한 한 의원은 “어제 다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모두가 뛰어다니며 지지를 호소했건만 2위도 아닌, 4위라는 원희룡 후보의 성적표를 보고 충격에 휩싸인 것이다.
연이은 경선 패배에 내부 결속력이 급속도로 와해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실제로 전대 과정에서 친이계 양 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특임장관이 중립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수도권 친이계 의원은 “친이계 의원들 중 상당수가 홍준표 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계파 내 ‘오더(지시)’가 동력을 얻지 못하고 이반된 표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민생토론방 간사인 진영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원내대표 선거 끝나고 바로 친이가 사라진 게 느껴지던데... 이제 친박-친이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전여옥 의원도 “2006년 전당대회와 비교하면 한나라당의 기개와 담대함이 사라지고 미성숙과 초조함만 남았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잠이 안왔다. 오늘 민생토론방에 많이들 나오지 않았는데 저도 가슴이 아파 안 나오려고 했다”고 말했다.
새 지도부가 청와대와의 차별성에 방점을 두면서 당-청간 갈등이 심화될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강승규 의원은 “당이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게 정권 재창출의 지름길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그런 쪽으로 갈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