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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長考).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근 행보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렇다.
짊어진 짐이 많기도 하지만, 벌여놓은 일이 많은 것도 사실. 서울시장으로서, 한나라당 차기 대권 주자로서, 그리고 세금급식 주민투표를 시작한 반(反) 복지 포퓰리즘의 선봉으로서 고민이 많다고 스스로도 말한다.
그런 오세훈 시장이 17일 서울시 기자단 40여명과 함께 제주도로 1박2일간의 프레스투어를 떠났다. 서울시 사상 최대 규모의 기자단과 떠난 일정이다 보니 ‘외유성’이라는 시민단체들의 비난도 있었다.
그렇지만 오 시장은 강행했다. 많은 현안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과 다양한 의견을 들을 기회가 필요했다는 것이 보좌진들의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오 시장은 일정 내내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고민 중”이라는 말로 기자들을 답답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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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 보좌관은 이번 프레스투어가 오 시장이 쌓아놓은 고민들을 해결할 기회로 해석했다. 사진은 18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주도 항만공사 현장을 바라보는 모습. ⓒ 뉴데일리
◇ 서울시장 오세훈
프레스투어 첫 일정은 경인아라뱃길 공사 현장 시찰. 오 시장 입장에서는 세금급식 문제보다 더 애착이 가는 사업이다. 2007년 시작된 이 사업은 시의회로부터 올해 예산 전액이 삭감되면서 전면 중단됐다.
“미래 경쟁력 사업 포기할 수 없다.”
오 시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서해뱃길을 통해 서울 한복판에 배가 다니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생길 것이라고 역설했다. 국민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일본이 그랬고 유럽도 그랬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래서 이를 반대하는 시의회와 싸운다고 했다. 끝까지 시의회가 반대한다면 대통령과 담판을 지어서라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불태웠다.
반대하는 민주당 시의원들을 향해 쇄국주의자라는 독설도 뱉었다. 서해뱃길 사업은 제2의 경부고속도로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면 세금급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주변의 우려를 뿌리치고 소신을 지켰는지 두고 보면 알 것”이라고 했다.
일정 내내 자신감은 넘쳤다.
하지만 오 시장은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고민 중’, ‘고려 중’, ‘두고 보면 알 것’이라는 말로 대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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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민 많은 오세훈 시장. 18일 오 시장이 제주도 사려니 숲길을 걷고 있다. ⓒ 뉴데일리
◇ 대권주자 오세훈
대권 문제에 대해서는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시종일관 “결정된 것이 없다. 내년 총선 전까지 결론짓겠다. 빠르면 올해 안으로 결정할 수도 있다. 시간을 달라”고 답했다.
비단 대권 도전의 여부만 고민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당내 계파 사이에서 겪는 괴리감도 토로했다.
최근 당권 도전에 나선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주민투표가 과연 최선이냐”며 오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에 대해서는 “남 의원 한사람에게 대꾸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대권 주자로서 남 의원과 격을 달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반면 같은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에 대해서는 유연한 자세를 취했다. “박 전 대표나 김 지사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계신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밝은 미래를 위해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대권에 대한 욕심은 숨기지 않았다. “일은 사람이 하지만 결론은 하늘이 낸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노력하다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며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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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시장은 이번 프레스투어에서 만난 시민들과의 교감에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사진은 제주도로 향하는 선상에서 만난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 뉴데일리
◇ 지쳤나? 그렇지 않다. 각오를 다질 뿐
일정 내내 오 시장은 만나는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에 신경 썼다.
제주도로 향하는 선상에서도 그랬고, 제주도 현지에서 있었던 삼림욕장 체험에서도 그랬다. 일일이 지나가는 여행객들과 고개 숙여 악수를 하고 사진도 찍었다.
흡사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었다. ‘서민적이지 않다’는 자신의 이미지를 벗어내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시종일간 웃었지만, 언뜻언뜻 지친 모습이 스쳐갔다.
사실 서울시장으로서나 한나라당 대권주자로서의 오 시장의 현재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시의회와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4·27 재·보선 참패 후 반값 등록금을 들고 등장한 한나라당 새 지도부와의 엇박자도 부담스럽다.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서 뚜렷한 계파에 속하지 않은 것도 그렇다. 더욱이 세금급식 문제가 오 시장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정치적 타격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저녁식사 자리에서 오 시장은 “주민투표가 매끄럽게 이어질 것이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최소한 세금급식 문제에서만큼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던 그다.
비공식 석상이었지만, 다소 의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 “고민은 많지만 돌아가지 않겠다. 가던 길 계속 가겠다”고도 했다.
1박2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모든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았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오 시장은 프레스 투어 마지막 일정인 오찬자리에서 “서해 바다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넓은 바다를 보니 마음이 넓어지더라”고 했다.





